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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종 Nov 17. 2019

눈이 멀다

위험한 신혼여행

“오빠,,, 일어나야 할 것 같아.”


새벽녘에 하늘이가 나를 살짝 흔들며 깨웠다.


“으응,, 몇 시야?”


나는 평소와 다를 것 없다는 듯 몇 시냐고 물었다. 하지만 하늘이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무엇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침낭 밖으로 몸을 일으켜 하늘이를 확인했다. 하늘이는 눈을 감은채 앉아서 흐느끼고 있었다.


“하늘아! 무슨 일이야? 왜 울어~ 어디 아파?”


나는 너무 놀라 하늘이를 꼭 안으며 물었다.


“오빠, 눈이 너무 아파. 앞이 잘 안 보여,,,”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눈이 안 보이다니, 나는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하늘이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어선 안됐다. 일단 난 상황을 파악하려 하나하나 천천히 물어봤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얼마나 안 보이는지 등등 하늘이를 계속 꼭 앉은 체 물었다.


“어제저녁부터 눈이 충혈되고 시려서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계속 심해지는 것 같더니 너무 아파.”


정말 큰일이었다. 외부에 보이는 상처나 속앓이 등은 어느 정도 응급처치 방법도 알고 경험도 있지만 엄청 예민하고 중요한 눈의 통증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하늘이의 눈을 확인해 보니 밤새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불어있고 눈물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눈동자는 빨갛게 충혈되어 열이 났다. 일단 최대한 눈을 쓰지 않게 하기 위해 손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차가운 물과 눈을 퍼와 얼음찜질을 하기 시작했다. 불안해하는 하늘이의 손을 꼭 잡고 내가 옆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계속 이야기를 했다. 어제저녁 하늘이 눈이 충혈된 것을 알았는데 평소처럼 피곤해 그런 줄 알고 대수롭게 넘긴 날 속으로 자책했다. 밤새 아프고 무서웠을 텐데 세상모르고 잔 내가 너무 미웠다. 하지만 계속 자책할 수만 없었다. 지금이라도 최선의 선택을 찾아 해야 했다.


일단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어제 하루 종일 태양이 반사되어 눈이 부신 눈 위에 있었는데 선글라스를 끼지 않은 까닭에 눈에 무리가 온 것 같았다. 지금 당장 움직이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이 되었다. 제일 좋은 것은 위성조난 구조장치를 이용하여 구조요청을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탈출로는 30km 정도를 걸어 비숍 패스로 나가 비숍으로 나가는 것이지만 가파르고 눈이 많이 쌓여 있다는 패스를 지금 상태로 넘기는 무리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예전 야구를 하다 야구공에 눈을 맞아 전방 출혈로 병원에 갔던 기억이 났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것도 보지 말고 눈을 감고 안정을 취하라고 했었다. 지금의 최선은 하늘이의 안정이라고 판단하여 일단 조금 쉬며 상태를 지켜보기로 하고 혹시 진전이 없거나 유사시엔 지나가는 다른 하이커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구간이 구간인 만큼 오전에 몇 명 지나간 후로 산속은 물소리와 바람소리만 가득했다. 


하늘이는 계속 불안해했다. 나 역시 너무 무섭고 불안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다행히 하늘이가 오후 들어서 눈을 조금 붙이고 잠에 들었다. 밤새 아파 피곤했을 하늘이를 생각하니 눈물이 흘렀다. 잠들어 있는 하늘이를 보며 내가 원한 건 곁에만 있어달란 것이었는데 뭘 그렇게 욕심을 부렸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잠시 후 하늘이가 잠에서 깨어났다.


“하늘아, 어때? 괜찮아?”


“오빠, 이제 눈 살짝 떴다 감아도 덜 시린 것 같아. 근데 아직 눈이 부시고 아파.”


다행히 처음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그래도 계속 추이를 지켜보아야 했다. 일단 오늘 밤까지 텐트에서 푹 휴식을 취한 뒤 내일 아침에 결단을 내야 할 것 같다. 어떻게든 구조요청을 하든지 탈출을 시도하든지, 내일 아침이 밝아오면 아무 일 없다는 듯 하늘이가 눈을 반짝이며 눈인사를 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이럴 땐 신에게 기도할 수밖에 없는 내가 참 싫다. 제발,,,


아침에 일어나 하늘이를 바라보았다. 아직 침낭 속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다행히 통증이 심하지 않아 잠을 잘 수 있던 것 같았다. 깨우지 않고 조금 더 자게 놔두었다. 잠시 뒤 뒤척이더니 하늘이가 깨어났다.


“하늘아 잘 잤어? 눈은 어때?”


나는 하늘이의 안부를 먼저 물었다. 하늘이는 어제부터 눈에 두르고 있던 검은 레깅스를 살짝 올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오빠, 많이 좋아진 것 같아. 아직 눈은 부신데 그래도 오빠 얼굴은 보여.”


정말 다행이었다. 밤새 가슴 졸이며 오늘 아침을 기다렸었는데 좋은 소식이었다.


“정말? 그래도 계속 조심해야 하니까 일단 눈 감고 있어.”


나는 하늘이를 위해 아침을 준비했다. 그래 봤자 식량이 부족하여 피넛버터 바른 토르티야에 커피뿐이지만.


“하늘아, 어떻게 할까? 조금 더 쉬어볼까? 아니면 비숍 패스로 탈출할까? 그것도 아니면 뮤어 패스를 넘어서 뮤어 랜치로 나가볼까?”


나는 밤새 생각했던 탈출 시나리오를 하나하나 설명했다. 각각 장단점이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늘이의 상태였다.


“음, 일단 상태를 봐야 하니까 비숍 패스 빠지는 갈림길까지 가보자. 그리고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하늘이가 곰곰이 생각 끝에 대답했다.


우리는 일단 13km 정도 떨어진 비숍 패스 정션까지 가보기로 하고 배낭을 꾸렸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하늘이 짐은 내가 좀 더 들기로 했다. 그리고 하늘이는 선글라스를 끼고 스카프 두 개와 모자를 이용하여 눈에 빛이 최대한 들어오지 못하도록 준비를 했다.


“가보자!”


우리는 다시 길로 나섰다. 내가 먼저 천천히 가고 하늘이가 따라오는 방식으로 했다. 나는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하늘이 상태를 확인했다.


“오빠, 난 괜찮은 거 같아. 멀리 있는 것은 아직 잘 안 보이지만 눈 앞에는 보여.”


하늘이는 점점 트레일에 적응해 갔다. 다행히 눈도 거의 없고 어렵지 않은 길이었다. 어느새 비숍 패스 정션에 도착했다.


“하늘아 어떻게 할까?”


“음, 조금 더 가보자. 만약 안 좋아지면 바로 이야기할게.”


그렇게 해서 우리는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뮤어 패스를 가기 위해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하늘이는 스카프와 모자로 얼굴을 꽁꽁 싸매고 있어 더 더워 보였다. 마치 찜질방 양머리를 한 듯한 모습이었다. 생각보다 눈이 많이 녹아 큰 무리 없이 올라올 수 있었다. 하지만 3,000m를 넘어서자 조금씩 눈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발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우리는 뮤어 패스 4km 전에 적당한 곳에 텐트를 치고 내일 새벽에 패스를 넘기로 했다. 아무리 선글라스를 썼다고 하지만 눈의 반사광이 걱정되기도 하고 푹푹 빠지며 힘들게 가느니 새벽에 눈이 얼었을 때 치고 가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고 다행이 며칠 후 마을로 탈출 할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인 것은 하늘이의 눈도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도 하늘이 눈을 바라볼때면 눈이 안보일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시나무처럼 떨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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