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들이 달라진 퇴사 이후의 날들
퇴사를 하던 시점의 나는 완전히 방전된 것을 넘어서서 초연해져 버린 상태였다. 퇴사 이후 얼마 되지 않아 가까운 이전 동료들을 만난 자리에서 '아쉬타카님은 번아웃은 아닌 거죠?'라고 물어서 '네, 전 번아웃이랑은 좀 다른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었는데, 번아웃 때문에 관둔 것은 아니었으나 우습게도 번아웃을 어찌어찌 넘겨 버렸을 정도로 정상인 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뭐 이 글들을 통해 계속 늘어놓고 있는 것처럼 내가 회사를 관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한, 두 가지 이유 만으로 회사를 박차고 나오기엔 제법 나이를 먹었던 터라, 여러 이유가 쌓이고 또 쌓이기를 반복하고 또 그 요인들이 정말 해결 불가능한 것들인지를 몇 번이나 확인 또 확인 한 뒤에야 사직서를 낼 수 있었다. 그래서 더 깔끔하고 단호하게 관둘 수 있었던 것 같고.
회사를 관두고 나서 나에게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는 예상을 하고 준비를 하던 것들도 있었고,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던 일들도 있었다. 예상을 했던 일들은 지난번에도 살짝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이번 퇴사는 단순히 이 회사를 관두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최대한 회사라는 곳을 앞으로 다녀지 않으리라 라는 심정으로 관둔 터라, 구직활동이라고 할 만한 일들은 거의 하지 않았다. 회사를 관두면서 퇴직금 및 준비해 놓은 돈으로 최대한 버티면서 창업을 비롯한 새로운 일들에 대해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보자는 생각이었고, 설령 회사라는 조직에 다시 몸을 담게 되더라도 최근 수년간 다녔던 업계가 아닌 내가 계속해보고 싶었던 영화나 음악, 콘텐츠와 관련된 일들에 더 구체적으로 달려들어 보자라는 마음이었다.
이런 일종의 시도의 기간을 무제한으로 가져갈 수 없는 이유는 역시 경제적인 이유인데, 하물며 더 어린 20대 시절에도 같은 이유로 쉬지 않고 직장 생활을 해왔던 나인데, 결혼까지 한 입장에서 이런 상황을 결코 무시할 리는 없었다.
그런데 회사를 관두고 몇 달 지나지 않아 나에게, 우리 인생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바로 아이가 생긴 것이다. 아주 계획에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디 아이가 생기는 일이 계획대로 되는 일인가. 그래도 아이를 갖게 된다면 최대한 빨리 가져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 막연한 계획이었는데, 마치 계획처럼 퇴사하고 마음의 여유를 드디어 갖게 된 내게 첫 아이의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그 아이가 태어난 지 벌써 4개월이나 흘렀다.
퇴사하면서 막연하게 세웠던 계획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텐데, 첫 째는 회사라는 곳이 아닌 내가 중심이 된 곳에서 해보고 싶은 일(하지만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일)을 해본다 였고 (이를 테면 소규모 공간을 기반으로 한 창업), 둘 째는 그 해보고 싶은 일을 해볼 만한 회사가 있다면 도전해 보는 것이었고, 마지막 셋 째는 거의 10년 전부터 꿈꿔왔던 귀농의 삶에 도전해보자 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이 계획을 부득이하게 수정 아니 더 빠른 결정을 해야만 했다. 그러니까 최대한 버틸 때까지 버티며 고민하고 시도해 보자는 그 기간이 훨씬 단축되게 된 것이다. 역시 조여 오는 통장 잔고는 그 무엇보다 무섭고, 피부에 와 닿는 현실이다 ㅎ
이러한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시점에 놓이게 되면서 더 자주 하게 된 생각은, 내가 결코 순탄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더 큰 모험이나 도전을 하는 것에 언제부턴가 아주 소극적이고, 겁을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만은, 이런저런 사회적, 현실적 경험들을 하면서 때로는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까지 알게 되어 어떤 도전의 시점에 놓이게 되었을 때 더 계산적이 되어서 뒤로 물러서는 경향이 커져버렸다. 그러니까, 이건 이래서 아마 안될 확률이 높고, 이건 이런저런 조건들을 감안해보자면 너무 무모한 도전이고, 이건 이래서 또 저건 저래서....
인생은 참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그래서 다음 주부터 아마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계획되지 않았을 독박 육아에 투입된다 ㅎ 결말이 갑자기 육아일기로 빠져도 어쩔 수 없다. 하루 종일 아이를 보고 저녁 늦은 시간과 오전 일찍 시간에 잠깐 내 시간을 갖게 될 텐데, 그래도 나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정말 회사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때에 더 활발하고 왕성하게 개인 활동을 해 왔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아쉬타카 님은 잠은 언제 자요?'라는 말을 자주 들었을 정도로 (그래서 '퀭'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주어진 동일한 시간을 깨알 같이 덜 자고 야무지게 사용해서, 일은 일대로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싶은 일대로 최대한 많이, 제법 만족할 정도로 했었던 것 같다.
다시 한번 그런 타이트한 시기가 왔다. 정말 내 시간이 타이트해지고 간절해지게 되면 예전에 가졌던 그 잠재력이 또 한 번 발휘되지 않을까?
내가 나를 믿어야지. 암, 그렇고 말고.
* 아, 그리고 이 매거진에는 회사를 관두게 된 사연에 대해서만 가급적 쓰려고 했는데, 그 이후의 시간들이 길어지다보니 여러모로 잘 안써지는 경향이 있어서. 퇴사 이후의 일들과 계속되는 또 다른 삶에 대해 이어가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