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신혼여행
“오리사바에 같이 오를래?”
미국의 대표적인 장거리 트레일인 PCT와 CDT를 걸을 때 만난 하이킹 친구 셰퍼드에게서 연락이 왔다. 40대 후반의 호주 경찰 출신인 셰퍼드는 조금 이른 은퇴 후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데, 나와 여행 스타일이 비슷해 CDT를 마친 후에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오리사바? 거기가 어딘데?”
“멕시코에서 제일 높은 산(5,636m)이고, 알래스카 데날리(Denali)와 캐나다 로건(Rogan) 다음으로 높은, 북미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야.”
“위험하지 않을까? 우리가 갈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야? 자전거 여행 중이라 배낭이랑 장비도 없는데.”
비슷한 풍경이 계속되는 자전거 여행이 조금씩 지겨워지기 시작하던 참이라 셰퍼드의 제안에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닌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여행으로 바뀌었기에 내 마음대로 계획을 변경할 순 없었다.
나는 2015년 미 서부의 PCT(Pacific Crest Trail, 4,300km)를 완주하고 그전에 하고 있던 알래스카부터 캐나다까지 자전거 여행을 이어가기 위해 시애틀부터 자전거를 타고 멕시코 과달라하라까지 내려왔다. 2016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CDT(Continental Divide Trail, 5,000km)를 완주하고, 다시 멕시코 과달라하라로 넘어가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다. 언제 도달할지 모를 남쪽 파타고니아를 향해 여행 중이다.
PCT와 멕시코 과달라하라까지의 자전거 여행은 혼자였지만, 둘만의 결혼식을 올린 후 그녀와 함께 여행을 하며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기로 약속했기에 무리가 될 수 있는 오리사바산을 포기하고 자전거 여행을 계속하기로 했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와 메소아메리카 고대 문명이 살아 숨 쉬는 테오티우아칸을 지나 드디어 오리사바가 위치한 푸에블라주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 드 넓고 검붉은 땅에 5,000m가 넘는 하얀 설산이 있다고 하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 옛날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그 산을 신들의 세상이라고 여기지 않았을까? 아니면 유럽인들처럼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았을까? 아직 눈 앞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저 멀리 어디선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듯한 느낌에 기분이 묘했다.
푸에블라주의 주도인 푸에블라 시티를 20km 정도 앞두고 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노란색 마을버스가 굉음을 내며 쌩 하고 우리를 지나쳐 앞쪽에 멈췄다. 멕시코에선 지정된 버스정류장이 없고 손을 들면 멈춰서 태우고 가는 경우가 많아 자전거 여행자의 입장에선 돌발상황이 잦은 편이었다. 그리고 아직 자전거 여행자에 대한 인식이 크지 않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했다. 앞서 가던 하늘이는 버스 뒤에 멈춰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렸고 나는 주변을 살피며 그녀에게 다가가는 중이었다. 얼마 뒤 승객을 태운 버스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하늘이는 버스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후 페달을 밟았다. 그때였다. 한참 앞으로 잘 나아가던 버스가 갑자기 후진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 이곳은 멕시코에서 나름 고속도로에 속하는 큰 도로였고 그런 도로에서 작은 차도 아니고 커다란 버스가 후진을 한다니, 상상조차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이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멀리서 버스를 향해 소리쳤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손을 흔들며 버스에게 멈추라고 신호하였다. 하지만 버스 기사는 뒤에 따라오던 작은 자전거를 감지하지 못하였는지 계속해서 후진을 하고 있었다. 정말 일촉 즉발의 상황이었다. 하늘이는 점점 다가오는 버스를 피해 자전거 방향을 틀려했지만 그 속도를 이겨낼 수 없어 결국 자전거를 버리고 도로변 수풀로 뛰어들었다.
'우지끈'
속도를 줄이지 않고 후진하던 버스는 결국 자전거를 깔아뭉개고 말았다. 버스 기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그제야 버스를 멈춰 세웠다. 나는 수풀에 쓰러져 있는 하늘이에게 달려갔다. 다행히 약간의 긁힘만 있을 뿐 크게 다친 것 같진 않았다. 나는 하늘이를 일으켜 세운 후 몇 번이고 괜찮은지 물었다.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지만 일단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자전거를 확인했다. 하늘이의 자전거는 버스 뒷바퀴에 눌려 앞부분은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고 뒷부분도 심하게 부서지고 찢어져 있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물론 하늘이가 크게 다치지 않아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말도 안 통하는 멕시코에서의 사고라니, 어떻게 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표정으로 볼 때 버스기사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일단 사진을 찍고 사건 현장을 보존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멕시코에서 만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그 친구는 일단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왠지 멕시코 경찰은 부패하고 무서울 것 같아 두려웠지만 그래도 공권력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잠시 뒤 경찰이 도착했고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멕시코 친구는 경찰과 주변 사람들과 통화를 하며 의사소통이 부족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버스 기사는 우리가 외국인이어서 그런지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계속해서 주장했지만 주변에서 사고를 목격한 멕시코 주민들 덕분에 버스기사의 결국 버스 기사의 잘못으로 밝혀졌고 우리는 함께 경찰서로 향하게 되었다.
"얼마면 돼? 얼마면 되는데?"
마치 영화에서 본 것만 같은 상황이 지금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어두 컴컴한 멕시코 경찰서에서 버스기사와 그쪽의 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경찰들에 둘러싸여 사건에 대한 조사를 받게 되었다. 과연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온 사람이 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경찰들도 신기했는지 번갈아 가며 우리를 보러 오는 듯했다. 버스기사와 지인들은 자전거 그까지 것 다시 사주면 되지 않냐며 얼마면 되냐고 계속해서 물었고 우리는 자전거의 견적서를 뽑아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물론 비싼 자전거는 아니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비용보다는 컸는지 말이 안 된다며 고쳐준다고 말을 바꿨다. 그래서 우리는 고칠 수 있으면 고쳐달라고 했다. 결국 자전거 수리를 하는 분까지 오게 되었고 그는 우리 자전거를 살펴본 후 수리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타국에서 사고를 당했고 정말 죽을 뻔한 순간이었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사과보다 먼저 해결할 방법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의 사건 조사를 도와주던 경찰관에게 내가 물었다.
"만약 저희가 합의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저희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사과조차 받지 못했어요."
그 경찰관은 조금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합의를 하지 않으면 법정까지 가야 하고 그렇게 되면 일이 복잡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합의를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한 단어에 대해서 말해 주었는데 처음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자 인터넷에서 그 단어에 대해 검색하고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그 후 우리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 사진에서는 우리가 흔희 생각하는 멕시코의 잔인한 범죄 사진들이 적나라하게 보이고 있었다. 팔이 잘리고 목이 잘린 시체, 총을 맞고 쓰러져 있는 사람들, 영화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자칫 잘못하면 이러한 상황까지 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우리는 너무 분했지만 그들이 제시하는 금액으로 합의를 하기로 했고 그 상황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그렇게 경찰서에서 지옥 같던 5시간이 지나갔다. 버스기사 일행은 우리에게 합의금을 주고 경찰서를 떠나갔다. 그 순간 굳건히 버티고 있던 내 다리는 풀려버렸고 하늘이는 무섭고 분했는지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잘 버텨주었다.' 모든 일이 정리되자 경찰서장은 수고했다며 우리에게 숙소를 잡아주고 따뜻한 푸에블라식 타코를 저녁으로 사주었다. 처음에 멕시코 경찰에 대해 안 좋게 생각했던 것이 조금은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