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어느 순간에 인생을 관통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겠지만, 아직까지 내 인생에 있어서 코로나만큼 역사를 뒤바꾼 사건은 없는 것 같다. 대학시절 겪은 IMF도 혹독하긴 했고, 그로 인해 한국 사회가 크게 뒤바뀌기는 했지만 어쨌든 IMF는 국내의 사건이었던 데에 반해 코로나는 세계적인 규모의 사건이기에 코로나 전과 후로 사람들의 생활패턴도, 사고방식도, 경제구조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로 인해 빈부격차나 인종차별 같은 여러 사회적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는데, 그중 가장 큰 위협으로 느껴지는 것 중 하나는 쓰레기 문제이다. 배달 서비스가 늘어남에 따라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발생하고 있으며 매립지가 부족해 지자체 간의 갈등이 야기되고 있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접하곤 한다.
미국에 오기 전에 어떤 미국인과 환경문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가 말하기를 미국인들은 환경에 관심이 없어서 재활용을 전혀 하지 않고 마구 버린다고 했다. 나 역시 그런 얘기들을 자주 듣기도 하고, 드라마에서도 주인공들이 쓰레기들을 그냥 섞어서 버리는 모습을 종종 보기도 했던 터라 언젠가 지인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세계 1위 강대국의 국민들이 이렇게까지 무책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미국에 와서 보면 언젠가 이놈들이 지구를 멸망시킬 거란 생각이 들어
그런데 막상 미국에 와보니 어라? 집집마다 차고에 재활용 쓰레기 상자가 있다. 처음 집을 안내하던 부동산 업자는 조지아주는 종이와 플라스틱만 재활용을 한다고 했다(미국은 주마다 법이 달라서 재활용 품목이 다르다고 한다). 그런데 조지아텍 캠퍼스에는 종이와 플라스틱 외에도 캔 종류를 모으는 별도의 쓰레기통이 있었다. 당장 오늘 밤에 쓰레기 수거차가 온다는데 일반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이럴 때 가장 빠른 방법은 옆집 쓰레기를 살펴보는 것이리라. 나는 노숙자처럼 이웃집의 쓰레기통들을 열심히 기웃거렸다. 그런데 재활용 상자를 보니 집집마다 제각각이어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생각을 해보니 한국에서도 재활용 기준을 엄격하게 지켜서 내놓지는 않으니 당연하기도 하다. 결국 의지할 것은 인터넷뿐인가.
인터넷을 통해 확인을 해보니 조지아 주의 재활용 품목은 한국과 거의 동일한데 유리는 재활용하지 않고 일반쓰레기로 버린다고 한다. 한편 비닐과 스티로폼은 쓰레기차가 수거해 가지 않기 때문에 재활용을 원하면 비닐 등을 따로 모아 두었다가 집 근처 대형마트나 재활용 센터에 가져다주어야 한다. 물론 일반쓰레기로 버리는 사람들도 많지만, 미국은 한 번 장을 볼 때마다 어마 무시한 양의 비닐이 나오기 때문에 - 장바구니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고 비닐 하나에 물건을 한 두 개 정도만 담아 주는 수준으로 각각 따로 나눠 담기에 비닐이 엄청나게 많이 사용된다 - 한국에서 비닐 재활용에 익숙한 나로서는 일반쓰레기에 담는 것이 마음 편치 않다. 결국 수고스럽더라도 비닐류는 따로 모아서 재활용하는 곳으로 가져다주어야 할 것 같다.
§ 집집마다 구비된 일반쓰레기통과 재활용 쓰레기 상자. 재활용 쓰레기를 품목별로 구분해서 내놓는 한국과 달리 이곳에서는 따로 분류하지는 않고 모두 재활용 상자에 함께 넣는다. 쓰레기통들은 평소에는 차고에 넣어놨다가 매주 정해진 요일에 집 앞에 내놓는다. 한편, 한국에서 기껏 가져간 장바구니는 쓸 기회가 없어 비닐을 모아 놓는 용도로 전락하고 말았다.
미국인들이 게으르다는 편견과 마찬가지로 모두가 환경에 무관심하다는 것도 100% 사실은 아닌 것 같다. 쓰레기뿐 아니라 스타벅스 같은 매장에서는 재생용품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위의 지인의 말은
"이대로는 자기들이 지구를 멸망시킬지도 모른다는 걸 그들도 깨달아 가고 있어"
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생각해 보면 특정 국가의 사람들이 지구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관점 자체가 넌센스일 수 있다. 흔히 환경에 무관심하다고 여겨지는 미국인, 중국인들도 환경 관련 법이 엄격한 유럽에 데려다 놓으면 열심히 재활용을 할 테니 말이다. 지구가 멸망한다면 특정 국가의 사람들 때문이라기보다 모두가 조금씩 환경을 갉아먹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에라도 미국인들이 재활용에 동참해 주어서 지구가 멸망하는 시간이 조금은 늦춰진 것 같아 그나마 안심이 된다. 이 시계 바늘을 조금이라도 더 늦추기 위해 오늘도 산더미처럼 쌓인 비닐을 모으며, 다음에 장을 보러 갈 때는 일부러 한국에서 챙겨간 에코백을 용기 내 꺼내보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