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는 미국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에 정착해 가정을 꾸렸다. 필요하고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서로의 조카들이 태어날 때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우린 보지 못했다. 변변치 않은 월급쟁이들에게 한국과 미국의 거리는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아주 먼 나라다. 그나마 시간적 여유가 있는 엄마는 누나의 육아를 도와주기 위해 몇 달간 미국에 가 계신 적이 있었다. 하루는 미국에 잠시 가 계시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가 조금 아프다고, 근 3개월 사이 몸무게가 10kg이 빠지고 밥을 잘 못 먹는다고 한다. 안 좋은 생각은 하지 않으려 했지만, 엄마도 젊은 시절 갑상선 암을 앓으셨고, 아버지 역시 대장암으로 고생하셨었다. 그런 가족력 때문에 나는 더욱 걱정이 되었다.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와봐야 정확한 상태를 파악할 수 있지만, 피검사에서는 특별히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 하셨다.
전화를 끊고, 누나를 떠올려 봤다. 학창 시절엔 참 성질 더럽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었다. 근데 또 공부는 잘해서 집에선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드리기가 힘들었다. 나는 늘 피해자 같은 느낌이었다. 둘째로 태어나 늘 누나가 쓰던 학용품을 썼고, 누나가 타던 핑크색 자전거를 타며 자랐다. 여느 형제, 자매, 남매가 그렇듯이 우리 남매 역시 어린 시절 무척이나 투닥거리며 자랐다. 우리가 싸울 때면, 항상 들었던 얘기가 “누나는 여자니까 남자인 니가 참아라.”, “ 누나가 사춘기니까 니가 참아라.”였다. 그때 당시에는 조금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 마음이 워낙 하해와 같이 넓어서 잘 참고 넘어갔다. 덕분에 나는 참는 법을 누구보다 잘 배웠다. 지금도 나는 인내심이 많고, 둥글둥글한 성격이다. 처가 쪽 친척분은 내게 너는 죽으면 사리 나오겠다며 성격을 칭찬하신 적도 있다. 지나고 보면 대부분의 갈등은 한낮 안줏거리에 불과하더라.
그런 나의 감내와 노고를 누나는 알았던 걸까? 문득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누나는 미국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한국에서 잠시 직장 생활을 하던 때였고, 나는 당시 군대를 막 제대하고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보험회사였다.
“최희정 씨 동생분 되시나요?”
“네.”
“최희정 씨가 동생, 최재훈 씨를 생명보험 수혜자로 하셨는데, 보통 부모님이 모두 생존해 계신 상황에 형제자매를 생명보험 수혜자로 할 경우 보험 사기나 보험금 취득이 목적인 범죄로 오인될 가능성이 높아서 사전에 경고를 드립니다. 최희정 씨께도 그렇게 말씀을 드렸고요. 그런데 최희정 씨께서는 그래도 동생분에게 보험금이 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해서 동생분께 확인 전화 드리는 겁니다.”
“아.. 네. 저는 모르고 있었는데요. 생명보험 수혜자라는 게 정확히 뭔가요? 제가 그런 건 잘 몰라서요.”
“최희정 씨가 질병이나 사고로 사망하실 경우 최대 3억 원까지 최재훈 씨가 보험금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으니 누나가 해달라는 데로 해주세요.”
그때 당시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다. 20대였던 나에게 죽음이란 허상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치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듯. 하지만 나이가 들고, 나의 시간이 늙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죽음이란 그리 멀리 있지 않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늙어가는 시간 속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기나긴 학업의 끝마침, 어렵사리 취업, 누나의 미국살이, 미친 짓 일지도 모르는 나의 결혼, 아내의 출산, 끝날 것 같지 않은 육아, 방심했던 실업과 재취업,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아들의 벌써 입학. 마치 인생이라는 책의 목차를 보고 있노라면, 남은 페이지가 읽은 페이지보다 적어지듯이 내 인생은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번 챕터의 제목이 ‘누나의 병치레’는 아니었다. 약물 치료가 가능한 정도의 위염이라고 전해 듣게 되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보험 수혜자 란에 내 이름을 적은 누나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어떤 마음이었길래 보험회사의 으름장에도 굴하지 않고 나를 수혜자로 해 달라고 했을까? 정말 둘째로 살아온 나의 설움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성경 말씀에 ‘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디모데 전서 2장 1절-2절)’라는 구절이 있다. 높은 지위에 있는 누나를 위했더니 그런 수혜가 주어지려 했나 보다. 물론 미국에서 결혼해 아들, 딸 낳고, 미국 시민권자로 살아가는 지금의 누나는 보험 수혜자로 내 이름 따윈 쓰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남매간의 우애로 기억할 수 있는 이런 에피소드 하나를 만들어 준 누나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그리고 언젠가 한 번은 물어봐야겠다. 조금 더 나이가 들고 우리 둘 다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