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희종 Nov 17. 2019

인디언 보호구역

위험한 신혼여행

여기는 도움을 받기 어려운 곳이야

  미국의 대륙 분수령을 따라 걷는 컨티넨탈 디바이드 트레일(CDT)을 끝내고 미국과 캐나다가 마주한 국경에 도착했다. 길 위에서 만나 함께 걸으며 정이 들었던 친구들과 마지막 밤을 보내고 이제 다음 여행을 향해 떠나야 할 차례였다. 우리가 도착한 국경마을에서는 대중교통편을 찾기 쉽지 않았기에 히치 하이킹으로 큰 도시로 넘어가 그곳에서 다음 일정을 계획하기로 했다. 하지만 국경마을에서 히치하이킹을 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배낭을 메고 있긴 하지만 머리도 산발이고 수염도 지저분하며 옷차림도 누군가 보면 거지나 노숙자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도시로 나아가야 했기에 꿋꿋이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혹여나 누군가 우리를 보고 무서워하지 않도록 세상에서 가장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곤 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을까 수십대의 차를 보내고 드디어 한대의 차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CDT 하이컨 데요, 이제 막 CDT를 끝내고 큰 도시로 넘어가려고 해요. 캘거리로 가려하는데 혹시 그쪽으로 가시면 태워주실 수 있을까요?"


 "캘거리 까진 아니고 가는 갈림길까지 태워줄 수 있는데 괜찮겠니?"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지쳐있었기에 일단 조금이라도 전진하자는 마음에 그 차에 타기로 했다. 우리를 태워주신 분은 하얀 머리가 지긋하신 아주머니 었는데 카우보이 모자에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있는 것을 보아 주변에서 농장을 하시는 분 같았다. 차를 타고 가며 자세히 보니 흔히 인디언이라고 불리는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이신 것 같았다. 처음에는 혹시 모를 두려움에 조금 경계를 했었지만 워낙 친절하고 편하게 대해 주셔서 곧 경계를 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저기가 우리 농장이야. 캘거리까지 태워주고 싶지만 일이 있어서 안될 것 같구나. 큰 길가에 내려줄 테니 여기서 오는 차를 잡아보렴, 그럼 행운을 빈다."


 그렇게 우리는 아주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차에서 내렸다. 지도를 보니 캘거리까지 반 정도를 온 듯했다. 물론 원래 가려던 길 쪽은 아니었지만 이곳에서도 충분히 캘거리로 가는 차들이 많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곧 큰 도시로 갈 수 있다는 부푼 마음을 안고 다시 히치 하이킹을 시도했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차들은 우리 앞을 지나갈 뿐 좀처럼 서지 않았다. 한대, 두대, 열대 그렇게 시간을 흘러만 갔다. 주변은 건물이라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황무지 같았다. 분명히 아주머니가 여기서 잘 잡힐 거라고 했는데 조금씩 아주머니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지났을까? 결구 차 한 대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안녕하세요? 저희 캘거리까지 가는데 태워주실 수 있을까요?"


 인상 좋은 아저씨는 캘거리까진 아니지만 캘거리로 들어가는 큰길까지 태워줄 수 있다며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감사하다고 말하며 아저씨의 차에 탔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아저씨가 우리에게 말했다.


 "그런데 왜 그곳에서 서있었니?"


 "아, 저희 CDT를 끝내고 국경에서 넘어왔는데 캘거리로 가는 길에 한 아주머니가 거기까지 태워주셨어요.  거기까지 올 때도 힘들었는데 거기서 역시 한참 동안 기다렸는데 서는 차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포기해야 하나 생각할 즘에 아저씨가 세워주신 거예요"


"그렇구나, 그런데 혹시 너네가 서있던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아니?"


"아니요? 잘 모르겠는데, 어떤 곳인데요?"


"그곳은 인디언 보호구역이란다. 원주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어떻게 보면 가두어 두고 있는 곳이지. 아마 그래서 차들이 너희를 보고도 세워주지 않은 것 일 수도 있단다. 워낙 사건 사고가 많은 곳 이거든? 술에 취한 사람도 많고, 범죄자도 있고, 너네들을 보고 인디언인 줄 생각한 사람들도 많았을 거야."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인종에 대한 차별이 그나마 적다고 생각한 이곳 캐나다에서도 인종에 대한 벽은 존재하는 듯했다. 우리를 도와주신 분 역시 원주민인 듯 보였는데 처음 그분을 보고 내가 했던 경계를 떠올렸다. 하지만 곧 그녀의 따뜻함에 그 경계는 눈 녹듯 사라졌다. 지금까지 여행을 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히치하이킹을 시도했지만 그곳에서 인종에 대한 특별한 통계는 나타나지 않았던 것 같다. 무섭고 두려운 순간도 많았지만 그것이 특정 인종에 의해 더욱 많이 일어나거나 적게 일어난 것 같진 않다. 물론 내가 한 경험이 수적으로 적기 때문에 함부로 결론 지을 수 없지만 스스로 경험주의자라고 생각하는 내게 이 번 일은 경험적인 결과로 나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조금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전 04화 the great honeymoon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