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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딩 박사 Jul 27. 2020

보스턴 생활기 | 하버드의 의료 서비스

처음 이용한 원격진료 시스템

아프면 언제든지 병원에 갈 수 있는 한국과는 달리 의료비가 비싼 미국에서 병원을 가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건의 시작은 지지난주 금요일, 먹을 것을 채워놓기 위해 한인 마트랑 코스트코를 갔던 날이다. 이 날은 아침에 화상 미팅이 있어 일찍 일어나 미팅 준비를 하고 미팅을 마친 후 점심을 먹고 오후 3시쯤 짚카(ZIP CAR, 차량 공유 서비스)를 예약하고 장을 보고 오는 간만에 아주 정신없는 스케줄을 소화한 날이었다.


원래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진 짚카를 예약하거나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차량을 이용하는데, 이 날은 즉흥적으로 장을 보러 가게 된 이유로 도보 15분 거리에 있는 차량을 예약했다. 그런데 막상 걸어가 보니 도보 30분 거리... 장을 다 보고 집에 오니 저녁 7시 반, 차량 반납하고 집에 걸어오니 저녁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장 봐온 것을 다 소분하고 정리하니 밤 9시 반.. 금요일 밤에는 늘 양가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는 날이라 전화통화를 하고 나니 밤 10시 반이 훌쩍 넘었고, 그때 뒤늦게 갈빗살에 와인 한잔을 먹고 늦게 잠들었다. 오래간만에 몸을 움직여서인지 몸이 천근만근..


그 다음날 오전 11시 반까지 일어나질 못했다. 그리고 올라온 빨간 두드러기... 어젯밤에 먹은 와인이 문제인가? 아니면 너무 피곤해서? 혹시 마스크 때문에? 별별 생각을 다했다. 하루 이틀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3-4일이 지나도 낫질 않고 아래쪽 볼까지 번지고 귀가 붓고 가려운 증상까지 더해서 대상포진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이번 기회에 의료 서비스를 이용해 보자는 짝꿍의 얘기에 처음으로 하버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해봤다.



하버드의 의료 서비스

지난 1월 미국에 오자마자 한 달 안에 하버드에서 제공하는 각종 혜택에 대한 동영상을 보고 책자 및 서류를 읽고 가입하느라 참 바빴다. 그중 하나가 메디컬 플랜. 하버드에서는 교직원이 학교를 통해 의료보험을 가입하면 의료 보험비의 75%를 부담해준다. 가입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도 세분화되어 있는데 기본적인 건강과 관련된 항목, 치과 항목, 그리고 안과 항목으로 크게 3가지로 나뉘고, 그 안에서 보장 범위에 따라 세부 플랜을 선택할 수 있다. 안과 항목에서 특이점은 안경이나 렌즈를 맞추는 금액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


우리는 미국에 오기 전에 치과 진료도 모두 받았고 여분의 안경과 렌즈까지 싹 다 맞춰와서 기본적인 건강 관련 항목만 신청을 했다. 의료 플랜 중 매월 일정 부분 보험비를 지불하는 HMO(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 아플 때마다 비용 지불하고 치료받는 POS(Point Of Service), 그리고 매월 높은 금액의 보험비를 지불하고 저축도 병행하는 HDHP(High Dedutible Health Plan) with HSA(Health Savings Account)의 3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안전하게 HMO를 선택했고, 그다음에는 의료 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의사 그룹을 선택해야 한다. 의사 그룹 풀은 2가지가 있는데, 하버드 대학 그룹 의료 플랜 (HUGHP, Harvard University Group Medical Plan)에 가입된 의사 풀과 뉴잉글랜드 지역에 있는 의사 그룹 풀(BSBC, Blue Shield Blue Cross)가 있다. HUGHP는 하버드 의대 근처에 있는 의사 풀 위주로 선택이 가능하고 BSBC의 경우는 뉴잉글랜드 지방 전역의 의사 풀이라 더 선택의 폭이 다양하다. 우리는 하버드 의대가 코앞에 있기에, HUGHP를 선택했다.


다음은 주치의를 선정하는 것인데, HUGHP에 등록된 의사들 중 우리의 거주지와 가까운 의사 목록에서 경력과 전공, 사진 등을 보고 선택할 수 있고 1년마다 한 번씩 변경이 가능하다. 우리가 거주하는 동네에서 도보 30분 거리에 한국인 의사 선생님도 계셔서 반가웠다. 아플 때는 한국어로 설명하는 것이 큰 장점이니.. 그러나 차가 없는 우리는 집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의사 선생님으로 최종 결정했다.


그렇게 주치의를 선정하고 6개월이 훌쩍 지났고, 매월 $200가 넘는 돈을 지불하고 있었지만 병원을 이용할 기회가 없었다.


막상 이용을 하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막상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하니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 짝꿍의 이메일을 뒤져서 우리 주치의 선생님 이름 확인하고 HUGHP웹사이트에 접속해서 온라인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인지 온라인 신청은 막혀 있었다..


이런;;


혹시 코로나 사태 때문에 주치의 선생님 진료를 받지 못하고 다른 적합한 선생님을 연결해주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HUGHP대표 번호로 전화를 했다.


어떤 증상이 있어서 전화를 했는지 상담원이 물었고, 내 상태를 이야기했다.

온라인 신청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물어보길래 신청서를 작성했으나 접수 불가하다는 메시지가 떴다 했더니 우리 주치의 선생님 스케줄을 확인하고 알려주겠다고 한다. 다행히도 그 날 오후 2시 30분에 주치의 선생님과 예약이 됐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진료는 하고 있지 않고 ZOOM을 통한 원격 진료를 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메일로 회의방 주소를 발송하니 진료시간에 맞춰서 클릭을 하면 된다고 한다.


되게 간단하네? 만약 응급 상황에서 처음 이 서비스를 이용해야 했다면 엄청 당황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응급상황이 아닐 때 미리 예약을 해볼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피부와 관련된 진료이다 보니 화면으로는 심각성이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 최대한 피부 트러블이 잘 잡힐 수 있도록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울긋불긋한 얼굴에 트러블이 부각되게 찍고 나니 너무나 못난이 사진.. 남에게 보여주기 참 부끄러운 사진이 여러 장 탄생했다 ㅜㅜ


사진들을 PPT 파일에 붙이고 간단한 설명을 작성한 후, 금요일부터 화요일까지의 스케줄과 먹은 것을 모두 기록했다. ZOOM의 화면 공유 기능이 있으니 상담 시 화면 공유를 하며 설명할 요량이었다.


주치의 선생님과의 첫 만남

처음이니만큼 짝꿍과 나란히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예약된 시간보다 5분 전에 접속해서 기다렸고, 잠시 후 선생님의 등장! 따뜻해 보이는 선생님의 인상에 살짝 긴장했던 마음이 풀렸다.


선생님은 자기소개를 하시며, 우리에게 어디에 살고 있는지 등에 대해 질문하셨다. 뭔가 진료에 앞서서 환자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어디가 불편해서 진료 신청을 했는지에 대해 물어보셔서 증상을 이야기하고 ZOOM의 화면상으로는 보이지 않을 듯하여 별도의 장표를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화면 공유 기능은 제한이 걸려 있어서 구글 드라이브를 통해 파일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사진을 너무 적나라하게 잘 찍어서인지 처음에 "사진 화질이 좋아야 할 텐데.." 걱정하시던 의사 선생님도 "사진 화질이 아주 좋아서 잘 보인다"라고 좋아하셨다. 피부 상태를 보시더니 혹시 얼굴에 새로운 크림을 발랐거나 마스크를 착용했는지 여부를 질문하셨고, 금요일에 마스크를 쓰고 장을 보러 간 이야기를 했다. 원인은 마스크라고 하시면서 1. 습도&열로 인한 것, 2. 알레르기로 인한 것의 두 가지 케이스가 있는데, 1번의 경우는 하루 이틀이면 가라앉고 2번의 경우는 2주까지도 간단다.. 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 때문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고 한다. 그리고 화면 공유를 통해 근처 WALGREENS나 CVS에서 구입 가능한 피부염증제를 추천받았다.


선생님은 자신의 병원 위치와 함께 앞으로는 문제가 있을 때 병원으로 바로 연락하면 된다고 설명하셨고, 그렇게 우리의 첫 하버드 원격 의료 체험기는 끝났다. 생각보다 편리하고 손쉽게 이용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지난번 하버드 경영대학교 교수들이 그동안 각종 규제로 인해 발전하지 못했던 원격진료의 시대가 다가온다고 했던 말이 실제로 우리 삶에 다가왔음을 실감했다.


https://brunch.co.kr/@ashlistar/39


상담을 끝내고 바로 약을 사 와서 바른 지 며칠이 됐지만, 아직도 완치되지는 않았다. 선생님 말씀대로 2주일 가려나보다.. 고작 마스크 몇 시간 끼고도 얼굴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 이렇게 불편한데, 몇 달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진들은 얼마나 힘들까? 그들의 고통을 이번 기회에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여름철에는 습도와 더위로 몇 배나 힘들 텐데 하는 생각에 의료진들의 헌신에 감사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무겁다.


보스턴 거리 산책 중 눈에 밟혀서 찍어 두었던 버스정거장 광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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