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나 없으면 안 되는 회사를 만드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내가 다녔던 회사들의 특성상 나 없으면 안 되는 회사인 경우가 (어쩔 수 없이) 많았다. 초기에 다녔던 회사들은 아무래도 각 파트별로 담당자가 1명인 경우가 많았다 보니 담당자인 내가 없으면 당장 업무가 진행되지 않는 환경이 대부분이었다. 이 경우 휴가를 가거나 부재중일 때는 사실상 업무가 중단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거의 자리를 비우는 것이 어려웠다. 이후 가장 최근까지 다녔던 회사는 퇴사 전에는 100명에 가까운 직원이 다니는 제법 큰 회사였지만 처음엔 7~8명이서 시작한 스타트업이었기 때문에, 일당백이 되어야 해서 역시 나 없으면 안 되는 회사에 가까웠다.
나는 아주 예전에도 '나 없으면 안 되는 회사 vs 나 없어도 문제없는 회사' 중 무엇이 더 나은 가에 대해 깊게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결론은 후자였다. 직원 한 명이 있고 없고에 따라 업무가 마비되거나 퀄리티가 떨어진다면 그건 전체적인 회사의 이미지나 업무 퀄리티를 보장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담당 직원이 자리를 비우거나 들고 나기를 반복해도 전체적인 업무의 수준에는 큰 차이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에 중점을 두기 시작한 업무가 바로 내 업무를 중심으로 전반적인 업무에 대해 매뉴얼화하고 프로세스화 하는 작업이었다. 이 필요성을 처음 느꼈던 것은 두 번째 회사였나, 퇴사를 할 때 인수인계 문서를 정리하면서였던 것 같다. 이후 이직한 회사에서는 자리를 잡자마자 업무를 매뉴얼화하는 작업을 진행했었고, 마지막 회사에서는 아예 일을 처음 착수하는 시점부터 프로세스화 하는 것을 동시에 고민하면서 시간을 절약하고자 했다. 그렇다 보니, 퇴사를 한 뒤 노트북을 정리하면서 수많은 매뉴얼 문서, 교육 문서, 키노트 파일 등이 남아 있기도 했다. 그 많은 매뉴얼들을 보니 새삼 참 업무에 많은 애정이 있었구나 싶더라.
다시 돌아와서. 그렇게 내 지론은 '나 없이도 문제없이 잘 돌아가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매뉴얼화하는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입장이 아니라, 해당 업무를 잘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 최대한 정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업무를 맡게 된 후임자나 내 부재중에 잠시 처리하게 된 담당자가 매뉴얼만 보고도 어느 정도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드는 것, 마치 업무 설명서를 만드는 것과 같은 작업이었다.
그렇게 여러 가지 매뉴얼, 프로세스를 만들다 보니 나중에는 실제로 나 없이도 내 업무를 어느 정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렇다 보니 내 입장에서는 다른 이슈가 발생했는데, 회사에 어떤 새로운 일이나 사업을 진행할 때 내가 투입되어야만 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여기엔 좋게 얘기하면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하나는 매뉴얼, 프로세스 화 하는 작업에 능했기 때문에 새로운 사업을 만들고 자리 잡는 역할이 주어졌을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내 업무를 최대한 프로세스화 해 나 없이도 진행이 되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다른 직원에 비해 차출이 용이했던 것이다. 이 시리즈를 쓰면서 최대한 장단점과 객관화된 시점을 쓰고자 노력하는 편인데, 이 부분은 진짜로 이런 의미에서 새로운 사업들이 계속 내게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회사에서는 그때마다 나한테 '아쉬타카 님 밖에는 맡을 사람이 없어요'라는 말과 함께 부탁을 했었고, 나는 대부분 거절하다가 결국은 떠맡았던 것 같다.
자, 여기서 그렇게 새롭게 맡았던 사업들이 성공했느냐 못했느냐는 이 글의 포인트가 아니다. 그렇게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회사를 어찌 되었든 만들어 낸 결과가 어땠느냐가 포인트다. 결론은 좋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에서 몇 번이나 퇴사를 할 뻔한 시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남아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회사가 간곡하게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회사는 적은 인원의 스타트업으로 시작해서 인원이 점점 늘어난 경우기 때문에 초기 멤버들의 역할은 클 수밖에 없었고, 다른 멤버들에 비해 (어쩔 수 없이) 이것저것 안 해 본 파트가 없었던 나는 새로운 사업을 세팅할 때마다 매번 선두에 서게 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이것은 내가 특별히 특출 나서라기보다 직원들의 인력 구조나 업무 특성상 내게 많이 집중될 수 밖에는 없었던 터였다.
실제로 회사는 내 말고는 대안이 없던 시절이 길었다 (이것도 내 업무 능력 때문 만이 아니라 인력 구조 특성의 이유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가 커지고 대안이 생기고 나면서부터는 확실히 달라졌고, 나는 어느 정도 미리 예상할 수 있었다.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회사를 만드는데 주력했던 나는, 대안이 생기는 순간 아무래도 효용 가치가 떨어질 수 밖에는 없었다. 물론 이렇게 얘기하면 '그래도 대체 불가능한 직원이 되었으면 되는 것 아니었나?'라고 질문할 수 있을 텐데. 맞다. 대체 불가능한 직원이 되었다면 좀 더 나았을 것이다.
내 경우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조금 일반적이지는 않은 경우일지도 모르겠다. 구조상 객관적으로 봐도 나 밖에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던 경우가 많았고, 그렇다 보니 초중반을 제외하면 중반부 이후부터는 계속 파트를 옮겨 다니고 새로운 일들만 맡아서 하다 보니 이미 여러 곳에 대안이 존재하는 것은 물론, 회사에서도 더 이상은 나만을 찾지 않아도 되었다. 아, 여기서 중요한 또 다른 점은, 단순히 대체할 수 있는 직원들이 생겨서 효용 가치가 떨어져 회사에서 더 이상 잡지 않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여전히 새로운 사업을 시도할 때 여러 번 새로운 사업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나는 또 다른 대체 불가능한 경험을 가진 직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과가 좋지 않았던 건 그 과정 중에 나 스스로가 너무 지치고 회사에 대한 비전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매번 새로운 분야, 그것도 기존 업무나 회사의 방향성과 상당 부분 이질감이 느껴지는 업무들을 지속적으로 드라이브하는 과정은 그 업무의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에너지가 고갈되는 과정이었고, 상대적으로 내가 계속 맡아서 했더라면 더 잘 되었을 업무들이 다른 직원들의 담당으로 발전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감정의 소모가 컸다.
그렇다 보니 결론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내 업무는 나만이 마스터가 돼서 나 없으면 안 되는 구조를 더 확고하게 만들걸. 그래서 회사에서도 어떤 새로운 사업을 만들 때 다른 직원한테 그랬던 것처럼 '아쉬타카 님도 빠질 수 없고'라며 자연스럽게 제외가 되어, 더 해당 업무에 집중하고 대체 불가능한 직원이 자연스럽게 될 수 있었을 텐데. 지금 와 다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워낙 사랑했던 회사와 서비스였기에 '그랬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가끔 들곤 한다.
사실 아직도 머리로는 '나 없으면 안 되는 회사'는 여전히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회사'를 만들고자 한다면 한 번쯤 잘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단 회사의 환경이나 상황이 그런 맥락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구조인지, 아니면 정반대로 그것이 제 발로 더 나은 회사 생활을 걷어 차는 꼴인지를 말이다. 솔직히 나 없으면 안 되는 회사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는 유리하다. 덜 모험적이고. 나는 회사를 좀 모험적으로 스릴 있게 다녔지만, 사실 회사는 모험적으로 다닐 필요가 없는 곳이다. 안정적인 곳이 되어야지.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