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실패하는 경험은 적을수록 좋다

회사에서의 실패는 경험보다는 사기 저하가 더 크다

by 아쉬타카

흔히들 성공에서 얻는 것보다 실패에서 얻는 것이 더 많다고들 한다. 물론 대부분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회사 만을 두고 봤을 때 누가 묻는 다면 결코 같은 대답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실패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치는 물론 의미 있는 것들이지만 그 실패가 잦아지게 되면 그건 경험보다는 오히려 사기 저하로 이어지기 쉽다. 특히 과정 중의 작은 실패들은 충분히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지만, 결과의 실패는 한두 번이면 족하다. 경쟁이 주가 되고, 주어진 바를 이루는 것이 목적인 회사라는 곳에서의 실패라는 결과는 회사에 마이너스가 되기 이전에, 개인에게 더 큰 마이너스가 되곤 한다.


회사를 관두고 나서 찬찬히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던 중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퇴사의 이유들을 알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중요한 이유 하나가 바로 잦은 실패의 경험이었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일을 정말 못해서 매번 실패만 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가슴에 손을 얹고 그 정도는(?) 아니었다. 만약 그 정도로 일을 못했다면 더 쉬운 일을 계속 맡겼거나 하지 않았을까.


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마지막 회사에서의 내 역할은 주로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 가는 일이었다. 이미 메인 사업으로 자리 잡은 파트들 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준비해야 하는 사업이나 현재의 부족함을 채워 줄 다른 사업을 맡아 세팅하고 자리 잡도록 하거나 혹은 이제와 얘기지만 시험해 보는 성격의 사업들을 주로 맡아왔었다. 이런 내 역할이 결국 중요한 퇴사의 이유가 될 줄은 몰랐던 것처럼, 처음에는 몇 번의 실패가 계속되어도 피부로 느껴지는 자괴감이나 사기 저하는 크게 없었다. 왜냐하면 역시 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 일들은 대부분 스타트업의 직원 구조상 당시 나 밖에는 할 만한 사람이 회사 내에 없기도 했고, 그렇기 때문에 성공 확률은 높지 않지만 만약 해낸다면 더 나은 활로를 개척할 수 있겠다는 일종의 타의로 인한 생긴 욕심도 있어서, 능동적 선택이 아예 없었다고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선택했던 사업들은 대부분 현재 회사가 주로 하고 있는 사업과는 거리가 있고 (간혹 아주 먼 거리가 있기도 했고), 그 간의 경험을 통해 간단히 머리를 굴려봐도 잘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몇 번은 설령 그 어려운 걸 해낸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득이 되는 것이 별로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일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 그냥 '제가 할게요'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 대부분 회사의 결정에 반해 끝까지 '이건 아니에요'라고 싸웠던 입장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성공 확률을 떠나서 회사는 새로운 시도(활로 개척)가 주기적으로 필요했고 대부분 나 외에는 딱히 당시의 상황상 (능력상이 아니고) 맡길 만한 중간 관리자급 이상의 직원이 없었으며, 더 나아가 지금 와 얘기지만 내가 처음에는 저렇게 반대해도 결국에는 맡아서 할 것이라고 회사는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도 그랬고.


예상했겠지만 그 결과는 대부분 좋지 않았다. 그 이유는 새로운 사업을 착수하기 전에 내가 반대했던 그 이유들 때문이었다. 스타트업의 특성상 선택과 집중의 문제에 매번 닥치게 되는데, 집중이 항상 옳은 결정은 아니지만 대부분 집중이 옳은 결정일 때가 많다. 아니, 따지고 보면 '선택'을 선택하더라도 그 이후엔 선택된 것에 대해 집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집중의 결정은 항상 옳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반대했던 이유는 대부분 집중하지 못한 곁가지 사업이었기 때문이었고, 과정은 물론 결론적으로도 크게 얻을 것이 없는 사업이었는데, 결론적으로 다 그렇게 잘 되지 않았다.


물론 애초에 반대를 했음에도 회사가 이러한 실패에 대한 책임을 나에게 묻거나 해서 불만이었던 것은 아니다. 정반대로 차라리 책임을 내게 묻더라도 맡겼으면 더 제대로 된 신경을 써주거나 관심을 가져주는 편이 좋았을 텐데, 마치 회사도 '그거 어차피 잘 안될 것 같은데...'하는 심정으로 한 번 테스트해보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더 불만이었던 것이다. 즉, 이런 식이라면 될 일도 안될 수 밖에는 없는데, 실제로 안되었을 때 '와! 내 예상이 역시 맞았지?'하고 기분이 좋을 리는 만무하고, 몇 차례 실패를 거듭하는 와중에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사기와 회사에 대한 비전은 바닥으로 치닫고 있었다.


비슷한 과정 중에 그렇게 매 사업마다 팀이 새롭게 구성되고, 전혀 다른 신 사업을 위해 그에 맞는 직원을 새로 뽑고 하던 중, 결국 기존 회사의 메인 사업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직원을 뽑아야 했거나, 아니면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년 이상 그 사업에 매달렸던 팀원들이 다시 새로운 업무와 팀으로 개편되어야 할 때 나는 회사에 정말 많은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때 회사의 대답은 참 허무하게도 '걱정 마세요, 그렇다고 자르거나 하지는 않을 거예요'라는 거였다. 직원 각자가 회사원으로서의 커리어가 있고, 또 그렇게 적지 않은 시간을 매달린 사업에 전문가가 되고자 투자한 시간과 경험, 노력이 있는데 그것들이 사실상 물거품이 된 것에 대한 대답이 '그래도 자르지 않아' 밖에는 없었다는 게 참으로 안타까웠다. 더 안타까웠던 건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었다는 것이고.


실제로도 회사는 나를 비롯해서 새로운 사업에 투입되거나 채용되었던 직원들을 자르거나, 감봉하거나 하는 일은 결코 없었고, 오히려 연봉 협상 등에서도 이를 불리하게 적용하지 않았지만, 서두에 얘기했던 것처럼 이 잦은 실패의 경험은 결국 나를 스스로 좀 먹게 만드는 하지 않았어야 할 경험이었다. 특히 이미 관리자로서 어떤 업무에 대해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불가능해졌다기보다는 신뢰를 잃게 되었다는 편이 맞겠다), 회사는 괜찮다고 하지만 그때마다 개편되어야 했던 팀원들을 마주하는 게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아마 나 같은 성격의 사람들은 비슷한 선택을 해왔거나 앞으로 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생각해도 불리하거나 앞이 뻔히 보이는 실패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보자'라거나, '나 말고는 없지. 누군가 해야 한다면 그나마 내가 하는 편이 나아'라는 맘으로 덥석 '또' 선택할 지도 모른다. 그런 선택을 여러 번 해봤던 입장에서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은, 굳이 그런 짐을 스스로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짐을 더 졌다고 고마워하는 사람도 없고, 그 짐은 결국 고스란히 나한테 돌아오기 마련이며, 회사는 그 짐을 어느 시점이 되면 내려놓으라고 하지만 나는 결국 내려놓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본인의 촉으로 안될 것 같거나 끝이 좋지 않을 것 같은 일은 애초에 무슨 일이 있어도 거절해야 한다. 그건 결코 회피가 아니라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합리적 거절일 뿐이다. 거절한다고 해도 회사에 큰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결론적으로 그 선택의 과정이 어떠하였든 간에, 그리고 그 책임 전가의 여부를 떠나 회사에서 실패하는 경험은 적을수록 좋다. 회사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실패가 예상되는 일은 최대한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더 발전할 수 있고, 특히 직원 입장에서 잦은 실패의 경험은 결국 트라우마 아닌 트라우마가 되어 열정적이었던 비전을 끝내 꺾고야 만다.


퇴사 시점의 나는 완전히 방전되고 무기력한 상태였는데, 이런 실패의 경험이 크게 한몫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오래 다니고 싶었던 회사를 스스로 관둘 수 밖에는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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