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 잊지 않는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좋은 부모님을 둔 덕에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났던 민주화운동의 의미와 전두환 군사정권이 벌인 참혹한 현실에 대해 또래의 친구들보다 더 먼저, 그리고 더 많이 알 수 있었다. 내 또래의 친구들은 대학에 가서나 알게 되거나 혹은 고등학교 때 선생님을 통해, 아니면 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에 반해,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관련 사진이나 자료, 공연 등을 접할 수 있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5.18 광주를 인식하게 되었었다.
비록 당시 광주를 겪지도 않았고 광주 사람도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5.18에 대한 많은 이야기와 관심이 있었기에 스스로 죄의식과 슬픔을 가질 수 밖에는 없었는데, 그럼에도 '나는 5.18 세대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또 빚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단지 당시를 직접 겪지 않았다는 세월의 물리적 이유를 제외하더라도 나 스스로 내가 5.18 광주 세대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무언가가 남아 있는 듯했다.
사실 2년 전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부족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5.18 광주에 많은 영향을 받은, 그 세대 아닌 세대라고 생각해 왔었다. '나는 무슨 세대다'라고 얘기할 때 단순히 나이와 시대적 조건보다는 정신적(영혼)으로 얼마나 공유하고 공감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보았을 때, 더욱 그러했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그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간접적으로 겪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나는 '세월호' 세대일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을.
어떤 사건이 더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더 의미 있는 가를 논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내가 세월호 참사와 2년 간의 일들을 지켜보면서 깨닫게 된 것은, 한 사람이 자신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어떤 한 인물이나 한 사건 등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더 큰 영향을 받고 시대적 부채와 공감대 혹은 죄의식을 느낄 수 밖에는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저 검은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TV를 통해 물 밖을 바라보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던 경험은,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가장 끔찍한 경험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그것도 다른 종류의 무력감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이 바닷속에 가라앉는 것을 지켜봐야 만 했던 경험은, 단순한 무력감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회의마저 느껴지는 패닉 상태였다. 그리고 가족을 또 어린 자식들을 두고 멀리서 소리치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던 부모들을 지켜보는 심정도, 표현할 수 없었지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정도의 슬픔과 미안함이었다.
하지만 내가 나 스스로를 세월호 세대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그 날, 그 참사 때문이 아니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세월호가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긴 이유는, 배가 침몰한 사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사고를 나라가 어떻게 수습하고 처리했는가에 대한 문제 때문이다. 수많은 이들의 생명을 두고 벌어진 일련의 무책임하고 비인간적인 처사들은 쉽사리, 아니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는 만행들이었다.
그때마다 유족들은 '당신 자식이었어도 이럴 수 있나!'고 토하듯이 물었었는데, 그 간의 만행을 보면 이 사건을 무마하려고 수많은 영혼들을 희생시킨 이들에게, 과연 자기 자식이었다면 달랐을까 싶다.
정쟁도 할 수 있고 의견도 당연히 다를 수 있고, 각자의 이익을 지키거나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주장을 펼칠 수는 있다. 그 방식이 아주 고약하고 나쁜 방식이라 하더라도 이해는 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생명이 달려 있는 문제이지 않았나. 어떻게 수많은 생명들을 두고, 또 이미 앗아가 버린 생명들을 위로하지는 못할 망정 그 유가족들마저 또 다른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인간으로서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비 인륜적인 행태들이 벌어지는 것을 무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켜보게 되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고, 또 포기하고, 또 결심하게 되었다.
4월 16일.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세월호는 아직도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으며,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9명의 실종자가 있고, 유가족들은 아직도 거리에 있다.
한 없이 위로받고 사과받아도 모자를 유가족들이 오히려 거리로 나와 목이 터져라 외치며 투사가 되어버린 쓰라린 과정을 보면서, 이건 더 이상 흘러가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월호 사고, 그리고 이후 벌어진 진짜 참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누군가는 이제 그만하라고, 언제 적 세월호 얘기를 아직도 하냐고 말한다. 며칠 전에도 세월호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과 많은 추천 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놀랐다기보다 큰 충격을 받았다. 나라를 구하다 죽은 것도 아닌데 이제 그만 좀 요구하라느니. 이제 좀 그만 하고 후배들한테 교실 좀 내놓으라느니. 정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런 말을 유가족들에게 할 수 있다는 건 나로서는 이게 가능한 일인가조차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만 하라니. 누가 감히 그들에게 그만하라고 말할 수 있나. 최소한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줄은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2016년 4월 16일. 아직도 세월호는 바닷속에 있고, 진상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아마 세월호 참사는 내 삶에서 앞으로도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끼칠 것이다. 대한민국을 사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러기를 바란다.
나는 세월호 세대다.
나는 절대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