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굴로, 몸으로 세차게 휘몰아치는 눈송이들을 거슬러 그녀는 계속 걸었다.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일까, 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 - 「흰」, 한강 저, 2016, 눈보라(64p)
한강 작가는 「흰」이란 작품에서 눈보라를 공감각적으로, 가슴 서늘하게 표현했다. 나는 ‘차갑다’에서 생각이 이어졌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작품에선 친구인 경하와 인선 그리고 제주4.3항쟁 당시 가족의 시신을 찾는 인선의 어머니 정심의 이야기 속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죽는다는 건 차가워지는 것. 얼굴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것’.
작년 남동생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면서 뺨에 키스할 때 사람의 몸이 이리도 차가울 수 있구나 처음 느꼈다. 내 눈물로 네 몸을, 네 얼굴을 조금이라도 따스하게 만들 수 있다면...
회사나 이 사회는 꼭 눈보라와 같은 자연이나 죽음으로만 차가워지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없다면, 대의와 신바람 나는 조직문화보다 사감이나 사적 욕망, 권위를 최우선으로 앞세운다면 그 조직이나 세상은 이미 얼어붙은 냉기와 두려움의 눈빛들로만 가득 찰 것이다.
그렇지만차가움은 차가움에서 그치지 않는다. 남동생의 정신과 몸을 나누어 빼닮은 아들이 따스함을 이어갈 것이고 누나의 마음속에도 늘 뜨겁게 살아있듯이,
차가운 조직이나 사회 속에서도 희망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서로 응원한다면 그 응원은 용기를 낳고, 용기는 변화를 낳을 것이며 그 변화는 결국 모두의 따스함으로 이어질 것이다.
한강 작가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화두, ‘사랑’은 차가움을 넘어서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따스한 배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