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 함의 화살은 하나도 빠짐없이 내게 독이 되어 돌아왔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나는 참 순진하리만큼 순수한 마음으로 회사를 다녔던 것 같다. 나는 이런 과거를 지금도 몹시 뿌듯해 하지만 절대 남들에게 권하고 싶지는 않을 정도로, 회사 생활에서 가장 바보 같은 행동이 바로 솔직 함이다. 그간의 회사 생활을 통해 솔직함에 대한 교훈을 배울 기회는 여러 번이 있었는데, 왜 인간은 (나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이번에는 다를 거야' '나는 남들과 달라'라는 합리화를 통해 몇 번이고 상처받기를 반복했었다.
나는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굉장히 솔직한 편이다. 표현에 인색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이 솔직한 말이 불러올 파장에 대해 계산하는 것을 꺼려한다. 다른 면에서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를 수십 번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편인데, 내 감정과 의견에 대해서도 똑같은 수십 번의 반복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그 말과 행동의 결과를 바꿀 정도는 아니었었다.
특히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했을 때 더 그랬다. 다녔던 회사 가운데 함께 하기로 의기투합했던 멤버들이 아닌 다른 이가 경영권을 행사하게 되면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나를 비롯한 기존 멤버들과 불화 아닌 불화를 겪었던 시기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처음부터 감정을 드러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 정도의 풋내기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봐도 시간이 지날수록 이 경영진은 결국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은 내보내려고 하는 의도와 행동들이 굳이 보려 하지 않아도 보일 만큼 잦아졌다. 나는 참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일은 남들보다 훨씬 잘 참지만, 반대의 경우는 거의 못 참는 편인데 그냥 개인적으로 나를 내치고자 하는 말과 행동들이 너무 확연히 드러날 정도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솔직함이 터져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오전 근무만 하는 토요일 조금 늦게까지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누가 사무실로 찾아왔더랬다. 다른 동료를 통해 알아보니 다른 동료와 예전 같은 회사를 다녔던 분이었는데, 딱 보니 내 자리에 채용하고자 면접을 온 듯했다. 여기서 이 분한테 화풀이를 하는 것은 정말 하수다. 난 오히려 그분이 불편하지 않게 빨리 자리를 비워주었고, 그렇게 주말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도 이 일에 대해서 따로 경영자를 찾아가 따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작은 일서부터 큰 일까지 사사건건 부딪히는 일이 많았고 결국 어떤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또 한 번 솔직함이 드러나고 말았다.
‘사장님, 그냥 제가 싫으시죠?’ ‘그리고 이미 제 자리에 아는 분 면접도 다 보셨죠?’
이렇게 글로만 보면 내가 쏘아붙이듯이 따진 것처럼 오해할 수 있으나 사실은 그 어느 때 보다 정중하게 찬찬히 물어보았다. 왜냐하면 진짜로 화가 나서 물어본 것이 아니라 그냥 솔직한 답변을 듣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물어볼 때 가장 화나는 결과가 뭐냐면, 상대가 솔직하게 답하지 않을 때다. 차라리 ‘그래요 현이 씨랑 안 맞네요’ '더 적당한 사람이 있어서 면접을 보긴 했어요'라고 말했다면 깔끔했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아니요 와 그런 일 없어요 였다. 이것이 내 오해였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결국 그 토요일 날 왔던 분은 내가 회사를 나가자마자 내 자리에 채용이 되었다.
아, 나는 이 대화를 했던 날인가 그다음 주였나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결국 좋아하는 동료들을 두고 먼저 사표를 냈다. 참고로 내가 퇴사하기 조금 전에 본래 함께 했던 사장님도 먼저 관두셨다. 솔직히 이때만 해도 어린 나이에 일종의 의리 때문에 관둔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이미 찍히기도 했고, 내가 앞장서서 직원들의 불만을 이야기하고 홀연히 떠나야겠다. 그리고 본래 처음부터 함께 했던 사장님이 이렇게 쫓겨나듯 관두는데 나도 더 이상 다닐 수는 없다.라는 쓸데없는 의협심이 이 당시에는 분명 더 컸었던 것 같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하지만 이건 정말 쓸데없는 의협심이다. 아니 의협심도 아니지. 회사라는 것은 이윤 창출을 위해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곳이고, 큰 규모의 회사가 아닐 경우 대부분은 사장님 혹은 경영진이라는 누군가의 돈을 받기 위해 내 몫을 다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의협심이라는 건 무언가 정의로운 일을 하거나 좋은 일을 할 때 필요한 것이지 회사라는 곳에는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자 행동 일터. 그런데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이런 감정이 매우 앞섰던 것 같다. 그리고 그다음, 그다음까지도 이러한 성향을 쉽게 없어지지 않았고, 결국 이런 성향은 매 회사마다 경영진과 다투는 존재로 남거나 그 결과 스스로 퇴사하게 되는 것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내가 솔직하게 말하면 상대도 솔직하게 얘기해 줄 것이라는 건 참 순진한 생각이었다. 내가 계산하지 않고 내 카드를 모두 개봉하고 ‘자, 봐. 이게 다야. 이제 믿을 수 있지?’라고 말하는 순간 상대는 내 패를 이용해 다음 전략을 세웠고, 이미 모든 카드를 써버리는 나는 더 이상 밀당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연봉 협상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난 주변 친구나 후배들에게 ‘1천만 원을 받고 싶다면 1천2,3백 정도를 불러. 그러면 서로 협상하다가 결국 1천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있는 거지'라고 조언하곤 한다. 쉽게 얘기해서 서로 의견 차이가 있다면 중간 정도에서 정리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그 중간을 고려한 위치를 전략적으로 내세워야 한다는 건 기초 중에 기초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나는 연봉 협상할 때 이런 방식으로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냥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밀당하자는 게 아니라 정말 딱 1천만 원을 받고 싶어요'라고. 그러니까 남들한테는 ‘그렇게 하면 바보야’라고 얘기했으면서 나는 회사가 내 본심을 믿지 못하고 밀당하려는 것이나 내가 이걸 가지고 계산하는 자체가 못 마땅해 그냥 솔직하게 단도직입적인 연봉 협상들을 해왔던 것이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런 방식은 의외로 제법 통했던 것 같다. 물론 이건 나 혼자 생각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은 회사에서 1,500만 원 정도 주려고 했었는데 내가 1천 만원만 얘기했을지도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또 하나의 결론을 얘기하자면 연봉은 더 받거나 만족스럽게 받았을지 몰라도 회사에는 확실히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적절히 머리 써가며 협상하는 모습을 취하는 것이 회사에는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 것이다. 나처럼 너무 솔직하게 말하는 직원은 ‘얘는 너무 자기 의견이 강해'라고 인식되었던 것 같다. 솔직해서 좋다가 아니라 쟤는 솔직해서 위험해 라고 판단되었던 것 같다.
확실히 회사 생활에서 솔직함이란 덕목이 아니다. 이른바 '사회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안 좋은 의미로 주로 얘기되지만 사실은 회사라는 곳에 딱 적합한 생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회사라는 곳에서 한 발 물러나 얘기해보자면,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회사라는 곳 자체가 한 편으론 그리 대단한 곳은 아닌 현실에서 나 혼자만 대단한 듯 행동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얘기다. 난 적당히 하는 것을 못 견디는데, 회사는 적당히 잘 하는 사람이 오래 다닐 수 있는 곳이다. 적당히 하는 것이 나쁘다거나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상처받지 않으려면, 혹은 회사라는 곳을 오래 다니고자 한다면, 혹은 회사 전체를 바꾸고자 하는 결의가 없다면, 회사에서 솔직하게 행동하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결국 그 모든 솔직함의 화살은 하나도 빠짐없이 나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 모든 화살을 맞고도 괜찮을 자신이 있다면 솔직해도 좋다.
그런데 나는 그 모든 화살이 나에게 돌아올 줄도 모르고 무식하게 솔직하기만 했었다. 그리고 돌아올 줄 알았음에도 이번에는 그 화살을 다 맞더라도 이겨내고 돌파하리라는 심정으로, 솔직하면 두려울게 뭐가 있어 라며 했던 말과 행동들은 결국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관두게 되는 근원이 되었다.
최소한 회사 생활에서 솔직해서 좋을 것은 없다. 솔직함은 퇴근 후로 미뤄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