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징계 Nov 22. 2024

3000만 원

동주공제

내가 8년 동안 몸 담아 온 작은 패션 광고 회사가 경영난으로 휘청댔다. 월급이 지연되어 나오는 건 당연했고, 연금보험은 22개월 치가 미납 상태였다. 건강보험 또한 체납으로 납입 독촉 지로가 수시로 날아왔다. 직원들은 불평과 불만, 걱정들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이가 많은 직원들은 혹여라도 해고될까 노심초사. 어린 직원들은 거취를 옮길 궁리. 나는 회사에서 업무 능력을 인정받고 있던 터라 해고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내가 할 일은 윗사람 어르고, 아랫사람 다독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내가 잘렸다. 회사에서 제일 연봉이 높았던 내가 가장 큰 재무 부담이라는 이유였다. 8년여의 노고에 대한 회답이었다. 나는 41살에 처음으로 해고라는 걸 당해 봤다. 뭔가 낯설었다. 그 낯섦은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내 잘못이나 실수가 아닌 이유로 생활에 변화를 겪어야 하는 것이 억울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노사 간의 부당한 처우는 늘 약자가 짊어져야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나는 이제껏 일을 한 번도 쉬어 본 적이 없었다. 군대 제대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부터 일을 시작했다. 의류 매장 아르바이트로 시작해서 그 매장의 매니저가 되었고, 2년 만에 가게 매출을 300% 신장시키며 3개의 매장을 관리하게 되었다. 그렇게 8년을 일을 했고, 한국에 들어오기 전 마지막 1년은 의류 매장 운영과 광고 사진 스튜디오 인턴 일을 병행했었다. 그 이후 미국에서 유선상으로 한국에 있는 패션 광고 회사의 면접을 봤다. 결과가 좋아 바로 한국으로 들어와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공백기 없이 16년여를 일을 했던지라 쉰다는 게 너무 어색했다. 물론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아니 자식을 아직 갖지 않은 신혼이었다면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휴직 기를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아빠라는, 가장이라는 직책은 그 상황의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툭! 어느 저녁, 혼자 식탁에 쪼그리고 앉아 잡코리아를 보며 술을 마시고 있는 나에게 와이프가 뭔가를 던졌다. 


“이거 일단 써. 남자가 그런 거에 쫄지 말고. 자기는 사진 잘 찍으니까 금방 또 취직할 수 있을 거야. 우리 가족 굶어 죽지 않아.”


통장이었다. 쓰윽 열어봤더니 30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그 순간 느껴지는 감정은 든든함을 넘어선 그 무언가였다. 그때 당시 퇴직금은 못 받았지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경제적으로 급박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도 단지 3000만 원이라는 돈을 받아서 든든함을 느꼈다라기보다는 온전히 나를 믿어주고,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한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 내게 힘을 주었던 것 같다.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의 남자라면, 또 아빠라면 누구나가 생각할 것이다. 가족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고, 가장의 위신도 지키고 싶다고. 나 역시 그랬었다. 무거운 짐이 있다면 항상 혼자 짊어지려 했었다. 무능함과 두려움은 숨기려고만 했었다. 마치 손전등을 들고 제일 앞에서 팀원들을 이끌고 야간 담력 훈련을 가야 하는 초등학교 6학년 보이스카웃 팀 리더처럼 말이다. 하지만, 통장이 내 앞에 던져지는 순간 나는 생각했다. 


‘아, 나 혼자 감당할 수도, 감당할 필요도 없는 거였구나. 나는 혼자가 아니었구나.’


이 정도 강단과 도량이 있는 여자라면 내가 의지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때론 어렵고 힘든 상황이 삶을 재정리해 주기도 한다.


삶이란 인간관계의 연속성과 연결성이 기본 골자로 되어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써 사회를 유기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중국의 격언에 ‘동주공제(同舟共濟)’라는 표현이 있다. ‘같은 배를 타고 함께 나아가다.’라는 뜻이다. 이 격언은 사람들이 같은 배를 타고 함께 나아가듯이, 어려운 상황에 서로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 혼자 배의 노를 젓고 있다면, 배 안의 사람들은 결국 내가 끌어야 하는 무게에 불과하다. 하지만 배 안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노를 젓는다면, 그 모두는 배의 동력이 될 것이다. 남자라고 해서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아빠라고 해서 모든 걸 짊어질 필요 역시 없다. 삶이란, 함께 노를 저어갈 동료를 찾는 여정이 아닐까 싶다.


어두운 장막이 거친 숨소리를 내며 내려왔다.

장막 뒤로 어스름히 보이는

푸른 형광등

깜빡 깜빡

그 아래 달그락 달그락

저녁 밥 짓는 소리인가?

구수한 밥 내음이 실린 바람이 휘익.

장막 아래 발끝을 타는 따스함

웅크리고 앉아

그 따스함을 한 움큼 들이킨다.

이전 06화 엄마 생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