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좋은 사람 콤플렉스 #1

어린놈이 꿈을 꾸었구나....

by 아쉬타카
Smile.jpg ⓒ Warner Bros.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을 콤플렉스라고 스스로 부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즉,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의지가 꺾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나처럼 좋은 사람 되는 것에 강박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는 사람들이 또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이제와 되돌아보니 이런 내 성향은 제법 오래전부터 그래 왔던 것 같다.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가 보면 초등학교 때였는데 정확히 어떤 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담인 선생님과의 상담 중 친구 중 한 명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신경 쓰여 불편하고 견디기 힘들다는 얘기를 나눈 기억이 난다. 나는 잘못한 일이 없는데 왜 저 아이는 나를 싫어할까?라는 억울한 심정도 들어 있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내가 누군가에게 미움을 산다는 것 자체를 견딜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이러한 성향은 단순히 나를 싫어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람 간의 의견 차이에서 오는 어떤 문제라도 내가 해결(중제)할 수 있다는 생각과 어떤 벌이나 피해 등이 예상되거나 감수해야만 할 때 주변 사람보다 내가 받는 것이 마음이 더 편한 것까지 발전되었다. 중제와 관련되어서는 이것만 가지고 한 트럭 이야기가 가능한 수준인데 짧게 하나만 얘기하자면 이것도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내가 어느샌가 '아쉬타카 (본래는 아시타카)'라는 '모노노케 히메' 주인공의 닉네임을 웹상에서 닉네임으로 사용하게 된 이유도,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이 중제 본능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참고로 '모노노케 히메'에서 주인공 아시타카는 자연을 대변하는 '산 (San)'과 현실과 사람들을 대변하는 '에보시'사이에서 중제자 역할을 한다). 중제자가 된 다는 것, 정확히 말해 중제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한 자만에서 온 것이 아니라 양 쪽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또 다른 자만심에서 왔던 것 같다. 이제야 말이지만.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그랬던 것 같다. 편을 가르지 않고 모두와 두루두루 친하고, 누구와 섞여서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 했었다. 실제로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내가 원하는 좋은 사람이 되기도 했었다. 특히 규모가 작고 직원들이 아주 많지 않은 수준에서는 그랬던 것 같다. 그때 내 역할 (이것도 스스로가 부여한 역할인 듯)은 직원들 모두와 제법 깊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어서 어느 한 직원과 다른 직원이 서로 갈등이 있거나 무지로 인해 오해를 하게 될 때, 둘 모두를 잘 알고 있는 입장에서 각각 오해하는 부분을 듣고 풀어주는 것이었다. 다른 팀에서 오는 오해, 다른 무리들 간에 오는 오해 그리고 경영진과 직원들 간에 생기는 오해가 그것들이었다.


이런 중제자로서 갈등의 해소가 실제로 가능했었을 때는 스스로 이것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꼈던 것 같다. 실제로 가능했었기에 나로 인해 어떤 오해가 풀리거나 더 좋은 방향으로 결론을 맺게 될 땐 느껴지는 자부심이 대단했었다. 지금 와 얘기지만 차라리 처음부터 이런 일들이 가능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걸, 그래서 더 큰 상처를 받을 일도 없었을걸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것도 글을 쓰게 되면서 더 정확히 확인하게 된 사실이지만, 처음부터 쉽지 않은 길이라는 걸 잘 알고도 끝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어떤 일들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정도로 어려울 줄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정말 힘들었다가 아니라, 처음부터 아주 힘들 것이라는 것도 알고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할 수 있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며 행동으로 옮겼던 경우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들이었다.


회사로 국한 지어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결코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으로 최종적으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었다. 좋은 팀원까지는 어느 정도 가능했던 것도 같은데, 좋은 팀장, 좋은 부장, 좋은 실장 등은 사실상 불가능했던 것 같다.


내가 회사에서 좋은 선임자가 되기 위해서 했던 방법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회사는 어느 곳이든 당연히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 보니 더 나은 결과와 이윤을 내기 위한 것으로 목표를 삼거나 그 목표를 위한 전략과 계획을 짜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느 한 팀에 매출 목표가 있다면 그것을 달성하는 것이 그 팀의 최대 목표이자 사실상 유일한 목표라는 얘기다. 바꿔 이야기하자면 그 팀에게 미션으로 주어진 매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우선이지, 팀원들 간의 우애를 돈독히 하거나 개인 역량을 키우거나 하는 것은 목표 외 일이라는 얘기다. 또한 장기적인 관점으로는 더 나은 결과를 낳을지언정 만약 회사가 단기적인 목표를 더 우선시한다면 그것에 맞춰야 하는 것도 그 팀과 팀장의 임무일 것이다. 이렇다 보면 특히 내가 다녔던 마케팅 회사 같은 경우, 그때 그때의 산적한 일들을 처내기 위한 업무가 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마케팅 대행 회사가 그렇듯 적은 인력과 비용으로 클라이언트의 나은 결과를 내려면 어쩔 수 없이 잦은 야근을 하게 되고 또 쓸데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의 요구사항을 수행해야만 하는 경우도 잦았다.


나는 아직 덜 고생을 해서인지 아니면 이 나이에도 아직 어려서인지, 그 쓸데없다고 여겨지는 일들을 정말로 하기가 싫었다. 특히 내가 팀장이 되고 난 이후에는 적어도 이런 방식으로 팀원들을 이끌고 싶지는 않았다. 설령 그 쓸데없는 일들을 내가 다른 방식으로 쳐내거나 수행해야 했어도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숨기지 않고 팀원들에게 모두 이야기했었다. '사실 회사에서는 나에게 불만이 많다. 그냥 남들 하는 것처럼 까라면 까라고 하지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 라며 매번 부딪히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냥 이러저러하니 시키는 대로 하세요 라고 하고 싶지 않다. 애들도 아니고 다 어른들인데 스스로 알아서 맡은 바를 해내면 더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한 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며 좋은 분위기에서 좋게 좋게 이야기를 마쳤다. 아, 그리고 그 얘기에 더해 '회사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만약 내 방식대로 결과를 내지 못하면 이건 내가 고스란히 책임을 질 수 밖에는 없는 리스크가 큰 방식이다. 난 그래도 이렇게 하고 싶다'라는 얘기도 했었다. 서로 좋게 좋게 잘하면 더 좋지 않을까 라는 얘기도. 하지만 나는 이 방식에 몇 가지 문제가 있다는 걸 이 때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문제란 근본적으로는 직책의 우위에서 쓸 수 있는 카드를 전부 다 공유해 버렸다는 점이다. 특히 '회사는 이렇게 하길 원하는데 나는 내가 책임지고 이런 방식으로 갈 거다'라는 말은 팀원들로 하여금 굳이 이대로 하지 않아도 될 구실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권유한 것에 가깝게 되어 버렸다 (즉, 팀원들이 나쁜 사람들이라서 이를 이용했다는 것이 아니라, 결국 팀장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특히 일반적으로 '이걸 이뤄내지 못하면 죽는다는 각오로 반드시 해내자!' 혹은 '무조건 이거 다 하고 가야 돼'라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이걸 못해도 죽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꼭 해내자. 꼭 무언가를 담보 잡혀야만 할 수 있다는 건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이잖아'라는 방식은 아무래도 전자와 같은 에너지를 발생시키기엔 너무 이상적인 방식이었던 것 같다.


내가 '좋은 사람 콤플렉스'라는 글에 팀을 운영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까닭은, 이 역시 그 근본에는 팀원들에게 꼭 좋은 사람, 좋은 팀장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자각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좀 더 팀장이 명확히 목표와 임무를 주고 (설령 그것이 '까라면 까' 방식이더라도)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달성할 때까지 강제적으로 압박이나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팀을 운영했다면 더 목표 달성에 용이했을 것이지만, 그 과정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서로 얼굴을 붉히거나 특히 내가 팀원들에게 안 좋은 소리를 강한 어조로 해야만 했었을 텐데, 그것이 싫었던 거다.

내 입장에서 아주 불리하게 이야기하자면 목표 달성에 실패하는 것보다 팀원들이 나를 욕하는 것이 더 견디기 힘들고 불편했던 것 같다. 내 입장에서 아주 유리하게 다시 말하자면, 팀장과 팀원이 서로 얼굴 붉히고 명확한 수직 구조로 이뤄지지 않더라도 동일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었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일 테고. 이렇게 얘기하면 결국 '너는 더 고차원적으로 아름답고 이상적인 제안을 했는데 수준 낮은 팀원들이 따라주지 않은 것이라는 얘기 아니냐'라거나 '팀장으로서 고생 안 하고 쉽게 쉽게 가려고 했던 것 아니냐'라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는데, 결코 그런 것은 아니다 (이에 관한 것은 다음 챕터에서 자세하게 얘기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실제로 비슷한 얘기도 경영진으로부터 들었었고. 그것이 앞서 이야기 한 이 방식에 가장 큰 리스크 였고.


물론 하나의 팀을 이끌어 가는 것, 더 나아가 회사 생활 속 동료들과의 유대적인 관계를 이어간다는 것은 더 복잡하고 많은 요소들이 영향을 주고받는 일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회사를 관둔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여러 요인들 가운데 이 콤플렉스가 가장 근본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실패할 확률이 높은 일을 이상적인 결심으로 강행하고 결국 실패했던 것도 그 근저에는 '나는 모든 이들로부터 좋은 사람으로 남겠어'라는 욕망이 있었다. 그 욕망으로 인해 나는 회사에서 좋은 사람도 되고 일도 잘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지만, 역으로 그 순진한 바람 때문에 더 큰 상처를 겪어야만 했다.

스스로 덫을 놓았고, 덫인 줄 알고도 발을 들였고, 결국 덫에 걸려 상처받은, 이런 어리 석은 자를 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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