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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스크 Nov 08. 2021

Ivory anniversary

미국에서 맞이한 결혼기념일

14년 전 오늘 나는 남편과 결혼했다. 결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통 실감이 나지 않아서 무슨 체험 이벤트를 하는 기분이었다. 결혼생활에 익숙해진 지금도 이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 기분은 잘 들지 않아서 매년 결혼기념일이 되어서야 세월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결혼기념일은 연례행사처럼 가까운 근교로 당일치기로 떠나든, 며칠 휴가를 내어 멀리 떠나든, 늘 여행을 갔었다. 둘 다 소박한 성격이라 대단한 선물을 바라는 것이 없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서운해서 처음 여행을 가기 시작했던 것이 지금은 루틴이 되어버렸다.


올해는 그 여행이 미국이 되었다. 무려 1년간의 기나긴 여행이 되겠지만. 이렇게 머나먼 곳에서 결혼기념일을 보내리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사실 결혼기념일뿐 만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에 가게 되리라는, 나아가 살게 되리라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미국은 그다지 관심 있는 나라는 아니어서 여행지의 후보에 오른 적 조차 없었는데,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인생은 참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은혼식, 금혼식처럼 미국에서는 14번째 결혼기념일도 의미가 있어서, 안정과 인내, 품위와 존엄을 뜻하는 상아가 그 상징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상아로 만든 보석류를 선물했었다는데, 최근에는 동물학대 논란이 있어서 코끼리 인형이나 사진 등으로 대체한다고 한다.


1st ~ 90th Wedding Anniversay 의미와 선물 
90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하려면 몇 살에 결혼해서 몇 살까지 살아야 하는걸까..?


미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맛집이 어디인지 알 수 없어 여기저기 수소문해 찾아간 <몰 오브 조지아> 옆의 <Seasons 52>라는 식당은 다행히 가격도 합리적이고 음식도 맛있었다. 작은 케이크랑 와인이라도 사고 싶어 일부러 <몰 오브 조지아>까지 찾아갔는데 정작 케이크와 와인을 파는 곳은 없어서 아쉬웠지만, 음식이 맛있어서 시차 적응 실패로 오후만 되면 내려앉는 눈꺼풀을 충분히 버티며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테이블 담당 서버가 52가지 와인을 갖추고 있어서 <Seasons 52>라며 열심히 설명해 주었는데 운전을 해야 하기에 와인을 마실 수 없었다. 칵테일 종류도 있었지만 논알콜은 없다고 하여 포기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대체로 농어로 추정되는 생선요리들을 먹고 있었다. 농어 맛집이었던 것일까. 농어와 와인을 맛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방문하기로 하고 오늘은 가게를 나섰다.


짜지 않아 좋았던 필레미뇽 & 랍스터테일과(좌) 질겨 보였는데 놀랍게 부드러웠던 폭찹 스테이크(우)




우리의 미국 생활에 빨리 안정이 찾아오기를

정착하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함께 인내하며 극복할 수 있기를

서로가 서로에게 코끼리 같은 듬직한 동반자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의 Ivory anniversary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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