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을 품었으니 적절한 해독이 필요한 시기다
나는 보기보다는 소속감이 강한 사람이다. 말 그대로 소속감. 겉으로 표현되는 것이 적어서 그렇지 속으로 느끼고 있는 '감'으로 따지자면 내가 속해 있는 조직이나 공동체에 대한 유대감과 마음 씀이 노파심에 가까울 정도다. 그래서인지 한 회사를 관두고 나면 이전 회사에 대한 소속감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드물기는 했지만 바로 다른 회사로 이직하지 않았던 경우는 그 강도가 더 심했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라는 하림의 노래 가사처럼, 이런 소속감이나 끝난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말끔히 잊는 데는, 새로운 곳에 대한 소속감이 아마 가장 잘 듣는 약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을 경우. 그리고 그 시간이 예상보다 더 길어졌을 경우는 생각보다 여기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나는 회사를 오랜 시간 다녔음에도 내가 한 번도 전형적인 직장인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대부분의 직장이 전형적인 회사와는 조금 다른,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 모두 포함해) 개성 있는 회사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심적 선 긋기는 전형적이라 할 수 있는 회사 일을 맡게 되면서 더더욱 강해졌다. 그렇다 보니 그 현업의 전쟁터에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스스로 이 바닥 사람이라는 사실을 부정해 온 측면이 강했다. 이 바닥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회사를 오래 다녀본 경험으로는 어느 회사, 어느 업계나 일하는 곳은 조금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큰 차이는 없었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 생각했기에 내가 이 세계에 속한다고 100% 공감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존재하는 세계와 동경하는 세계가 다른 것은 회사를 한 참 다니던 시기에도 괴로움의 요소이기는 했지만, 회사를 관두고 나니 이것보다 더 큰 괴리와 상실, 중독은 없었다. 회사를 관두고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바로 하고자 했던 세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했고 그렇다 보니 여러 가지 심적 고민들이 뒤섞였는데, 따지고 보면 그 뿌리에는 내가 어느 세계에 속하고 있는지에 대한 혼란과 괴로움이 있었던 것이다.
이를 더 가중시키는 것에는 솔직히 쉽게 접근하고 들여다볼 수 있는 SNS라는 매체의 독이 컸다. 예전 같으면 내가 잊고자 하거나 새 출발하고자 할 때 관련한 사람이나 세계의 소식에 대해 알고자 해도 잘 알기 어렵고, 거리를 두고자 하면 쉽게 거리를 둘 수 있었으나, 요즘은 독한 맘을 먹지 않으면 아주 쉽게 접근하고 소식을 들을 수 있다 보니 이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내 빈자리가 존재하는지. 나와 함께 했던 이들은 다 잘 지내고 있는지. 내가 하던 업계의 일들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등 그리움이라는 감정보다는 궁금함, 아니 그보다는 굳은살처럼 몸에 익어버린 습관과 소속감으로 인한 체크 사항이랄까. 그렇게 쉽게 접근하고 들여다볼 수 있다 보니 내가 이 세계를 완전히 떠났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더 힘들어져만 갔다. 안 그래도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또 하나는 동경하는 세계에 대한 것이다. 동경하는 세계 그러니까 내가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세계 역시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 보니, 나는 아직 아무것도 변한 것 없이 홀로 있음에도 마치 내가 그 세계에 속한 것처럼 최면에 걸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는 그 세계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 세계를 자주 들여다보고 관심을 갖고 하다 보니 마치 나도 그 세계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이 절로 생겨버린 것이다. 이건 아주 위험한 소속감이다.
이런 가상의 소속감이 왜 위험하냐면, 단순한 동경일 때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발생되지만 실제 하지 않는 소속감이 들 때는 정신을 차리고 난 뒤 질투와 시기, 후회와 자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반복되는 과정 속에 얻게 되는 것은 점점 더 나약해지는 심신이었다.
완전한 탈출은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서두에 얘기했던 것처럼 새로운 세계와의 소속감, 진짜 소속감이 생기기 전까지는 아마 이 가상의 두 세계와의 밀당에서 적지 않은 괴로움과 후회를 느껴야만 할 것이다. 그래도 온전한 탈출과 생산적인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쓴다.
이렇게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