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상대적 박탈감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능력으로 평가받는 회사에서 상대적 박탈감은 반드시 존재한다

by 아쉬타카

(회사 생활 초기에는 그다지 연봉 협상을 해볼 수 없었지만)이라고 쓰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난 사회 초년생일 때도 제법 연봉 협상을 철저하게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당돌했다. 아주 예전 월급을 처음 100만 원 받게 되었을 때가 그랬는데, 분명 그때 그 월급 받기 이전 사장님은 나에게 다음 달부터는 100만 원으로 올려준다고 했었었다. 그런데 막상 월급날 들어온 금액은 90만 원이었다. 단순히 90만 원과 100만 원은 10만 원 차이 밖에는 안 나지만, 당시 나에겐 단순 10만 원의 차이라기보다는 두 자리 수와 세 자리 수라는 엄청난 차이와 더불어 무언가를 정당히 요구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불탔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참 쪼잔한데) 당시 사장님은 이 10만 원을 안 올려주려고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10만 원을 쉽게 주지 않았다. 지금 같으면 그냥 더러워서 안 받는다 하고 포기했을 것 같은데 당시의 나는 왜 그렇게 집착했는지 이 10만 원을 위해 끝까지 물고 늘었졌더랬다. 그래서 석 달 만인가 이 10만 원을 받아 냈던 기억이 난다. 왜 최종 금액이 10만 원이었는가 하면 그 달을 마지막으로 그 회사를 관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관둔 다음에도 석 달이나 매달려서 겨우 이 10만 원을 받아 낸 것이다. 아, 참고로 나만 관둔 것이 아니라 회사는 이미 기운 다음이었고, 내가 관두고 나서 1달이 채 안되어서 망한 것으로 안다.


(본래 쓰려던 방식으로 돌아와) 예전엔 연봉 협상 다운 협상을 하지 못하였으나,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고 나서는 내가 받고자 하는 금액이나 부가적인 것들을 연봉 협상 기간에 최대하 집중해서 요구하곤 했다. 나는 비교적 작은 회사들이나 스타트업 회사를 다녔었기 때문에 연봉의 수준은 적다면 적었고, 한 편으론 평균적인 수준이기도 했다. 연봉 협상에서의 내 자세는 다니던 회사에서 하게 되는 경우와 이직하게 될 경우가 조금 달랐는데, 경력을 인정받아 이직하는 경우는 전 직장에서의 연봉과 동일하거나 조금 더 받는 정도로 협상하였고, 100% 경력을 인정받기 어려운 경우 (업무의 성격이 달라서)는 처음부터 전 직장의 연봉 수준을 고집하기보다는 일단 1년간 실력을 보여주고 그다음 해에 제대로 된 연봉을 받자는 주의였다.


오래 다니던 회사에서의 연봉 협상의 방식은 조금 달랐는데,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내가 다니던 회사는 규모가 아주 크거나 오래된 회사는 아니었기에 가능했을 기준이었다. 이 방식이 꼭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난 대표님과 협상을 할 때 누구보단 더 받아야겠다와 누구보단 덜 받는 게 맞다 정도로 협상했다. 즉, 절대적인 금액도 물론 중요하지만, 상대적인 기준이 더 중요했다. 예를 들면 내가 연봉 1천만 원을 받는 다고 해도 만약 나보다 회사의 기여도나 경력 등이 적은 이들이 천만 원이 안 되는 연봉을 받는 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반대로 내가 연봉 1억 원을 받는 다고 해도, 만약 내가 저 사람보다는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보다 적은 비용이라면 그리 행복하지 못 할 것이라는 얘기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 연봉 협상 기준은 꼭 옳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회사 생활을 오래하면서 그 동력이 되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도 물론 있지만 인정받고 싶은 욕구의 비중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난 자신 있게 이 정도의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만큼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하고 결과적인 측면도 있는데, 회사 입장에서 그렇지 않아 보이는 직원보다 더 적은 연봉을 준다면 그것은 경제적인 측면 때문이 아니라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결국 이런 것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난 행복한 고민일 수도 있지만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지는 순간을 여럿 맞닥 들였던 것 같다. 상대적 박탈감의 기준은 어쩔 수 없이 ‘내'가 될 수 밖에는 없다. 그 말은 즉슨,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나 역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대상이 될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구조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적은 연봉의 직원 -> 많은 연봉의 직원 -> 사내 주식을 보유한 직원 -> 사내 주식을 많이 보유한 직원



적은 연봉의 직원은 많은 연봉을 받는 직원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랑 일하는 건 그렇게 차이가 있는 것 같지 않은데 왜 이렇게 큰 연봉 차이가 나지?’하는 종류의 박탈감 말이다. 많은 연봉의 직원은 연봉 수준은 어느 정도 만족하지만 사내 주식을 살 수 있는 기회는 부여받지 못했기에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직원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나도 이 회사 다닌 지 오래되었고 기여도도 크게 부족하지 않은데 나는 왜 주식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지?’하는 불만. 주식을 보유한 직원은 연봉도 적지 않고 주식도 갖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주식을 많이 갖고 있는 직원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저 사람이 나보다 주식을 더 많이 갖고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렇게 많이 차이가 나는 건 너무 한 것 아닌가'하는 종류의 불만 말이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이건 끝이 없는 불만 뫼비우스의 띠 이자, 한편으론 자신의 분수는 모르고 불만만 갖는 이상한 구조 아닌가 할 수 있는데, 물론 이 단계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존재한다. 각각의 단계가 1부터 100까지의 정도가 있다면, 각 단계의 100에 가까워진 이들이 당연히 그다음 단계에 대한 박탈감을 느낄 것이다. 간혹 자신은 그 단계의 초반에 있는데 다음 단계에 불만을 갖는다거나 더 나아가 그다음 단계까지 넘보며 불만을 갖는 이들도 있는데, 이런 이들은 이 얘기에서 제외다.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조금은 애매한 위치에 놓인 이들에 관한 얘기다. 이런 애매한 단계가 별로 없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회사의 규모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사실 모든 회사에서 이 상대적 박탈감은 잠재적인 요소라 할 수 있고, 민감한 문제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모든 회사의 직원들에게 존재하는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논란에서 정답은 없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있다. 스스로 얼마나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회사나 동료들의 평가는 누가 봐도 아닌데 자기 혼자만 '난 이 정도는 받아야지'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불만에는 공감을 얻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사실 자신에 대한 객관적 평가라는 것이 가능할까 싶다. '저는 겸손해요'라고 말하는 순간 겸손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스스로 객관적 평가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순간 이미 이기적 평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1차적으로 내 입장을 이야기하지만 회사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쉽게 말해 '그 정도는 아닌데'라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일단은 수용하고자 하는 편이었다. 앞서 말한 객관적 평가가 가능한가 에 대한 문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몇 번 반복되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견디기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스스로의 객관적 평가를 믿어야만 하는 때가 온다. 스스로에게 떳떳하다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끝까지 회사와 대화할 필요가 있다. 좋은 방법은 아닌데 이를 증명하기 위해 어떤 실적이나 목표 등을 두고 거래를 할 수도 있다. 즉, 회사가 지금 나를 내가 보는 것 만큼 인정할 수 없다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도록 보여줄 테니 다시 이야기하자 라는 식. 하지만 이 방식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한 이유는, 이렇게 되면 매번 눈에 보이는 증명을 하는 것이 기본이 될 수 있고 (아시다시피 회사가 커질수록 눈에 보이는 이른바 업적은 점점 줄어들 수 밖에는 없다. 이 업적에만 맹목적인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더 얘기해볼 필요가 있다), 회사 일이라는 것이 내가 150%, 200%를 한다고 해도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을 두고 거래를 하는 것은 처음부터 패배할 수 밖에는 없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작은 회사들은 대게 두 가지 이유로 망한다. 하나는 작은 회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큰 회사가 되었으나 그 과정에서의 성장통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거나 한다. 직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만 회사가 경제적으로 내게 이윤을 주지 못한다면 그 회사를 오래 다니는 것은 어려울 것이고, 회사가 큰 회사가 된 경우에도 그 환경과 상대적 박탈감을 견뎌내지 못한다면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될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결국 답은 두 가지다. 내가 도를 닦거나 회사가 닦거나. 사실 이 답은 두 가지가 아니라 한 가지다. 회사는 결코 도를 닦지 않는다. 그렇다면 답은 다시 두 가지다. 도를 닦으며 회사를 다니거나, 아니면 떠나거나.

나는 떠났다. 도를 닦을 만큼 닦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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