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무엇이 되려 하는가.
회사를 관두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가장 현실적으로는 연봉에 대한 불만족이 있을 것이고, 같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함께 일하는 동료와의 문제도 가장 빈번한 퇴사 이유 중 하나이고, 업무가 본인의 성격과 맞지 않거나 회사의 비전과 나의 비전이 크게 어긋나는 경우도 퇴사의 이유가 된다.
나도 각기 다른 이유들로 퇴사를 했었는데 가장 마지막 회사를 관둔 이유는 앞서 늘어놓은 것들과는 조금 달랐다. 내가 마지막으로 경험한 회사이자 햇수로 8년 간을 다녔던 회사를 관두게 된 이유는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해서 내가 더 이상 회사의 주인이 아니라 부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경영진과 업무 관련하여 대화를 나누던 도중 '아! 회사에서 나를 단순히 여러 부품 중 하나로 여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마치 '드래곤볼'에 등장하는 셀의 촉수에 당해 온 몸을 빨려 버린 인물들처럼, 한순간에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버리는 걸 경험했고 결국 이런 강렬한 체험은 오랫동안 정들었던 회사를 관두는 결정으로 연결되었다.
나는, 내가 다녔던 모든 회사를 진짜 강한 주인 의식을 갖고 다녔었다. 주인 의식이라는 거창한 말보다 더 구체적인 느낌이라면, 정말 회사가 잘 되었으면 하는 의심 없는 진심으로 모든 것에 임했었다. 다른 직원들은 별 문제없이 정상적으로 사용하는 회사 비용들도 나는 최대한 아끼고자 했고, 어떤 결정에 있어서 내 생각과 회사의 입장이 부딪힐 때 내 입장보다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더 나은 결정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고민하고 노력했다. 이건 성격 탓도 있지만 환경적으로도 내가 다녔던 회사들이 다 작은 규모의 회사이거나 권위적이지 않은 회사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내 손으로 직접 만들고 고민하는 일이 많았던 일과 회사는 자연스레 '내 꺼'라는 강한 인식을 갖게 했고, 누가 시키지 않은 일도 내 일이니까 알아서 하게 만들었고, 출퇴근 시간이나 주말과 상관없이 일하는 것도 불만 자체가 없었다 (불만이 있지만 참은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보니 자발적으로 움직였다고 보면 되겠다).
'내 꺼'라는 주인 의식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너무 주인 의식이 강하다 보니 그렇지 못한 동료들을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는 적도 많았다. 내 장점이자 단점은 나를 너무 객관화한다는 것인데, 내 기준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은 경우가 있더라도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큰 문제가 없다면 크게 누구를 다그치지는 않았다. 즉, 주인 의식을 갖고 모두들 나처럼 일한다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 정해진 시간과 정상적인 의무 만을 다하는 직원이 회사에 대한 애정이 없다거나 잘못을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동료가 더 나은 결과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해한다고는 했지만 그 아쉬움이 아주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모든 것들은 바로 강한 주인 의식 때문이었다.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내 것이라는 인식이 더 견고 해지다 보니 처음에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일들도 점점 객관적 시선을 잃어갔다.
마지막 회사에서의 후반기에는 그동안 오래 해온 분야가 아닌 신규 사업 파트를 주로 맡아 계속 발전시키는 역할을 했었는데, 이렇게 비교적 안정적이고 애정이 깊던 업무를 두고 새로운 사업을 찾아간 것은 회사 상황의 어쩔 수 없음도 물론 컸지만, 한 편으론 내가 너무 주인 의식이 강해졌다는 것을 알고는 그 틈을 만들고자 함도 있었다. 즉, 새로운 직원들이 계속 합류하는데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기존 멤버가 너무 강한 주인 의식을 갖고 버티고 있다 보니 자신의 애정을 표현할 만한 틈이 보이지 않을 듯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결정은 나에게는 별로 좋은 결정은 아니었다. 결국 이런 배려(?)는 그냥 내 자리를 내어주는 꼴이 되었는데, 이건 객관적인 모양새 일 수 있으나 나는 지금도 큰 후회는 없다.
이렇게 서비스에 대한 애정을 식히는 것에도 몇 년이 걸렸는데 회사에 대한 애정은 그 회사를 다니는 이상 식히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런 나를 돕기(?)라도 하듯 회사는 정 떨어지게 만드는 일들을 많이 넘겼다. 뭐 내 입장에서는 말이다. 그런 것들도 다 그러려니 하며 대부분 넘겼었는데, 결국 내가 더 이상 주인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부품도 아주 여러 부품 중의 하나일 뿐이구나 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사실 감정적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마 회사에 대한 애정이 덜 깊었더라면 '뭐 회사가 다 그렇지. 나도 부품인 게 맞지, 여러 부품들이 잘 조화를 이뤄야 더 양질의 회사가 되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 (비아냥 거리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애정이 워낙 깊었다 보니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잘 안되었다. 감정적으로 '아, 나도 부품이구나'라는 건 생각보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모든 회사는 직원들에게 덕목으로 주인 의식을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계산적인 측면으로만 보았을 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직원들이 주인 의식을 갖게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일을 일 같지 않게 해나가기 때문에 더 좋은 아이디어와 효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고, 현실적으로 보아도 주인 의식이 없이 다니는 직원들보다는 반대의 경우가 훨씬 더 장기적으로 더 나은 회사가 되는 데에 밑거름이 되는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정한 현실을 보았을 때 이 주인 의식은 참 정도를 다루기 힘든 일종의 감정 같은 것이다. 적당한 수준이 서로에게 좋다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 적당한 수준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확실한 건 부품의 크기나 중요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부품 성격의 직원들로 이뤄져 있고, 회사 역시 부품으로 직원들을 여길 수 밖에는 없다. 같은 기능을 하는 더 튼튼한 부품이 있다면 교체하지 않을 이유가 별로 없고, 계속 문제를 발생시키는 부품이라면 역시 교체하거나 장기적으로는 이 부품이 없어도 가능한 구조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그 부품 하나하나가 '난 부품이 아니에요!’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결코 회사에게 달갑기만 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누군 가는 반드시 '그냥’ 부품일 필요가 있는 것이 회사이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회사는 여러 크고 작은 부품들로 이뤄져 있는 것이 정상인 곳이기 때문에, 부품으로 여겨졌다는 것이 근본적으로는 어떠한 불만의 이유가 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나는 그걸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누구보다 더 잘나거나, 더 오래 다니거나, 더 나이가 많거나 해서가 아니었다. 유치하게 얘기하자면 '내가 이렇게 널 사랑하는데 넌 그걸 어쩌면 하나도 몰라' 같은 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회사에서 나는 부품인가 주인 인가를 따져보자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직원은 사실상 역할만 다를 뿐 모두 부품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질문은 이렇게 바꿔볼 필요가 있다. 나는 부품으로 적당히 살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 안에서 더 큰 부품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인가. 자꾸 부품, 부품 하니까 어감이 좋지 않아 오해하기 쉬운데, 여기서 부품은 결코 부정적 의미가 아니다.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개념이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아니, 오히려 좋은 쪽에 더 가깝다. 난 작은 부품들의 소중함과 역할을 누구보다 지지하는 사람이다.
이 글은 강렬한 주인 의식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은 일종의 염려다. 특히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이들에게 하고픈 이야기다. 큰 큐모의 회사는 입사할 때부터 본인이 부품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대부분 시작한다. 그래서 그것을 기반으로 미래를 도모하거나 발전시키게 마련이다. 내가 이 수 많은 부품들 중에서 어떤 것을 갈고닦아서 더 나은 부품 혹은 더 큰 비중의 부품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을 고민한다거나, 정해진 범위 안에서 어떠한 최선의 노력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거나 하는. 부품에서 벗어나 주인이 되는 것이 보기에 없는 이유는, 다시 말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부품의 개념은 결코 하위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경우는 시작이 조금 잘못되었던 것 같다. 강한 주인 의식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었고, 나 역시 그런 성격이기도 했고. 이 두 가지가 결합하여 완전한 주인 의식 완전체가 되다 보니 약간은 기형적인 생물이 되어 버린 듯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최근 굉장한 장점이자 매력으로 자주 어필되곤 하는데, 물론 그렇지만 그 이면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동반된다는 것도 꼭 알 필요가 있다. 특히 회사 같은 현실적이고 일반적인 세계라면 더욱.
부디 (만약 갖고자 한다면) 더 건강한 주인 의식을 갖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