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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종 Nov 17. 2019

추락, 첫 번째 이야기

위험한 신혼여행

 자전거 사고가 있고 난 후 우리는 약간의 휴식을 갖기로 했다. 사고의 떨림도 조금 진정시켜야 했고 자전거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 새로운 자전거를 주문하고 받는데 까지 조금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푸에블라 시티 한 호스텔에 짐을 풀고 일주일 정도 휴식을 취했다. 이때 우리와 비슷한 루트로 자전거 여행을 하던 셰퍼드가 푸에블라 시티에 도착했다. 장기 여행자들의 특징이라고 해야 할까? 셰퍼드는 오랜 여행에 지쳐 많이 외로운 듯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의 여행 계획을 설명하며 오리사바산에 함께 가자고 이야기했다.


“자전거를 타고 4,260m 산장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 원래 오리사바 밑에 있는 트라치추카란 마을에서 지프차를 타고 올라가는 게 일반적인데 차가 가는 길이니까 자전거도 갈 수 있을 거야. 등산 장비도 빌릴 수 있고 가이드 비용도 생각보다 저렴하대.”


결국 우리는 오리사바산을 오르기로 했다. 우리가 자전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라말린체(4,461m)라는 화산에 올라 고소 적응을 한 뒤 해발 2,600m에 위치한 트라치추카에서 만나기로 했다.


트라치추카에서 만난 가이드는 오리사바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건기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전후로 등반을 많이 하며 4,260m에 위치한 ‘피에드라 그란데 산장(Piedra Grande Hut)’까지 지프를 타고 이동해 그곳에서 하루 이틀 머물며 고산 적응을 한 뒤, 이른 새벽 산장을 떠나 5,000m에 위치한 자마파 글레이셔(Jamapa Glacier)를 통해 정상에 오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루트라고 설명해 주었다. 지프는 1인당 150~200페소(약 1만 2,000원)이고 산장에서 머무는 것은 무료라고 했다. 하지만 새벽에 올라야 하기에 길을 잃을 수 있고 자마파 글레이셔부터 정상까지는 급경사라 위험해 추가 비용이 들더라도 전문 가이드와 함께하는 것을 추천했다. 또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이중화나 삼중화, 그리고 등반용 피켈과 아이젠은 필수라고 일러주었다. 우리는 일단 가이드 없이 필요한 장비만 빌려 자전거에 싣고 산장까지 가기로 했다.


우리는 아이젠과 피켈과 중등산화를 빌렸다. 그러나 나는 사이즈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는 것보다 익숙한 신발에 양말을 겹겹이 신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 중등산화를 빌리지 않았다. 예비일을 포함해 최대 6일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우리는 장비를 자전거에 실은 뒤 등반에 필요한 행동식과 음료를 구입한 뒤 정상을 향해 조금은 무모할 수도 있는 여정을 시작했다. 9km의 포장도로를 달려 첫 번째 마을인 ‘산 미겔 조아판’에 도착했다. 오르막이 힘들었지만 오리사바산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의 숙박지인 이달고까지는 7km밖에 되지 않았지만 비포장길의 떨림은 손목과 엉덩이를 부숴버릴 것만 같았다. 게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급경사에 허벅지는 터질 것 같았고, 화산재로 덮인 모래길은 바퀴가 푹푹 빠져 도저히 페달을 돌릴 수 없었다. 결국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시간이 늘어났고 마을을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지쳐가고 있었다.


 해가 저물 즈음 겨우 이달고 마을에 도착했다. 하지만 마을이라기에는 너무 작아 가구 수가 10 채도 되지 않았다. 다행히 작은 가게가 있어 물 2리터와 맥주 6캔을 살 수 있었다. 맥주는 오늘 밤 하나씩 마시고 나머지 세 개는 오리사바 정상에서 마실 계획이었다. 우리는 적당한 곳에 텐트를 치고 야영했다. 다음날 아침, 셰퍼드의 상태가 이상했다. 속에 탈이 났는지 밤새 한숨도 못 자고 계속 구토와 설사를 반복한 것이었다. 내려가서 쉬었다가 다시 오르자고 했지만 그는 하루 이틀로 나을 것 같지 않다며 우리 둘만 갈 것을 권했다. 결국 셰퍼드가 빠지고 우리만의 오리사바산 등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셰퍼드와 헤어진 뒤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땅이 습해져 온통 진흙투성이에다 자전거는 짐의 무게 때문에 깊게 빠지기 일쑤였다. 설상가상으로 길을 잘못 들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고도계를 보니 해발 3,800m였다. 고민하고 있던 순간 뒤에서 차 소리가 들렸다. 4륜 구동 픽업트럭이었다.


 “오리사바 가는 거야? 우리도 올라가는데 태워 줄까?”


 온통 진흙 범벅이 된 자전거를 트럭에 싣고 우리는 뒷좌석에 탔다. 우리를 태워준 두 멕시코인 젊은이는 어제 산장에서 고산 적응을 한 뒤 잠시 마을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중이라고 했다. 덕분에 우리는 위기에서 탈출해 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멕시코에서 처음 만나는 산장은 어떨까 기대를 했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허름한 산장이었다. 창고형 건물에 3층으로 구성된 침상이 놓여 있었다. 창문이 있는 복도 쪽에는 조리를 할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가이드나 쿡으로 보이는 멕시코인들이 커다란 버너를 설치해 두고 요리를 하고 있었다. 2016년 12월, 오리사바 등반 시즌이라 산장 안은 꽤 붐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에서 온 관광객과 멕시코 가이드들이었다. 우리는 산장의 유일한 아시아인이었고 게다가 자전거를 가져왔기에 더욱 신기하게 보는 것 같았다. 4,260m 산장에서 바라본 분홍빛 노을과 발아래 넓게 펼쳐진 운해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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