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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Dec 28. 2021

네가 내게 다가오면 나는 네게 빠져들지

매력적인 팝업북의 세계

거실과 안방 책장에 책을 꽂는 것으로 며칠간의 힘겨웠던 짐 정리가 끝이 났다. 숨을 돌리며 어디 더 손댈 곳이 없는지 집안 구석구석을 찬찬히 훑어보다가 문득 서가에 눈이 멎었다. 서가 한편에 여기저기서 차곡차곡 모아 왔던 팝업북들이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다. 마침 미국에 와서 구입한 팝업북들도 몇 권 있으니 오늘은 나의 팝업북들에 대해 글을 써봐야겠다.


처음 팝업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십 년도 더 전에 생일선물로 받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시작이었다. 나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림들이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팝업북에 홀딱 반해 버렸다. 접힌 종이가 움직이며 책에 묘사된 장면을 재현할 때는 마치 주인공들이 책 바깥으로 튀어나와 살아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작가는 인쇄된 활자들에 숨을 불어넣어 평평한 2차원 세계를 마법사처럼 3차원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후 파리에 여행을 갔다가 기념품샵에서 우연히 파리 팝업북을 발견한 후 마음에 드는 팝업북이 보이면 사 모으게 되었다. 많지는 않지만 문득 파리가 생각나는 밤에는 에펠탑을 펼쳐 보기도 하고, 혼란스러운 날에는 이상한 나라에 빠져버린 앨리스가 된 기분으로 책 속 여행을 함께했다.


미국에 온 후 가장 먼저 내 마음을 사로잡은 팝업북은 뉴욕 공공도서관에서 구입한 뉴욕 팝업북이다. 파리와 도쿄에 이은 세 번째 도시 팝업북 컬렉션. 자유의 여신상이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같은 뉴욕 각 지역의 랜드마크는 물론 뉴욕의 유명한 음식들도 소개하고 있어 여행안내 책자로도 훌륭하다. 다음은 <오즈의 마법사>. 미국에 와서 처음 읽은 책이 <오즈의 마법사>였기에 기념으로 팝업북 버전을 구입했다. 물론 작품의 메시지가 좋기도 하고. 첫 페이지를 넘기면 회오리바람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태풍 때문에 뜻하지 않게 모험을 하게 된 도로시와 예상치 못하게 머나먼 이국 생활을 하게  내 처지가 어째 비슷한 것 같아 마음이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는 가츠시카 호쿠사이 팝업북. 인상파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일본의 천재 우키요에 판화가 호쿠사이의 작품을 팝업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책을 펼치면 눈앞에서 파도가 넘실대고 주작이 힘껏 날갯짓을 한다. 입체화가 생동감 있을 뿐 아니라 작품에 대한 설명도 충실해서 소장욕구를 더욱 자극했다. 한국에서 구하기 어렵다는 점도 수집을 결심하는데 한 몫했고.


마지막은 셰익스피어 팝업북이다. 셰익스피어 팬으로서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표작들이 희극, 사극, 로맨스, 비극 등으로 나누어져 소개되어 있다. 페이지가 한정되어 있어 소개가 간략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십이야>가 제일 첫 페이지에 나와서 기분 좋았다. 작가와 내가 취향이 같은 건지, <십이야>가 가장 사랑스러운 작품이라는 사실에 그 누구도 이견이 없는 건지는 모르겠다.


이 외에도 가우디 작품이나 다른 여러 동화 팝업북들도 무척 탐이 났지만 아쉬움을 남겨 두어야 계속해서 갈망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마음속에만 담았다(그래도 몇 년 전 텀블벅에서 제작한 서울 팝업북을 구입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후회가 되기는 한다). 팝업북을 펼치면 책 안의 세계가 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온다. 다음에는 또 어떤 세계가 나를 향해 다가올까. 세상 어딘가의 서점에서 기다리고 있을 팝업북을 상상하며 나는 또다시 기꺼이 빠져들 준비를 한다.


§ 나의 팝업북 컬렉션. 카메라 앵글과 거치대 높이의 한계로 윗부분이 많이 잘려 나갔다. 한편 위 도서 소개 이미지들의 출처는 모두 아마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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