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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쉬타카 Mar 15. 2016

15. 책상의 노예

이유를 찾았다 (찾았다고 보고 싶다).

전문 작가들처럼 글을 유려하게 잘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언가 생각이 떠올랐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내 생각을 글로 옮겨 적는 것은 습관처럼 오랜 시간 해왔던 일이라 제법 익숙해졌다. 펜과 노트에서 데스크탑으로 그리고 노트북으로, 다시 펜과 노트를 바꿔가며 여러 글들을 써왔었는데, 회사를 관두고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자유로운 시간은 회사 다닐 때 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음에도,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글들을 쓰지는 못했던 것 같다. 원고료를 받고 작성하는 글들은 마감이라는 특수한 압박 때문에 초인적인 잠재력이 발동되어 사실상 그 어떤 환경적인 문제도 제약이 되지는 않는 편이지만, 그 외에 개인적인 글들은 확실히 회사를 다닐 때 보다 더 잘 써지지 않았다. 


특히 나처럼 개인적인 글의 경우는 '쓴다'기 보다는 '써진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텐데, 여유 시간은 한가할 만큼 넘쳐 났는 데도 글이 잘 써지지 않는 이유를 더 늦기 전에 찾아야만 했다. 처음에는 공간적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 흔히들 그러는 것처럼 나 역시 카페에 노트북을 가져가서 이어폰을 꼽고 글을 자주 썼던 편인데, 실제로 이렇게 하면 글이 제법 잘 써졌다. 하지만 멀쩡히 집이라는 자유로운 공간이 있는데 굳이 돈을 들여가며 카페에 가야만 글이 써진다는 것이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집에서 써보려고 몇 번을 노력했는데 매번 실패한 것은 아니었으나 대부분은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 집이라는 공간 자체 때문에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일까? 왜 프리랜서로 작업하는 이들이 집과 회사의 구분이 없어서 집에서 쉽게 일을 진행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그 보잘 것 없는 자존심만 아니면 그냥 카페에 나가서 쓰면 되는데, 이것도 하나 극복 못하는 게 못 마땅해서인지 그것 말고 다른 본질적인 이유는 없을까 계속 생각해 본 결과, 원인은 공간이 아니라 책상이 아닐까 하는 결론이 나왔다.


회사에서는 그 타이트한 점심시간 잠깐이나 일찍 출근해서 본격 업무를 시작하기 2~30분 전의 짧은 시간에도 정말 글이 술술 써지곤 했었다. 계속 이야기한 카페에서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집에서 잘 안 써진 이유를 분석해 보니 회사와 카페에는 있는데 집에는 없는 것이 바로 책상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집에 책상이 있었고 독립하고 나서는 책상이 있기는 했으나 당시 워낙 좁은 옥탑방이었기 때문에 책상 위에 커다란 데스크탑 컴퓨터를 설치하고 나면 별로 공간이 없었다. 그 이후 이사 가면서 책상을 두기는 했는데 이 때는 또 다른 이유로 (인테리어였나 --;) 기존 책상을 좌식으로 설치해서 사용했었다. 장시간 컴퓨터 앞에 있으면 허리가 좀 아프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좌식 책상에서 많은 작업들을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과 이 바로 전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는 집에 책상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결국 주로 밥상으로 사용하는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놓고 글을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무래도 그 기운이 책상과는 달랐던 것 같다. 그래, 바로 책상이었다! (역시 모든 인간의 딜레마는 자기 합리화로서 극복 가능!)


다행히 곧 이사 갈 집의 포인트 중 하나는 바로 책상이다. 몇 년 만에 다시 내 책상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좀 우스워졌다. 카페에서만 글 써지는 게 자존심 상해서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자 한 것이었는데, 결국 책상이 없으면 못 쓴다는 결론이라니. 결국 책상의 노예인가...


(이 글도 카페에서 쓴 글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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