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보이지 않는 일은 아무도 모른다

왼손도 알 건 알아야 한다

by 아쉬타카

다시 생각해 봐도 난 참 순수하게 (혹은 순진하게) 회사를 다녔던 것 같다. 열심히 일하면 회사가 다 알아주겠지 라는 생각 말이다. 얼마나 순진했냐면 (이번엔 순진이다) 초년생 때도 아니고 관두기 전 14,15년 차에도 저런 심정으로 회사를 다녔더랬다. 실제 그런 회사가 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어딘가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내가 실제 경험한 회사들 가운데는 없었다.


이 매거진의 다른 글들 성격도 모두 마찬가지지만 결코 회사를 나쁜 곳으로 묘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쁘다면 나 스스로를 그렇게 몰아가는 것에 가깝다. 열심히 묵묵히 일하면 회사가 다 알아주겠지 했는데 결국 회사가 알아주지 않았다고 해서 결코 회사가 잘못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기서 말할 수 있는 최선은 '아쉽다' 정도 일 것이다. 10명~15명 정도 규모의 작은 회사일 경우 꼭 경영진이 아니더라도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 보기 싫어도 대부분 보이는 편이다. 누가 열심히 하고 덜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 나와 전혀 다른 분야의 업무를 하는 사람의 일까지 대략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직원들이 50명이 넘어가고 더 큰 규모가 되고 조직이 나눠지고 하면, 회사에서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업무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중간 관리자가 필요한 것인데, 이렇게 작은 규모에서 큰 규모로 짧은 기간 내에 발전한 회사의 경우는 이 중간 관리자의 부제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회사의 일은 그 업종이 무엇이든 간에 성과가 잘 드러나는 일이 있고 죽어라 해도 겉으로는 잘 표현되지 않는 일들도 있다. 여기에 성과가 잘 드러나는 일인데 죽어라 했는데도 다른 불가항력 적인 상황들로 인해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나는 죽어라 했는데도 그 노력의 모습이 받아들여지는 이들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전달되어 왜곡되거나 평가 절하되는 경우도 있다. 다 부정적인 경우만 이야기했는데 긍정적(?)인 경우도 아주 가끔 있기는 하다.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우주가 도와줘서 좋은 성과를 낸다거나, 한두세 번쯤 열심히 했는데 딱 그때 100% 경영진의 눈에 발견되어 좋은 이미지를 쌓는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


이쯤 읽었으면 이제 눈치챘겠지만 나는 눈에 안 보이는 일은 아무도 몰라요 라고 직접적으로 피드백을 받았더라도 결코 '그럼 다음부터는 눈에 보이도록 할게요'라고 따르는 스타일은 아니다. 오히려 '아니, 꼭 눈에 보여야만 일하는 거예요? 이쯤 되면 좀 믿어주면 안 되어요?'라고 목소리를 크게 내었던 쪽이다. 하지만 결과는 '눈에 보이는 게 없는데 어떡해요'였다. 그런데 맞다. 회사가 커질수록 회사는 직원들을 평가할 때 직접적으로 보이는 것들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할 수 밖에는 없다. 그래야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공정할 확률도 더 높고, 어떠한 불만이 발생했을 때 대응하기에도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마 경력이 좀 되는 분들은 공감하겠지만, 이쯤 되면 자존심이라는 게 생겨서 '내가 이렇게 까지 해야 되나?'라는 심정이 솔직히 생긴다. 내가 다 알아서 잘 하고 있고, 하지 말라고 해도 어떡하면 더 잘 될까 고민해서 일하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것에 치중해야 하는 것을 수긍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달 내내 아주 늦게 까지 야근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한 달 동안 한두, 세 번쯤 잠깐 자리를 비우거나 야근을 하지 않은 날 경영진이 사무실에 방문했었고 그로 인해 '크게 야근은 하지 않는 것 같네'라고 평가했다고 치자. 그럼 거의 한 달 내내 야근한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사실 야근을 했다는 걸 어필하고 싶은 마음도 애초에 없었는데, 막상 이렇게 되고 나니 적당히 사회생활을 했어야 했나 라는 생각마저 들면서 더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묵묵히 알아서 일한 걸 몰라준 회사는 잘못이 없다. 나랑 회사만 있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회사에는 수 많은 또 다른 '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묵묵히 보이지 않는 일을 하고자 하면 이러한 평가에 서운함을 갖지 않거나, 스스로 영리하게 행동해서 적절히 어필을 해야 한다. 아마 이 책이 처세술에 관한 책이었다면 어떻게 회사에 어필할 수 있는지에 관해 아주 치밀하게 소개했을 것이다 (즉, 그 방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차라리 서운함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알아주길 바라는 것의 결말은 '말 안 하니까 몰랐지, 누가 그렇게 하래?'라고 하면 '그랬네요'라고 밖에는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되니까 나중에 서운해하지 말고 애초에 호의를 베풀지 말거나, 베풀고도 서운해하지 말라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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