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권한과 책임

항상 함께여야 하는 것들이지만 결코 매번 그렇지 만은 않다

by 아쉬타카

혈기 넘치던 스물둘, 셋 시절. 아르바이트로 회사에 입사하였지만 어느 정도 업무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상급자가 퇴사하면서 더 많은 업무를 관리하게 된 나는 그야말로 '열정'에 넘치는 회사원이었다. 다시 말해 넘치는 의욕이 제법 먹혀 들어갈 여지가 있을 정도의 기회도 주어졌던 상황이라는 얘기다. 아예 씨도 안 먹힐 상황이었다면 그 열정은 자연스레 식어 들었겠으나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그 넘치는 열정과 의욕은 점점 더 커져갔다.


그렇다 보니 지금 와 생각해보면 의욕만 넘쳐서 주제넘게 행동하는 일들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즉, 권한은 없는데 책임만 지겠다고 나선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내가 업무를 어느 정도 장악하고 있다고 여기다 보니 무슨 문제가 발생하거나 업무적으로 중요한 선택이 필요한 시점에서 '내가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라고 나서게 되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이 당시 내게는 그런 책임을 질 권한이 없는 상태였다. 권한은 없는데 책임을 지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런 경우 몇 가지 문제가 있는데, 일단 회사 분위기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다를 수 있지만 스무 살 초반에 입사 한지는 제일 얼마 되지 않은 직원이 나이도 훨씬 많은 임원들과 과장, 팀장이 있는 앞에서 당돌하게도 '이건 제가 책임지고 진행하겠습니다'라고 말했을 땐 아무래도 곱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분위기였다. 아, 이건 말했다시피 회사의 분위기에 따라 다를 뿐이지 이런 행동이 반드시 잘못되었다 혹은 버릇없다는 것이 아니다. (나만해도 이후 다녔던 회사 가운데는 이런 상황이 전혀 이상하지 않고, 버릇없다고 아무도 느끼지 않았던 회사도 여럿 있었다).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아 저런 상황임에도 내가 권한도 없이 책임을 쟁취(?)했던 적이 있었는데, 결과는 그 일의 해결 유무와 상관없이 좋지 않았다. 해결 못했을 때도 해결을 했을 때도 내게는 결국 책임을 질 권한이 없었다는 것으로 모든 문제는 회귀했고, 결국 시스템이 존재하는 회사라는 곳에서는 정해진 룰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 여러모로 의미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느끼게 되는 경험들이었다.




하지만 오늘 하려는 얘기는 진짜 얘기는 이것이 아니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응당 권한이 주어진 상황임에도 제대로 된 권한을 부여하지 않거나, 그 책임에 대해서도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얘기다.


앞선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는 달리, 회사 경력이 오래되고 진정으로 권한과 책임을 갖게 된 팀장, 부장 등의 관리직으로 일할 때의 이야기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회사라는 조직에서 어떤 일을 진행할 때 최종 책임은 대표 혹은 경영진에게 지워지는 것이 맞고,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자면 해당 업무를 진행했던 팀/부서의 장이 맡는 것이 옳은 것이다. 즉, 팀원이 잘못했다고 그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 그 팀의 팀장이 기본적으로는 책임을 지는 것이며, 좀 더 큰 사안의 경우 해당 팀 혹은 팀장, 혹은 부서나 부서장의 책임하에 진행된 일에 대한 최종 책임은 경영진이 맡는 것이 옳다는 얘기다.


하지만 내가 불만을 가졌던 상황은 권한은 있는데 경영진에서 너무 세세한 것까지 간섭해서 결국 내가 책임지지 못할 정도까지 방향성이 틀어져 버렸지만, 결국 그 일의 최종 책임에 대한 것은 내 것으로 돌아오거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내 책임처럼 남게 된 경우였다.


이른바 실무자라고 불리는 실제 구체적인 일을 가장 많이 하고 알고 있는 담당자 입장에서 가장 스트레스인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일을 진행하는 가운데 경영진이나 회사의 간섭이 도가 지나칠 때 일 것이다. 나만 해도 그런 일이 참 많았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계획이라는 것이 없을 수가 없는데, 그 계획은 말 그대로 최종적으로 성공이나 그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되는 것에 목적이 있을 것이다. 즉, 그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는 프로젝트의 여정 중에는 일보 후퇴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양보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며, 다른 것을 얻기 위해 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내주어야 하는 결정도 포함되어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중간에 갑자기 경영진이 프로젝트의 전체 상황은 보지 못하고 지금 벌어진 일만 보고는 '왜 이런 점이 마이너스인 거죠?'라고 물으며 다시 되돌리기를 강요한다면, 프로젝트의 담당자로서 참 난감할 수 밖에는 없다. 그래서 꺼내는 카드 아닌 카드가 바로 '책임'인데, 차라리 책임이라도 지게 했으면 마음이라도 편하겠는데 그렇지 못하고 결국 실무자의 결정을 넘어서는 경영자의 결정을 해버릴 땐 실무자는 아무런 권한도 의욕도 갖기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이런 월권 혹은 간섭이 정당화될 유일한 경우는 그런 간섭으로 인한 결정이 결국 옳았고, 또 그런 횟수가 여러 차례 반복돼 실무자의 판단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확인되었을 때뿐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반대로, 역시나 실무를 다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경영진의 판단은 틀릴 수 밖에는 없었지만 그 책임은 담당자가 질 수 밖에는 없었고, 더 답답했던 건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개입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작은 회사, 혹은 작은 규모에서 큰 규모로 성장한 회사일 수록 버리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업무에 대한 장악력, 아니 장악 및 관리에 대한 욕심 같다. 솔직히 나만 해도 그런 면이 없지 않았다. 팀을 운영하게 되면서 아직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팀원들에게 100%를 맡길 수 없다 보니 내가 다 해야 된다는 생각이 강했고, 그렇다 보니 좀 더 효율적인 업무나 관리 업무를 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쉽게 말해 믿고 맡기는 것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일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이 균형을 맞추는 일이었던 것 같다. 너무 관리하게 되면 효율도 떨어지고 팀원들의 발전도 더디게 되는 반면, 반대로 너무 방종하게 되면 처음에는 다 즐거워만 보이지만 결국엔 일을 그르치거나 팀워크에도 손상을 입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팀장 정도의 역할도 그러한데 (역지사지로 이해해보자면) 경영진의 입장은 오죽했을까. 모든 결정을 하려 하고 여러 명의 팀장이나 부서장을 두었음에도 결국 그들 스스로가 적정의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다는 의식은 갖지 못하도록,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 처사는 결국 어떤 업무의 스트레스 보다도 큰 불만을 갖게 하는 요소였다. 가끔 회사는 이럴 때 '책임지라고는 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라는 식으로 말할 때가 있는데, 이건 절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권한도 주지 않을 거고 책임도 지지 않게 할 거라면 무엇하러 중간 관리자 혹은 부서의 장들을 두나. 그냥 경영진과 직원으로 이원 시키면 될 일이지. 책임을 지게 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적정한 권한을 주고 그 권한에 따른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너무나 명백히 옳은 일일 것이다. 더 나아가 책임은 경영진이 진다고 해도 심리적인 책임은 결국 담당자가 질 수 밖에는 없기에 그 실패에 대한 부담과 타격은 고스란히 경영진이 아닌 실무자가 떠안게 마련이다. 결국 어느 것도 잘 된 일이 없는 결정일뿐이다.




지금도 그렇고 아직도 많은 회사의 경영자들이 이 부분을 놓치고 있다. 특히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작은 규모의 회사나, 작은 규모에서 큰 규모로 성장해 가는 회사인 경우가 그렇다. 조금은 과감하다 싶을 정도로 권한을 나누고 책임을 부여해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큰 회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없다 보니 권한은 제대로 부여하지 않고 결국 책임도 담당자가 느껴야 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권한과 책임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제대로 된 권한과 그에 따른 책임을 부여할 때 좀 더 효율적이고 제대로 작동하는 회사가 될 것이다. 나는 그 점이 너무 아쉬워 결국 회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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