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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Mar 19. 2023

글과 말

나는 왜 쓰나


 글을 쓰며 같은 주제를 말로 할 수 있다면 더 재밌게, 쉽게 잘할 수 있을 것 같단 상상을 자주 한다. 상상은 자유라고. 실은 말과 글, 그중 무엇도 쉽지 않다는 걸 안다. 일상이건 공식석상이건 말하는 게 취미고 특기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 앞에서 나의 고민은 늘 언제쯤이면 할 말 제.대.로. 할 수 있는 거냐고 했던 나를 까먹었다. 무튼 심심풀이로 시작했던 글쓰기가 꽤 안정적인 취미생활로 자리 잡았다. 쓰는 것을 '꾸준히'하는 것에만 집중했었는데, 그게 생활이 되니 이젠 좀 막 말고 '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운 좋게 글쓰기 합평 모임을 하게 됐다. 첨삭이든 뭐든 '평'이 시작되면, 나도 모르게 욕심과 조바심이 나는 점을 알고 있어 망설이다 시작은 했는데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쓰고 읽고 나누는 일은 떨리고 즐거운 일이었다. 좋은 점보다도 고칠 점을 듣고 싶어서 들어간 곳이었는데, 고칠 점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이 먼저 얘기해 주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을 생각 자체의 모순 같은 것들도 알게 된 긴장되며 귀하고도 짜릿한 시간이었다.

 평소에는 그냥 읽기만 하다가 평을 해야 하기에 오래간만에 신경 써서 글을 읽고, 보고, 생각하다, 다시 쓰고 평을 듣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쓰는 나나 읽는 사람들이나 마음이 무거워질 만하여 망설이던 가족고백을 결국 해낸 내 글을 읽고 리더 선생님이 충격을 받으셨는지
 "해연 씨는 이런 적나라한 자기 고백의 글을 쓰고 나면 마음이 어때요?"

라고 물었다. 뭐라 뭐라 하다가 끝에는

 "저도 모르겠어요." 했다. 자발적으로 나의 치부를 드러내고도 마음이 후련하기는커녕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마조마하던 그날의 합평이 끝나고 생각이 이어졌다. '나 진짜 글을 왜 쓰고 있지? 왜 쓰는 걸 좋아하게 된 거지? 아니, 생각해 보면 쓰고 나서 그닥 감정이 해소되는 것도 아닌 데 왜 쓰고 앉았지?' 같은 것들이었다. 비단 이 처음이 아니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초반에도, 글을 쓰면 후련해서 좋다는 사람들 앞에서 나만 유일하게 글을 쓰고 나면 더 감정에 몰입돼서 힘들다고 했다. 웃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놓으려는 생각은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쓰면 쓸수록, 다른 사람들의 글을 더 많이 읽고 싶어 졌고, 읽고, 그 글에서 읽을 수 있는 내가 아는 그 알기만 하는 느낌과 기억이 글로 나타나 줬을 때의 희열을 나도 쓰고 싶어 졌다.
 
 이거는 본심보다 욕심에 가까운 생각이고, 아마 나는 글을 쓸 때 감정이 몰입돼서 힘든 한이 있더라도, 그냥 흩뿌려져 있거나 아님 그마저도 은폐되어 있는 감정만이 있는 정리되지 않은 나에서 '씀으로써' 조금이라도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좋은 것 같다. 사람과 말과 글을 좋아하는 나는 정작 내 감정을 구체적으로 알고, 표현하는 것에 서툰 데 그런 내가 글에서 다양한 감정과 기억들을 정리하고 해독해 가는 느낌이랄까. 특히 요즘처럼 효율적이고, 자극적인 것에 익숙한 시대에서 대세에 영입하지 않고 SNS나 블로그식 가볍거나 정보성 글이 아닌, 아날로그 식 글을 선호한다는 데서 이상한 우쭐함과 대단한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또 그냥 일기, 기록성의 글이 아닌 글을 쓰는데서 오는 긴장감과 정갈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감정을 나열하는데만 그치지 않게 도와주는 역할도 하는 듯하다.

 생각이 나니 써보긴 했는데 이래나 저래나 그 사람이 좋고, 좋아하게 된데 이유를 갖다 붙일 수는 있지만, 실은 '그냥 좋은' 사람이 진짜인 거다. 나에게 글도 그런 것 같다. 왜 쓰고 있는지 모르겠고, 왜 좋은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이유도 모른 채 잔잔바리로 좋아서 계속하고 싶은 거다.



말도, 글도 어려운 걸 아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말과, 글 가까운 삶을 산다. 학원강사라는 말로 먹고사는 일을 바깥업으로 하고, 가장 친숙하고도 더 가까이하고픈 취미로 글을 쓴다. 준비만 됐다면,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일대일의 상황에서는 말문이 트이는 순간보다 탁 막히는 일들이 허다하다. 글을 읽는 것은 말을 준비하고, 말을 잘하는 것보다 쉽지만, 몸을 일으켜 그 글이 나열된 책을 펼치는 것보다 그대로 누워서 유튜브 하나 더 눌러 낄낄대고, 10번도 더 본 넷플릭스 영상 한번 더 덕질하고, 나를 더 심란하게 하는 뉴스거리를 손가락 하나로 까딱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세상에서는  읽는 것에도 힘을 내야 한다. 그렇게 말을 준비하는 것보다는 조금 쉽게 글을 읽고, 그것보다 좀 더 힘을 들여서 글을 쓴다. 별생각 없이 좋아서 한 일이 하면 할수록 어째 더 나의 못난 글을 알아가는 것 같아 가끔 조바심이 나기도 하지만, 그것마저도 일상에서는 기쁨이고 희망과 활력이 된다. 웬일인지 나는 좋아서 하는 일들 조차 쉬운 하나도 없지만, 나는 또 그 어려운 것 들에서 매력을 느끼는 좁은 문을 택한다. 나의 시끄러운 세상에서 또 그렇게 좁은 문을 열고 그 길을 묵묵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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