카니예 웨스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다
2000년대 초중반은 내 인생에서 음악을 가장 많이 듣던 시절이었다. 본래도 음악을 좋아했지만 수많은 음반들에 둘러 쌓여 있는 음반 쇼핑몰에서 일하게 되면서 당시 가장 핫한 음반들을 빠르게 접할 수 있었다. 내가 일하던 곳은 직원의 90% 이상이 나처럼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입사를 한 사람들이라 대부분 월급의 절반 이상을 음반 구매로 다시 회사에 환원(?)하는 그런 사람들로 이뤄진 곳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더 장르에 대한 편견도 거리낌도 없어 정말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던 시절이었는데, 한창 힙합에 빠져있던 시기도 있었다. 그렇게 과거부터 쭉 명반들을 훑어오던 중 당시 조금씩 이름을 알리던 프로듀서가 한 명 있었는데 그가 바로 카니예 웨스트 (Kanye West)였다. 아마 처음 알게 된 건 Jay-Z의 Blue Print 앨범에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리게 되면서부터였다. 블루 프린트 앨범은 음악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명반인데, 그 앨범의 성공에 상당수 지분은 바로 카니예 웨스트라는 프로듀서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가 만든 비트와 샘플링, 높은 피치로 보컬을 변조하는 기법들은 신선했고 충격적일 정도로 좋았다.
이후 카니예 웨스트는 프로듀서로서가 아닌 래퍼로서 솔로 앨범 'The College Dropout (2004)'를 선보이며 그래미를 수상하는 등 단숨에 더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이후 'Late Registration (2005)'과 'Graduation (2007)'까지 연속으로 성공시키며 카니예는 명실공히 최고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여러 구설수가 있는 와중에 발표한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2010)' 앨범은 평단에 극찬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여러 매체에서 카니예의 최고 앨범으로 꼽는 앨범이기도 하다. 그 이후로 여러 프로젝트나 곡들을 선보였으나 어쩌면 내게 있어 카니예 (예전에는 주로 칸예라고 불렀던)에 대한 적극적 팔로우는 이쯤에서 멈췄던 것 같다. 그 이후에는 음악에 관한 소식보다는 여러 가십들과 정치적인 이야기까지, 대부분 부정적인 이슈들 뿐이었다. 하지만 내게 카니예 웨스트는 항상 좋아하는 감정이 더 큰 채로 남아있는 뮤지션이었다. 가끔, 아니 자주 그의 앨범들을 다시 꺼내 들을 정도로.
그러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카니예 웨스트에 대한 다큐멘터리 3부작 '지-니어스: 카니예 (JEEN-YUHS)'를 보게 됐다. 총 3부작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는 카니예를 데뷔 시절부터 함께 해온 친구이자 'Jesus Walks', 'Through the Wire'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기도 했던 쿠디 시몬스가 촬영 및 감독을 맡았다. 1부와 2부에서는 시카고 출신 프로듀서였던 카니예 웨스트가 어떻게 메인 스트림에 진출하게 되고 그래미를 수상하는 슈퍼스타가 되었는지, 과정의 도전기가 담겨 있다. 프로듀서로서는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던 그였지만 래퍼로서 성공하고 싶었던 카니예가 레이블과 주변인들에게 래퍼로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은 록스타를 주인공으로 한 전기 영화와 연상될 정도로, 어려운 환경을 스스로 돌파해낸 주인공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 이상의 존재로 항상 그의 곁에 있었던 어머니 돈다(Donda)의 이야기도 비중 있게 다룬다. 카니예에게 어머니가 어떤 의미였고 어떤 관계였는지는 그의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는데, 이 다큐멘터리는 그 관계와 의미를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3부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고 좋아하던 카니예의 모습이 아닌 돌발행동과 정치적 발언 등으로 뉴스에 등장하던 시절과 코로나19 이후인 최근의 카니예를 보여준다. 1,2부도 마찬가지지만 3부에 들어서면 더욱더 이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연출한 쿠디의 존재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다큐멘터리는 감독의 의도에 따라 완전히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려 노력하는 작품도 있고, 본인이 주인공이 되어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개입하며 사실상 이끌어가는 수준의 작품도 있다. 이 작품 '지-니어스: 카니예'는 카니예 웨스트에 관한 이야기지만 조금 과장하자면 그의 친구이자 연출자 그리고 또 한 명의 아티스트인 쿠디 시몬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레이션을 통해 쿠디는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솔직하게 전달하고 있는데, 이는 객관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주관적이다. 즉, 쿠디 시몬스는 카니예 웨스트의 이야기를 친구인 자신의 입장에서 전달한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주지 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건 이 다큐멘터리의 중요한 판단 지점이 된다.
이 작품에서 연출자인 쿠디는 오랜 친구로서 카니예의 돌발행동들과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들을 일방적으로 감싸거나 대신 해명하려들지 않는다. 오히려 스타가 된 이후 느끼게 된 카니예와의 거리나 어색함을 드러내고, 이후 다시 만나게 된 이후 그의 행보에 대해서도 대중들과 마찬가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하는 쪽에 가깝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카니예를 아티스트로서 존중을 넘어 존경할 때는 물론이고 잘못되고 이상한 행동을 비판할 때조차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에 대한 애정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쿠디가 느끼는 카니예에 대한 애정을 포함한 복잡 미묘한 감정은 이 다큐멘터리 전체에 녹아들어 있는데, 그 복잡 미묘하지만 분명 애정에 기반하고 있는 이 감정은 오랜 여운으로 남는다. 왜냐하면 한 때 뜨겁게 좋아했던 팬으로서 지금 내가 느끼는 카니예에 대한 감정 또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복잡 미묘한 애정에 더해 조금 더 안쓰러운 마음이 깊어졌달까.
이 다큐멘터리의 입장이 그런 것처럼 나 역시 근래 카니예의 행동이나 발언에 동의할 수 없는 점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런 마인드의 근원과 이유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동의하거나 납득할 수 있는가 묻는다면 여전히 부정적이다. 그럼에도 이 3부작의 다큐멘터리는 카니예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 아주 중요한 작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