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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딩 박사 Dec 26. 2021

승인해주세요 대표님

박사 과정 최종 합격의 마지막 관문

당시 대표 직속으로 프로젝트를 맡고 있을 때라 대표 보고를 하러 가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매주 목요일 오전에 단독으로 보고하는 미팅이 있었고, 그 외에도 보고나 결재를 받아야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공부하는 것이 회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어느 고용주가 직원이 휴가를 내고 (개인 휴가긴 하지만...)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개인적인 공부를 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것을 좋아할까. 회사에서 키우려고 하는 과장급 이상의 경우는 회사에서 국내 MBA 과정에 보내는 케이스도 아주 드물게 있었지만, 나는 당시 주임급이었고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것이었기에 잘못하회사 일에 집중은  하고 딴생각한다는 인식을  가능성도 배제할  없었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대표이사 비서에게 보고 가능한 시간을 확인했다. 지도교수 면접 때보다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에서 받은 오퍼 레터와 업무와 학업 병행에 대한 동의서를 결재판에 끼워 대표실로 향했다. 오늘 대표님의 기분이 좋길 바라면서...


오퍼 레터 일부(좌)와 대표이사 승인을 받아 제출해야 하는 동의서(우)


동의서는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니 문구가 굉장히 강하다.

본인은 이 학생이 학업을 만족스럽게 수행할 수 있도록 충분한 휴가를 제공하는데 동의합니다. 여기에는 일 년에 최소 3주가 소요됩니다. 나는 그 과정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단순히 학생의 업무 시간을 재배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그녀는 풀타임 업무로 일하는 동시에 코스를 성공적으로 따를 수 없을 가능성도 있습니다(업무에 어느 정도 소홀할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하는 문구....).


와.. 대놓고 회사 업무에 어느 정도 소홀할 수 있으니 이에 대해 배려하라는 뉘앙스의 이야기가 말미에 딱!


다행히 내가 작성한 리서치 프로포절이 당시 내가 맡았던 프로젝트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이라 공부를 하는 것이 회사 업무 차원에서도 도움이   있으리라 이야기를   있었다. 또한 브랜딩과 관련된 사항은 대표이사도 평소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던 사항인지라 공감을 불러일으킬  있었다. 거기에 공부하면서 회사 업무에는 차질 없도록 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퍼 레터를 꼼꼼히 읽어보고 프로그램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본 대표는 "공부하겠다는데 승인해줘야지"했다.  내용에 별말 없이 승인한 대표이사의 결단과 배려에  감사하다. 물론 별말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태클은 없었지만, 대표는 "학비는 절대 지원해주지 않을 거다"라고 3번이나 이야기했다.  당시는 '학비 지원해달라고  생각도 없었는데,   이야기를 강조하는 걸까?' 의아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당신의 불편한 심기를 저렇게 표현하신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혹시라도 승인을 못 받고 미운털만 박히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던 나는 거듭 감사함을 표현했다. 그리고 업무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이 회사에서 5년간의 커리어 생활도 참 버라어티 했지만, 이 두 달 사이에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내 인생, 내 커리어에 새로운 점이 추가되는 시점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일이 내가 계획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사 과정에 지원하고 준비한 것은 내 의지가 반영된 것이지만... 내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생기기까지의 모든 일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연결되어 온 일들의 결과다. 거듭되는 부서이동의 상황에서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 사람이 아무리 꼼꼼하고 치밀하게 계획한다고 해도 이렇게 점들이 이어지는 커리어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스티브 잡스의 Connecting the Dots의 메시지가 강력한 공감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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