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출생지는 제주도다. 아버지가 (주)롯데 기공에 재직하실 당시에 제주 대학교 아라 캠퍼스의 신축 공사에 출장 발령이 났고, 약 3년간의 출장 기간 사이에 내가 태어난 것이다. 내가 태어난 직후, 넓은 들판을 걷는 어떤 가족의 모습을 보고, 제주도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신 아버지는 은퇴 후 가족과의 삶을 제주도로 결정하셨다고 한다. 그 계획의 초석으로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기 위한 땅을 보기로 하셨다. 햇살이 따사로운 3월 어느 날 아버지는 부동산 아저씨와 제주도 일대를 돌아다니셨다.
부동산 아저씨는 첫 번째로 대로변의 아주 목 좋은 땅을 먼저 보여주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족이 살기에 시끄럽다고 좀 조용한 데로 보여달라고 하셨다. 다음으로는 관광 개발이 될 지역을 보여주시며, 앞으로 땅값이 많이 오를 것이라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관광객들 많이 몰리는 곳은 복잡해서 싫다고 다른 곳을 보자고 하셨다. 다음으로 부동산 아저씨는 신도시가 들어 올 허허벌판으로 데려가셨다. 여기는 외지인들이 보기에는 허허벌판 이어서 안 보여 주셨었는데, 신도시라 살기도 좋고, 지금 사면 5년 후면 20배는 족히 오른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그 좋은 땅을 굳이 또 마다하셨다. 투자나 투기 목적이 아니라 노후에 유유자적하며 살 고즈넉한 곳을 찾고 계시다는 이유에서 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허탕으로 하루를 소비하고, 한주 후 다시 땅 쇼핑을 나섰다. 부동산 아저씨는 우리 아버지의 테이스트를 알았다는 듯 당당하고 유쾌한 표정으로 차를 몰고 가셨다. 차를 세우고 아버지와 부동산 아저씨는 좁은 숲길을 걸어갔다. 10여분을 걸어가자 노오란 유채꽃 밭이 멋들어지게 펼쳐져 있었다. 아버지는 그 그림 같은 광경에 반하셨고, ‘재훈이 엄마한테 유채꽃 밭을 선물해야겠다.’라고 로맨틱하지만 비경제적인 생각을 하셨다. 그리고는 바로 계약을 하셨다.
그 땅은 맹지(도로와 연결되지 않은 땅)였고, 임야로 되어 있는 땅이어서 건축물을 지을 수 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그 멋들어진 유채꽃 밭에 집을 짓고 노후를 즐기시지 도 못하셨고, 연이은 사업 실패로 경제적으로 힘드실 때도 땅은 팔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 결국 그 땅은 내 소유가 됐고, 팔리지도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꽃밭을 가졌다는 이유로 나라에서는 내게 매년 7만 원씩의 세금을 받아간다.
때론 좋은 기회에 잘못된 선택으로 좋지 않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하지만 어떠랴. 그 마음을 알아주는 이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을. 인생을 너무 경제관념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서글픈 인간관계 만 즐비할 것이다. 때론 서정적인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아버지는 내게 땅을 물려주었다 기 보다는 우리 가족사의 낭만적인 한 편의 드라마를 남겨 주셨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이렇듯 경제에 둔감한 로맨티시스트 아버지에게 낭만적인 묘비를 만들어 드렸다. 아버지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친구를 좋아하고 술을 좋아한 최주영 여기 잠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