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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하늘은 어제와 조금 달라서

피드몬트 공원에서 자전거 타기

by 더스크

아침 산책을 나설 때마다 집 앞 나무들의 단풍이 하루가 다르게 짙어져 가고, 바싹 마른 나뭇잎들은 발 밑에서 바스락거리며 부서진다. 길에서는 다람쥐들을 자주 마주치는데 - 운 좋은 날은 사슴을 만나기도 한다 - 겨울 채비라도 하는지 나무들 사이를 분주히 뛰어다닌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애틀랜타는 한국보다 따듯해서 겨울이 늦게 찾아온다고는 하지만, 이 좋은 계절이 언제까지고 계속될 리는 없기에 하루라도 놓칠까 조바심이 들어 무작정 집을 나섰다. 우리는 목적지도 없이 나와서 점심을 먹다가 피드몬트 공원으로 가기로 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그저 공원이라는 이유로.


공원이 상당히 커서 여기를 어떻게 다 둘러보나 걱정하던 차에 공유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애틀랜타 시내에 공유 자전거가 있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는데 공원에도 빌리는 곳이 있었던 모양이다. 자전거를 타는 것이 취미라 한국에서 짐을 보낼 때 자전거도 함께 보냈지만 아직 짐이 도착하지 않은 탓에 자전거를 타지 못한 지 한참 되었던 터라 오랜만에 만나는 자전거가 무척 반가웠다. 무엇보다 오늘은 자전거를 타기에 너무 좋은 날이었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자전거를 빌려 타고 공원을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 애틀랜타 시내에서 운영 중인 공유 자전거. 이용 방법은 한국의 공유 자전거와 동일해서, HOPR 라는 앱을 설치한 후 결제를 하고 나서 자전거 뒷면에 있는 QR 코드로 잠금장치를 해제한 후 이용하면 된다. 공원에는 자전거보다 세그웨이를 타는 사람들이 더 많았는데 타고나서 보니 왜 그런 지 알겠더라. 공원이 넓어서 한 바퀴 돌고 나니 다리가 뻐근했다. 이동 수단에는 역시 동력이 필수다.


공원 안에서는 갈림길을 여러 번 만났는데 어차피 다 모르는 길이어서 망설일 것 없이 아무 곳으로나 마음 내키는 대로 갔다. 모두가 새로운 길이지만 이상하게 낯설지는 않았다. 장소가 다를 뿐 계절이 같기 때문이었을까. 계절은 매년 돌아와 익숙할 법한데도, 매년 돌아올 때마다 처음 만나는 것처럼 설레고 기쁘다는 것이 신기하다. 한편, 어떤 계절에 머무르면 질릴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북극처럼 겨울만 있다면, 아프리카처럼 여름만 있다면 늘 같은 계절이 지긋지긋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추위에도 더위에도 정도가 있으니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선선해서, 혹은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맑을 것 같아서 그 나름대로 즐겁지 않을까? 계절이 바뀌는 것은 그렇게 즐겨야 하는 것 같다. 같은 가을이어도 오늘은 어제와 조금 달라서, 더 화사하든, 더 쌀쌀해졌든 그냥 조금 달라서 즐겁다고. 그렇게 한 계절을, 한 해를 지나가다 보면, 어쩐지 인생도 즐거움으로 가득 찰 수 있을 것 만 같은 생각이 든다.


§ 피드몬트 공원의 가을 풍경. 자전거를 타느라 사진을 거의 찍지 못했지만 그게 대수인가 싶다. 내가 지금 이곳에서 보고 느끼고 있는데. 좋은 날은 그저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내년에도 어김없이 가을을 맞이할 테고, 아마 올해처럼 하루하루를 반가워하다가 겨울이 다가오면 아쉬움으로 보낼 것임을 안다. 허나 기다리면 또다시 찾아올 계절임을 알기에 아주 조금만 아쉽다가 겨울을 반길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계절을 맞이 할 그곳이 미국의 애틀랜타이든 한국의 어느 도시이든 간에 계절이 공평하게 오고 지나감에 감사하며 오늘도 하루의 가을에 작별을 고한다.


§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찍어 본 동영상. 고프로 같은 영상기기가 없어서 자전거 앞 바구니에 아슬아슬 휴대폰을 세워놓고 찍었더니 점점 기울어지다가 결국 얼마 못가 쓰러지고 말았다. 동영상을 찍은 이유는 사진보다 이때의 이 감정이 더 잘 담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는데, 찍고 나서 보니 그렇지도 않더라. 스크린 안의 풍경이 움직일 뿐 따스한 햇살도, 마른 낙엽의 냄새도, 머리카락을 쓸고 가는 부드러운 바람도 모두 빠져 있으니 당연하다. 그 순간의 감정이란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진 것이니까. 언젠가 촉각과 후각까지 재현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온다면 아마도 세상을 지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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