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오늘 나는 남편과 결혼했다. 결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통 실감이 나지 않아서 무슨 체험 이벤트를 하는 기분이었다. 결혼생활에 익숙해진 지금도 이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 기분은 잘 들지 않아서 매년 결혼기념일이 되어서야 세월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결혼기념일은 연례행사처럼 가까운 근교로 당일치기로 떠나든, 며칠 휴가를 내어 멀리 떠나든, 늘 여행을 갔었다. 둘 다 소박한 성격이라 대단한 선물을 바라는 것이 없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서운해서 처음 여행을 가기 시작했던 것이 지금은 루틴이 되어버렸다.
올해는 그 여행이 미국이 되었다. 무려 1년간의 기나긴 여행이 되겠지만. 이렇게 머나먼 곳에서 결혼기념일을 보내리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사실 결혼기념일뿐 만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에 가게 되리라는, 나아가 살게 되리라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미국은 그다지 관심 있는 나라는 아니어서 여행지의 후보에 오른 적 조차 없었는데,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인생은 참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은혼식, 금혼식처럼 미국에서는 14번째 결혼기념일도 의미가 있어서, 안정과 인내, 품위와 존엄을 뜻하는 상아가 그 상징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상아로 만든 보석류를 선물했었다는데, 최근에는 동물학대 논란이 있어서 코끼리 인형이나 사진 등으로 대체한다고 한다.
미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맛집이 어디인지 알 수 없어 여기저기 수소문해 찾아간 <몰 오브 조지아> 옆의 <Seasons 52>라는 식당은 다행히 가격도 합리적이고 음식도 맛있었다. 작은 케이크랑 와인이라도 사고 싶어 일부러 <몰 오브 조지아>까지 찾아갔는데 정작 케이크와 와인을 파는 곳은 없어서 아쉬웠지만, 음식이 맛있어서 시차 적응 실패로 오후만 되면 내려앉는 눈꺼풀을 충분히 버티며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테이블 담당 서버가 52가지 와인을 갖추고 있어서 <Seasons 52>라며 열심히 설명해 주었는데 운전을 해야 하기에 와인을 마실 수 없었다. 칵테일 종류도 있었지만 논알콜은 없다고 하여 포기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대체로 농어로 추정되는 생선요리들을 먹고 있었다. 농어 맛집이었던 것일까. 농어와 와인을 맛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방문하기로 하고 오늘은 가게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