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신혼여행
“앗, 따가워!”
순간 발목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벌 한 마리가 침을 쏜 것 같았다. 나는 재빠르게 벌을 손으로 때려잡았다. 그리고 쏘인 부위를 살펴보았다. 처음엔 주사 맞은 것처럼 따끔거리더니 점점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트레일을 걸으며 몇 번 벌에 쏘인 적이 있었기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곧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째 내리는 비에 점점 몸은 온기를 잃어가는 듯했다.
벌에 쏘인 지 30분 정도가 지나자 뭔가 몸에 이상함이 느껴졌다. 온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고 감각들이 엄청 세세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열기는 점점 거세져 양쪽 귀로 뚫고 나올 것처럼 느껴졌다. 사타구니와 겨드랑이를 시작으로 온몸이 가렵기 시작했다.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곧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멈추더라도 다음 물까지 가서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버텨보기로 했다.
오르막이 나타났다. 평소 같으면 그리 어렵지 않을 오르막이었는데 내 심장은 이미 100m 달리기를 한 듯 터질 듯이 뛰고 있었고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한발 한 발이 너무 힘들었다. 비는 계속 추적추적 내려 몸은 더욱 무거워져만 갔다. 정말 이러다 쓰러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신줄을 놓지 않기 위해 숫자를 하나씩 세기로 시작했다. 1부터 세던 숫자는 어느새 200을 넘어섰다. 갑자기 ‘심장마비’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는 도저히 한 발짝도 나설 수 없었다. 앞서 가던 하늘이가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하늘아~”
그제야 하늘이를 불렀다. 하지만 내리는 빗소리에 나의 작은 숨은 전달되지 못했다. 결국 하늘이는 숲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일단 나무 한편에 배낭을 풀고 기대앉아 가빠진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머리가 핑 돌며 기절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절대정신줄을 놓지 않으려고 다시 숫자를 하나하나 세기 시작했다. 그렇게 5분 정도 휴식을 취하니 조금은 숨이 돌아오는 듯했다. 나는 다시 배낭을 메고 천천히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갔다. 저 앞에 발을 동동 구르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하늘이 모습이 보였다. 너무 미안했다.
“하늘아, 나 말벌에 쏘인 것 같아. 지금 걷기가 너무 힘들어.”
하늘이에게 내 걱정을 시키고 싶지 않았는데 또 걱정을 시키고야 말았다.
“오빠, 괜찮아? 일단 텐트 치고 쉬어야 할 것 같아.”
우리는 적당한 곳을 찾아 텐트를 쳤다. 하지만 내 상태는 호전되지 않고 있었다. 계속해서 온몸에 열이 났고 헛구역질이 날 정도로 어지러움이 계속되었다. 하늘이는 그런 나를 보며 울먹이고 있었다. 일단 하늘이를 진정시켜야 했기에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 역시 처음 겪는 고통에서 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진통제를 먹고 일단 잠에 들어보려 했다. 휴식을 취하면 조금 더 나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밤새 잠에 깊이 들 수 없었다.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고통에 온몸이 저려오는 듯했다. 그러한 나를 보며 하늘이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일단 우리가 있는 곳에서 최대한 큰길 쪽으로 나가기로 했다. 다행히 어제보다 조금은 괜찮아진 것 같았다. 우리는 텐트와 짐을 정리하고 임도를 따라 큰길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혹시 도중에 내려오는 차를 만나면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고 있을 때 큰 차 두대가 우리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하늘이는 손을 흔들어 도움을 요청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PCT를 걷고 있는데요. 지금 남편의 상태가 좋지 않아 마을로 가려고 하는데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차에 타고 있던 아저씨는 흔쾌히 차에 타라며 우리를 태워주셨다. 우리는 일단 스노콜미 패스라고 하는 곳에 있는 알파인 클럽에 가기로 했다. 그곳은 하이커들을 위해 무료로 개방해주는 시설이 있었는데 그곳에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알파인 클럽 건물에 도착한 뒤 하늘이는 매니저 아저씨에게 우리의 상황에 대해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아저씨는 아무래도 말벌에 의해 쇼크가 온 것 같다며 우리를 소방서에 데려다주신다고 했다. 나는 너무 신세를 지는 것 같아 죄송했지만 그래도 위험한 순간은 면해야 했기에 매니저 아저씨의 차를 타고 근처에 위치한 소방서로 향했다.
"이 친구가 말벌에 쏘인 것 같아요.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소방서에 도착한 아저씨는 소방서 입구에 만난 소방관에게 나의 상태를 보이며 도움을 요청했다. 나를 살펴본 소방관은 조금 위험한 상태일 수도 있다며 일단 구급차에 태워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나는 소방관과 구급대원들의 도움으로 구급차에 올라탔고 말벌 쇼크에 대한 응급조치와 간단한 검사들을 받았다.
"일단 호흡이 정상이니 위험한 순간은 면한 것 같아요. 그래도 아직 알레르기 반응이 심하니 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한참 동안 나의 혈압과 맥박 그리고 호흡을 검사한 구급대원은 만약을 대비해 병원으로 데려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물론 병원에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외국에서 병원에 간다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일까? 그것도 병원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에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 응급실에서 검사와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이 가난한 여행자에게 얼마나 두려운 결과로 나올지 알고 있기에 섣불리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늘이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건강이 더욱 중요하다며 그런 것은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병원에 가자고 했다.
결국 나의 동의를 얻은 구급대원은 구급차를 몰아 근처에 위치한 큰 병원으로 나를 옮겼고 그렇게 나는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게 되었다. 응급실 의사는 나를 보고 정말 위험할 뻔했다며 다행이라고 했다. 말벌에 의한 알레르기성 쇼크는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심하게 나타나면 온몸이 붇고 혈압을 상승시켜 사망에 까지 이를 수 있는 위험한 현상이라고 설명을 했다. 특히 기관지나 호흡기 쪽에 손상이 가면 숨을 쉬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의사는 몇 가지 검사 후 쇼크를 진정시키는 약물을 투여한 후 일주일 정도 있으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만약 쇼크가 가라앉기 전 다시 말벌에 물려 쇼크가 온다면 정말 위험할 수 있으니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앞으로 알레르기성 쇼크 질환이 나타날 수 있으니 야외활동을 할 때 쇼크를 진정시킬 수 있는 자가형 응급처치 주사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했다. 에피펜이라고 불리는 주사인데 말벌에 쏘여 알레르기성 쇼크의 징조가 보인다면 자신의 허벅지에 직접 주사를 하라고 했다. 하지만 이 주사는 응급처치 용도일 뿐이며 주사를 놓는다고 치유가 바로 되는 것은 아니니 주사를 놓은 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또 한 번 죽음의 위기를 벗어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