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희종 Nov 17. 2019

갈증

위험한 신혼여행


한 낮 온도가 40도를 웃도는 뉴멕시코 사막 구간을 걷고 있다. 걸으면 걸을수록 온몸의 수분이 바짝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이 구간은 다른 사막과는 다르게 2,000m를 넘는 산들을 따라 푸르른 숲이 우거져 있다. 그래서 하이 데저트(High Desert)라고 불린다.

‘이렇게 푸르른데 왜 사막이지? 물 하나 흐르지 않는데 저 나무들은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있지?’


이 길을 걸으며 수없이 던져본 질문 중 하나이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녹음을 유지한 체 잘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가 마실 물 한 모금 그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었다. 하루 종일 걸어도 우리가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은 소들을 먹이기 위해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물 웅덩이나 여물통에 고인 물뿐이었다. 소들이 목을 축이고 몸을 담가가며 사막의 열기를 식히는 그곳, 언제부터 고여있었는지 궁금하지만 녹차라떼보다 혹은 초콜릿 우유보다 더 진한 색을 뗘 무엇을 궁금해해야 할지 잊게 만드는 그곳. 고여있는 물 앞에서 수십 번 수백 번 마실까 말까 고민하지만 갈증을 이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물을 마셔야 하는 순간이 더 많았다. 그럴 때마다 원효대사가 마셨다는 해골물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오후가 되면 가끔 비가 내리긴 하지만 우리나라 제주도와 같이 화산지형이라 빗물이 모두 땅 속으로 스며들어 땅 위로 흐르는 물을 만날 수가 없었다. 뉴멕시코로 들어선 이래 흐르는 물을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을까? 4일째 사막을 걷고 있지만 아직도 마을을 만나려면 적어도 4일은 더 걸어야 했다. 일주일 치 식량을 챙겼지만 배낭 안엔 아직 일주일 치 식량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더위로 인해 입맛을 잃어버린 것이다. 40km를 넘게 걸었지만 물 한번 만나지 못했다. 하이킹 시즌이었다면 트레일 엔젤이 두고 간 물을 만날 수 있었겠지만 지금 가장 뜨거운 한 여름, 이 길을 걷는 사람은 아마 우리 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결국 500ml의 물이 남았다. 아직 10km는 더 가야 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그곳에 물이 있을지 확실치 않다는 것이었다. 하늘이는 점점 더 힘들어했다. 나도 지쳐가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을 했다. ‘만약 물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가장 가까운 도로까지 가려면 적어도 하루를 걸어 나가야 했다. 해가 조금씩 저물기 시작하는 시간,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깊은 산속의 고요함을 깨는 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차 한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는 손을 흔들어 차를 세웠다.

“혹시 남는 물 있나요?” 


나는 앞뒤 말을 생략한 체 이렇게 물었다. 차를 타고 있던 남자는 잠깐 의아해한 후 곧 차 안을 살핀 뒤 먹다만 물 한 통을 건네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것밖에 안 남았는데 이거라도 괜찮을까?”

우리는 그 물통을 건네받았다. 남자는 사냥을 하러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같아 보였다. 


“혹시 마을로 내려가시나요? 혹시 그렇다면 저희 좀 태워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우리의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조심스레 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마을까지 태워다 줄게요!”

그렇게 우리는 기적적으로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마을에서 몸과 마음을 다시 정비한 뒤 트레일로 돌아가 마지막 남은 뉴멕시코 구간을 끝내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전 11화 말벌 쇼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