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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종 Nov 17. 2019

the great honeymoon

위험한 신혼여행

우리 결혼하자!


 인연에서 연인이 된 지 3일 후, 나는 다시 길을 떠나기 위해 미국으로 왔고 CDT를 걷기 시작했다. 그녀와 나와의 거리는 약 10,000km 우리의 장거리 연애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행복은 이제 길을 걷거나 여행하는 것이 아닌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서로의 상황을 존중하기에 지금 당장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우리는 조금은 유치하지만 따뜻한 손편지라는 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사실 내가 여행하던 CDT란 곳은 해발 4,000m가 넘는 산들을 따라 걷는 트레일이라 통신환경이 수월하지 않은 편이었다. 마을에서 침낭과 텐트 등 숙박 장비와 4~5일 치의 물과 식량을 챙겨 수십 개의 산을 넘어 다음 마을로 돌아갔을 때야 하늘이와 연락이 닿을 수 있는 그런 환경이었다.


하늘이는 연락이 잘 되지 않는 나를 위해 하루하루 자신의 일과를 한 장의 종이에 빼곡히 적기 시작했고 그 편지를 하나하나 사진으로 찍어 나에게 보내 놓았다. 그렇게 4~5일이 지난 후 내가 다음 마을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편지를 받아보는 기쁨은 마치 예전 군대에서 기다리던 편지를 받는 것과 같았고 그만큼 우리의 감정은 좀 더 애틋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 달이 흐르고 하늘이는 여름휴가를 맞춰 내가 있는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약 열흘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더욱더 진실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미국 본토에서 가장 높은 마운트 휘트니에 오르기로 했다. 내가 PCT를 걸을 때 이 산을 오르며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올라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드디어 그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자정에 트레일 헤드에서 출발한 우리는 산 정상에서 일출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진 않았고 매서운 추위와 바람으로 우리의 속도는 점점 더 느려져만 갔다. 결국 중턱 정도에 올랐을 때 저 멀리서 따스한 태양이 우리를 감싸 오기 시작했다. 비록 정상에서의 일출은 아니었지만 그것으로도 우리에겐 충분했다.


일출을 맞이한 후 우리는 조금 더 힘을 내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정상 한편에 앉아 겹겹이 쌓여있는 수많은 산들을 바라보며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운명의 순간이 다가왔다.


"하늘아, 나와 평생 함께 해줄래? 나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내 삶의 목표가 되었는데 지금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너 인 것 같아. 평생 너와 이 행복을 함께하고 싶어."


나는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하늘이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정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결혼에 대해 생각지도 않았던 나였지만 그 순간만큼 진실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말하고 난 후 하늘이의 입이 떼지는 순간을 기다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엄청 길게 느껴지는 듯했다.


"그래, 나도 오빠와 함께 하면 행복할 것 같아."


그렇게 우리는 인연에서 연인으로 그리고 드디어 부부가 되었다. 결혼식 보단 결혼생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우리였기에 우리는 휘트니 정상에서 우리만의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비록 하객은 그때 산을 함께 올랐던 몇몇 친구가 전부였지만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산에서 내려와 큰 도시로 넘어가 결혼반지 대신 우리 몸에 증표를 새기기로 했다. 그래서 나의 오른쪽 팔등에 그녀의 이름과 생일, 그녀의 왼쪽 팔등에 나의 이름과 생일을 결혼반지 대신 새겼다. 누군가 후회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 모든 상황을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어서 후회는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신혼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며칠 뒤 하늘이는 그녀의 생활이 있기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하늘이에게 말했다.


"하늘아, 나를 지금 행복하게 하는 것은 너와 함께 있는 거야. 그리고 너와 함께 있는 방법은 내가 네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네가 내가 있는 곳으로 다시 와 함께 여행하는 거야. 나는 그 어떤 선택도 괜찮으니까 잘 생각해서 나에게 말해죠. 그 결정에 따르도록 할게."


우리는 잠시 이별을 했다. 하늘이는 한국에 돌아가 오랫동안 고심을 했고 결국 나와 함께 다시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두 달 뒤 우리는 다시 미국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위대한 신혼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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