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 해도 다니고 싶지는 않을 것.
이상한 회사가 구직에 목마른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 흔히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물론 이런 회사들은 실제 가보면 이런 가혹한 가족이 있나 싶을 정도로 체불에 사기에, 제대로 된 회사가 아닌 경우가 많다. 이런 사기 치는 회사를 제외하더라도 실제로 많은 회사들이 가족 같은 분위기나 직원을 식구로 표현하는 경우는 여럿 찾아볼 수 있다.
나도 이렇게 말하는 회사를 몇 군데 다녔었다. 제대로 된 첫 번째 직장이었던 20살, 21살 무렵에 다녔던 회사는 회사도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말했고 나 역시 그 말을 진심으로 믿었었다. 그땐 정말 어렸으니까. 당시에도 순진한 편은 절대 아니었는데 가족 같은 회사가 가능하다는 걸 진심으로 믿었던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1년 넘게 열심히 다녔고, 좀 더 시간이 지난 어느 날. 회사가 이사 가게 된 그 날 일은 벌어졌다.
당시 한국의 아마존을 꿈꾸었던 당시의 회사는 제법 괜찮은 회사였으나 결국 경영난으로 인해 어려워져 주력 직원들이 여럿 퇴사하였고, 나를 포함해 남은 직원들은 기존 창고까지 있던 넓은 사무실에서 작은 사무실도 아닌, 다른 회사 사무실 내의 작은 방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이 사무실에서 아마 2~3달 정도 더 다녔던 것 같은데 이때 기억은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요즘 유행하는 것처럼 스타트업끼리 사무실을 공유하는 그런 형태가 아니라, 진짜로 그냥 다른 회사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작은 문을 열면 우리 사무실이 나오는 그런 굴욕적인 (당시엔 정말 굴욕적이라 느껴졌다) 형태였다. 그 굴욕적 느낌이 얼마나 강했는지, 그 이후로 서울대입구역 근처에도 다시 가 본 일이 없다.
이렇게 회사의 운이 기울어 굴욕적(?) 사무실로 이사 가던 그 날. 당연히 이삿짐센터를 부르는 것은 없었고 아침부터 몇 안 되는 직원들이 열심히 짐을 나르고 또 나르기를 한 참. 대충 마무리가 될 즈음엔 이미 저녁 아닌 밤 시간이었다. 사무실의 크기를 워낙 줄이다 보니 이 작은 사무실에 기존 짐을 다 보관할 수가 없었고 (이것도 그 날 저녁에야 알았지만) 이사가 마무리될 무렵 사장님은 남은 짐이 가득 실린 용달 트럭을 불러 나에게 같이 타라고 한 뒤, 본인은 자리가 없으니 차로 따라가겠다고 했다. 조금 미리 만 알려줬더라면 준비라도 했을 텐데 '이제 이사 정리가 다 끝났구나..' 생각할 즈음에 갑자기 트럭을 타고 어디를 가야 한다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여기서 기분이 특별히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뭐 일이 좀 남았구나 생각했지. 더군다나 사장님과 이사님도 바로 따라온다고 했고.
하지만 사장님은 그 날 따라오지 않았고, 연락도 되지 않았으며 나는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에 그곳이 어디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컴컴한 창고에 내리게 되었다. 아직 현실 파악이 다 안되서인가 화가 난다기 보다는 당황스러운 것이 더 먼저였는데, 그 컴컴한 창고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이삿짐을 인계하고 나니 이제야 현실이 좀 파악되었다. 용달 트럭 아저씨는 자기는 따로 전달받은 일이 없다며 그 파주 공장 지역에 나를 그냥 두고 떠났고 (그렇다. 파주였다), 나는 당황스러움보다는 공포가 느껴지는 그 컴컴한 곳을 한참이나 홀로 걸어나와 겨우겨우 택시를 잡아 탔다. 택시를 타자 마자 기사 아저씨가 하는 말이 '아니, 이 시간에 왜 이런 곳에 있어요'라고. '그러게나 말입니다'.
정말 긴 시간이 걸려 집에 돌아오고 나니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분노라기보다는 서운함이 폭발했던 것이겠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싶은 마음이 들어 다음 날 회사를 처음으로 무단결근했다. 그 다음날 출근을 하니 같이 일하시던 총무 아주머니가 아이고 고생했다며 차라리 어제 회사 잘 안 왔다고 말해주더라. 사장님과는 얼굴을 마주쳤으나 별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 주였나, 이사 온 기념으로 회식을 했는데 참고 있던 감정이 여기서 폭발했다. 차라리 미안하다고 먼저 어른이 한 마디 했으면 어쩔 수 없었을 것 같은데, 끝까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하는 것에 울분이 폭발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어떻게 가족 같은 회사라면서 이럴 수가 있어요! 이런 게 가족이에요?!'라고 말하고는 더 울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진짜로 가족 같은 회사를 믿었던 것이지. 지금 같으면 그냥 욕하고 말았겠지만 이 때는 마치 배신당한 것처럼 감정에 너무 큰 상처였다. 그래서 술집에서 그렇게 울었고, 아마 서울대입구역 근처를 다시는 안 간 이유는 이 굴욕적 기억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이후에도 다른 회사에서 몇 번 가족 같은 회사라는 것에 믿음을 저버리는 일들이 있었다. 나는 그때마다 '가족한테 이럴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었는데, 최종적인 결론은 회사란 곳은 가족 같은 분위기를 지향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회사가 아무리 편하다고 해도 내 집만큼 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혹 그만큼 편하다고 하더라도 집과 회사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 더 회사 일을 잘하고 싶은 나에게도, 집을 안식처로 느끼는 나에게도 모두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개인적인 생활과 회사를 분리해야 한다는 말을 너무 적극적으로 하는 바람에 마치 개인의 삶만 중요하고 회사는 뒷전이라는 오해를 샀던 것 같은데, 사실 이 오해는 오해가 아니다. 내 개인적인 삶을 위해 회사를 다니는 것이고, 당연히 회사는 내 삶 다음의 순서이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내 개인적 삶 바로 다음 순서일 만큼 중요한 곳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개인적 삶의 소중함을 지켜내기 위해 회사에서의 삶은 더 열심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고. 아주 가끔 회사가 곧 삶인 이들도 볼 수 있지만, 나는 내가 내 사업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얘기하면 아무래도 곱게 볼 상사는 많지 않을 것도 이해한다. 거짓말이라도 전 회사가 항상 최우선입니다 라고 말하는 직원이 더 예쁠 수 밖에는 없겠지.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 가족 같은 회사가 존재하느냐고 묻는 다면, 가족 같은 회사가 회사(직장)라는 곳의 이상향으로서 옳은 것인가 라고 되묻고 싶다. 회사라는 곳은 어느 정도 '나'와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더 서로에게 효율적이고, 더군다나 가족 같은 분위기라는 것을 내세울 경우 진짜 가족은 대립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든 극복해 낼 원초적인 힘을 갖고 있지만, 회사는 그렇지 못하다 보니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채 이별할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회사는 회사 나름대로 직원들과 그 만의 유대감과 이상향을 갖고, 가족은 가족 만의 것으로 남겨두는 것이 더 건강한 삶과 사회생활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