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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옥 May 19. 2021

잔잔히 오래오래 곁에 있어주기를

 연남동 끝자락에는 나만의 카페가 있다. 너무 유명해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나만 알고 싶은 곳이면서 사장님이 오래오래 이 곳을 지켜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여기저기 널리 널리 알리고 싶기도 한 곳이다.

 이 곳에서 늘 주문하는 메뉴는 '아인슈페너, 솔트'이다.

아인슈페너만 무려 5가지 종류이지만 나는 그중에도 핸드드립으로 내린 카페라테에 사장님이 직접 만드신 하우스 크림이 듬뿍 올려져 있고 그 위에 히말라야 핑크 소금이 뿌려진 이 커피를 가장 좋아한다. 커피도 담백하게 맛있지만 크림이 다른 카페에서 먹어본 휘핑크림과는 차원이 다르다. 쫀쫀하면서 꾸덕꾸덕한 식감에 뒷맛에서 텁텁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깔끔한 단맛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첫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입안 가득 기분 좋은 달달함이 퍼지고 너무 맛있어서 눈이 크게 떠진다. 이 카페를 알기 전 나는 다른 카페에서도 수많은 아인슈페너를 먹어 보았지만 늘 무언가 아쉬운 맛이었다. 크림이 너무 가볍고 싸구려 단맛이 나거나 크림이 올려진 윗부분을 거의 다 먹고 난 뒤 마시는 커피는 맛이 없었다. 하지만 사장님의 아인슈페너는 마시는 모든 순간이 그저 완벽하다. 나는 커피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 곳의 아인슈페너를 먹은 뒤로 다른 카페에서 아인슈페너를 시킬 수 없게 되었다.

 훌륭한 커피맛이 깊은 여운을 주듯 이곳은 귀로도 그 향을 느낄 수 있다. 턴테이블에서 잔잔한 팝송들이 흘러나온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이나 해질 때쯤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듣기 좋은 음악들이다. 듣다가 좋아서 곡명과 뮤지션을 찾아보고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한다. 나는 비 오는 날의 이 카페를 더 좋아하는데 빗소리와 함께 음악과 커피맛에 흠뻑 빠진 채  창가에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다가 온다. 훌륭한 커피맛에 향기로운 음악까지 이보다 더 완벽한 조합이 있을까?

  4개 정도의 테이블이 전부인 이 작은 공간을 남자 사장님 혼자 운영하고 있다. 커피 머신 없이 핸드드립만으로 커피를 내리는데 새로운 손님이 오더라도 커피를 만드는 중이라면 아주 정중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커피 내리는 일에 온전히 집중한다. 앞에 받은 주문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면 다음 주문을 받지 않는다. 한 손님에게 받는 주문 하나하나에 집중하여 오롯이 정성을 다한다. 뿐만 아니라 완벽히 만들어지지 못한 음식을 내어주게 될 땐 많이 부족하다며 돈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까눌레와 티라미수도 완벽한 식감과 상태를 위해 욕심 내지 않고 그날그날 소량으로만 만들어서 판다.

 하루는 늘 주문하던 아인슈페너를 한잔 마시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커피 한잔을 더 마시고 싶어 바닐라라떼를 주문했었다. 그때 사장님은 돈을 받지 않고 커피를 그냥 주셨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맛을 낼지 요즘 고민이 많은데, 한번 드셔 보시고 어떤지 말해달라고 하셨다. 이미 훌륭한 커피를 만들고 있음에도 늘 더 나아지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고, 겸손한 모습이 내가 만났던 어떤 카페 주인들과도 달라 보였다. 요즘은 그저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과 사진 등으로 SNS를 통해 이목을 끄는 카페들이 많다. 맛보다는 예뻐 보이고 화려해 보이기 위해 애를 쓴다. 예전엔 그런 카페에 가서 사진 찍는 걸 좋아했던 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무작정 돈을 좇지 않고, 소신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정성스럽게 하는 사장님을 보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내가 출퇴근 버스 안에서 그리고 자기 전 틈틈이 글을 쓰고 책을 읽을 때 주변 사람들은 틈이 날 때마다 주식의 변동 상황을 들여다보며 외적인 가치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주변에서 지금이라도 시간 날 때 조금씩 시작하라고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그 손을 잡지 않고, 좋아하는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나만의 소소한 행복을 채워갔다.

 

다른 사람들이 가는 길로 무작정 따라가지 않고 나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좋아하고 중요하다 느끼는 것들을 놓치지 않으면서.

그리고 흔들릴 때마다 카페에 들러 사장님이 내려주시는 커피를 마시면서 마음을 다 잡을 수 있도록 이 카페가 잔잔히 오래오래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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