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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딩 박사 Dec 27. 2021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등교시간 편도 17시간 -_- 영국 경영학 박사 과정 엿보기

학교 가기 위한 준비

대표이사의 승인까지 일사천리로 받고 본격적으로 학교 갈 준비를 시작했다. 10월 1일까지 남은 시간은 5일. 이 짧은 기간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았다.

01 입학서류 처리 및 등록금 송금
02 프로그램 멤버 북에 들어갈 내 소개서 작성
03 비행기표 및 호텔 예약
04 자리 비운 동안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스케줄 정리

이중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아무래도 4번 항목. 인터넷, 스마트폰, 노트북이 있으니 웬만한 것은 영국에서 처리할 수 있지만, 하루에도 몇 개씩 있는 미팅은 어떻게 해야 하나...? 예정된 미팅 중 급한 건은 영국 출발 전 모두 처리하고, 급하지 않은 것은 1주일씩 미루는 방식으로 조정했다. 다행스럽게도 추석 연휴와 징검다리 휴일로 10/3까지 휴일이라 정식으로 자리 비우는 것인 2일 정도.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데, 함께 일하는 멤버들의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에 조금은 안심이 됐다. 감사의 마음과 급한 일 생기면 망설이지 말고 꼭 연락 달라는 당부를 남기고 첫 등굣길에 올랐다.



2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맨체스터

영국 맨체스터는 한국에서 가는 직항이 없다. 꼭 1번은 경유를 해야 해서 15-17시간 정도 소요된다. 보통은 런던을 경유하는 일정으로 갔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파리, 도하 등을 경유하기도 했다. 나의 첫 등교는 2012년 9월 30일 인천공항 출발 - 헬싱키 경유 - 맨체스터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8월 유럽여행을 앞두고 신청했던 Priority pass 카드를 이번에도 매우 유용하게 사용했다. 경유를 하기 위해 헬싱키 공항 라운지에서 간단한 식사도 하고 리프레시도 했다. 3시간 만에 도착한 맨체스터에는 역시 비가 오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해가 났다 비가 왔다 하는 맨체스터의 전형적인 날씨답게 잿빛 하늘에 무지개가 떠 있었다. 초등학교생 때 이후 20여 년 만에 다시 온 맨체스터, 반가워!

맨체스터 공항에 착륙해서 한 컷


맨체스터 공항에서부터 시내까지는 택시로 20-30분이면 도착한다. 호텔에 짐을 풀고 맨체스터 시내 구경을 했다. 한쪽은 세상 맑은 파란 하늘이 나머지 한쪽은 잿빛 구름으로 뒤덮인 흔하디 흔한 맨체스터의 하늘과 함께 맨체스터의 전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맑음과 흐림이 뒤섞인 흔한 멘체스터의 하늘

시차 때문에 새벽까지 잠 못 들고 이번 주 스케줄을 살펴보며 어떤 시간들일까를 상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10월 1일은 프로그램 및 학교 다양한 서비스 관련 개괄적인 소개를 하고 오후부터 통계 수업이 있다. 10월 2-3일은 하루 종일 사회조사방법론 수업, 10월 4-5일은 통계 수업, 10월 5-6일은 통계 및 인식론 수업. 수업 후에는 프로그램 디렉터와 1:1로 면담을 하는 시간과 동기들과 함께 식사 및 교류를 하는 소셜 디너가 있다.


등교 첫 1주일의 스케줄



등교 첫날

8시 30분에 시작하는 스케줄에 맞춰 8시 15분경에 학교에 도착했다. 등록과 웰컴 인사 및 교류를 하는 교실 앞에 행정원들과 프로그램 디렉터가 과정생들에게 나눠 줄 명찰과 각종 안내물이 든 패킷이 놓인 테이블 앞에 있었다. 프로그램 디렉터는 나를 보고는 "Oh! You made it!" 하면서 반갑게 허그를 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반가운 마음을 전할 수 있던 팬데믹 이전의 시절.


이곳에 도착해서 합격기들을 들어보니 나처럼 막바지에 지원한 케이스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1년 전부터 준비했고, 막판에 연구 분야와 맞는 지도교수를 찾지 못해 오지 못한 케이스도 있단다. 뒤늦게 준비해서 한 번의 막힘도 없이 이곳에 와 있는 것이 운명처럼 느껴진 순간이다.


다양한 국적, 배경, 연령대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생각보다 많은 수의 동기들이 있었다. 40명 정도. 그중 35%는 중국인이었고, 나머지는 유럽, 미국, 캐나다, 중동 등 다양한 곳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한국인은 나 혼자고,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이 이 프로그램에 입학한 것도 최초란다. 우리 과정에는 일본인도 한 명 있었다. 중국인이 많은 이유는 맨체스터 경영대학원(MBS)이 2012년부터 상하이 교통대와 자매결연을 맺었기 때문이라고. 모든 DBA 과정생은 2명의 지도 교수로부터 공동 지도를 받는 방식이었는데, 중국인들은 MBS의 교수 1명과 교통대 교수 1명이 공동 지도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단다.


어색함과 설렘이 가득한 분위기의 공간에 모여 돌아가며 본인 소개, 지도교수, 연구 분야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했다. 유명 외국계 회사의 임원 및 매니저, 사업가, 정신과 의사, 컨설턴트 등 다양한 배경과 20-60대의 연령대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그룹이었다. 각자가 속한 산업 역시 다양했다. 금융, 정유, 소비재, 컨설팅, 인사 등등. 호텔업계 종사자는 나밖에 없는 데다가 당시 PSY가 '오빤 강남스타일'로 세계의 주목을 받던 때라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늘 지겹도록 "북한? 남한?"의 질문만 받았는데, 처음으로 "오빤 강남스타일?", "PSY의 뮤비 봤다", "말춤 출 수 있냐?"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이때도 국뽕을 느꼈는데,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은 BTS,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 게임 등으로 우리나라가 엄청나게 조명받고 있으니 새삼 격세지감을 느낀다.


첫날 등굣길에 찍은 사진들


수업 및 평가 방식

1학기는 10월-1월, 2학기는 2월-6월까지로 일반적인 학기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학교를 가기 위해 회사에 휴가 신청을 하는 것이 눈치 보였는데, 다행히도 추석과 구정 연휴와 겹치는 날이 많았다. 2학기가 끝나는 6월 혹은 7월에는 DBA 리서치 학회가 2일간 개최되고 이때는 1학년부터 5년 차 이상까지 모두 모여 각자의 연구에 대해 발표하고 의견 교류를 하는 시간을 갖는다. 학회 기간은 2일이지만, 학회 전 후로 연구 방법론과 관련된 추가 수업이 진행되기도 해서 실제 방문 기간은 3-4일 정도 된다.


박사 과정 수업은 방법론과 연구

박사 과정 수업은 해당 전공에 대한 전문 지식을 전하는 수업이 아니다. 각자에게 맞는 전공 지식은 각자가 논문이나 책을 통해 습득하는 방식이고 수강하는 수업은 방법론이다. 1학년 때 듣는 필수 과목들은 박사 과정을 한 사람이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알아야 하는 기본적인 내용들이다. 2학년 때 수강하는 선택 과목들은 조금 더 상세 내용으로 내 연구와 관련된 4개의 과목을 선택한다.


1학년의 필수 과목은 통계, 사회조사방법론, 그리고 인식론이다. 1학년 2학기에는 필수 과목과 함께 Mixed methods, Survey Design을 수강한다. 2학년에는 선택 과목 수업을 수강한다. 질적 연구방법론, 케이스 스터디 방법론, 액션 리서치 방법론, 다변량 통계 분석, 엘리트 인터뷰 방법론 등. 그리고 이 기간에는 수업 외에도 각자의 연구 관련하여 문헌 연구한 내용을 발표하고 평가받는다. 2학년 2학기에는 본인 연구 분야 관련 파일럿 프로젝트를 한 리포트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해당 내용을 발표하고 평가받는다. 3학년 때부터는 1년에 한 번 DBA 학회에 제출할 페이퍼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학교에 방문해서 발표 및 교류한다. 또한 지도교수 및 평가 위원회에게 매년 진행사항을 평가받는다. 정식 박사 학위 논문을 위한 리서치 프로포절은 3학년 때 결정하고, 통과하면 2-3년에 걸쳐 연구를 발전시킨다.


기억에 남는 인식론 수업

미국의 연구의 90% 이상이 통계를 활용한 양적 연구이지만, 영국은 질적 연구가 많이 발달한 편이라 질적 연구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은 새롭고 좋았다. 연구 방법론 수업은 최근의 방법론 동향, 연구 주제에 따른 방법론 선택 및 활용 방법 등에 대한 내용이었다.


수업 중 가장 충격적이고 새로웠던 것은 인식론 수업이었다. 작은 키와 이국적인 발음을 가진 몽환적인 외모의 교수님은 이 수업을 위해 그리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셨단다. 그는 발표 자료 하나 없이 말로만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리스부터 시작한 철학의 역사와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그로 인한 의사결정과 판단의 차이 등을 줄줄줄 이어나갔다. 마치 머릿속에 키우는 지식의 나무에서 열매를 하나씩 떼어 우리에게 주는 것 같았다. 중학생 때 독서 모임을 하며 철학책을 몇 권 읽었지만, 그 이후로 철학을 가까이할 일이 없었기에 더 신선했다. 5-60대의 학우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많이 하는 눈치였고, 85년생의 우리 클래스의 최연소인 친구는 울상이 되어 "무슨 소리인지 나는 하나도 모르겠다. 얼마나 많은 연륜과 경륜이 쌓여야 이해할 수 있을까?"라고 해 순식간에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인식론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달라지고, 도출하는 연구 문제가 달라지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론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사 논문의 서두에 인식론을 기본으로 하여 내가 설정한 연구 문제와 선택한 방법론을 논해야 하기 때문에 필수 중에 필수인 과목이었다.


평가 방식

10월에 영국에 방문해서 해당 과목 수업을 인텐시브 하게 듣고, 1월 중순까지 1차 과제를, 4월까지 2차 과제를 작성해서 제출한다. 과제는 60점 이상을 받아야 하고, 60점 미만의 경우 재시험/제출의 기회가 주어진다. 두 번째에도 통과하지 못하면 이 프로그램과는 바이 바이다. 매년 학교에 방문해야 할 시기에 회사일로 못 올 경우도 그대로 아웃이다. 이 룰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엄청 악명이 높았는데, 강력하게 규제하지 않으면 프로그램 퀄리티에 지장을 줄 수 있기에 학교 측에서 강하게 고수하는 사항이다. 예외를 두는 경우는 따로 교칙에 명시가 되어있고 (건강상의 이유 등) 이런 경우, 결석이 아니라 휴학계를 제출하고 한 학기 혹은 1년을 미루는 방식이다.



전 세계에서 모인 동기들과의 소셜 디너

연이은 인텐시브 한 수업이 끝나면, 저녁마다 동기들과 교류하는 소셜 디너 타임이 시작된다. 장시간 비행에 시차에, 수업들은 내용을 머릿속에 넣느라 피곤하고 머리가 터질 것 같지만, 소셜 디너 타임은 꿀 같은 유용한 시간이다. 물론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긴 하지만... 머리를 식힐 겸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평소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연구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히는 시간이다.


한 배를 탄 동기들은 박사 과정을 무사히 완주할 수 있게 도와주는 촉진제다. 5년 이상이 긴 레이스를 지도 교수와 둘만 이어간다면 재미도 없고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고민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동료가 있으면 지루하고 긴 레이스가 즐거워진다. 특히 코스웍 기간에는 과제 제출을 위한 나 혼자만의 싸움이고, 연구 기간에는 논문 작성을 위한 나와의 지독한 싸움이므로 함께 독려할 수 있는 스터디 버디는 필수다. 또 과정이 과정이니만큼 비즈니스 측면으로도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과정이 아니면 전 세계의 다양한 분야의 비즈니스 맨들과 네트워킹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중국인 친구들 그룹과 유럽 및 중동 친구 그룹의 2그룹의 스터디 버디를 만들었다. 이 그룹의 친구들 모두 약간의 시차는 있었지만 모두 무사히 박사 졸업을 했고, 현재까지도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소셜 디너 테이블에 놓여 있던 울림이 있는 메시지 "Great minds think al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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