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나무 / 홍이자님
한겨울 아랫목에 아이들 귤 까먹는 소리
아궁이에 목욕물이 설설 끓는 소리
큰아이 작은아이 딱지 치는 소리
허스키 누나 목소리 노래도 잘하네
어느 날 딸아이 얼굴에 노란 꽃 피었네
홍소아과 원장샘 물으시네
애가 귤을 잘 먹나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차차 없어집니다
돌아오는 길 깡충대는 딸아이
세상에서 제일 큰 행복나무가
내 가슴에서 자라고 있네
지금도 홍소아과 그곳에 있을까
엄마가 최근 부쩍 과거의 추억 속에 더 빠져 계신다. 내가 사는 집 근처로 못 모시고 와서 그런가 자책감마저 든다. 현재의 추억을 더 많이 쌓아드리지 못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암튼 위 엄마 시에도 있듯이 귤을 많이 먹어서 얼굴에 노란 꽃이 핀 일이 나도 생각난다.
무척 어릴 적인데 그 병원 의사 선생님이 내 얼굴을 보며 "너 귤 많이 먹었구나~!" 하시는 바람에 무언가 죄를 지어 들킨 것처럼 속으로 매우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하긴 손님이 선물로 가져오신 귤 한 상자를 어르신들이 말씀 나누시는 동안 거실에 털퍼덕 주저앉아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엄청 먹었으니 할 말은 없다.
최근 소확행을 지나 #아보하, '아주 보통의 하루'가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트렌드 코리아 2026). 자고 일어나기 무섭게 얼마나 사건사고가 많으면 그럴까. 불확실한 위험사회, 위험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아보하'가 뭐가 더 있을까 자주 생각하기로 했다.
마당에서 그네를 타며 외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던 일, 남동생들과 눈사람을 만들던 일, 짝사랑하던 성당 오빠를 우연히 만났는데 환상이 와장창 깨졌던 일(아보하 맞나?), 환상적인 엄마표 김밥, 딸들의 미소, 상대방의 차분한 배려, 가끔 내게 허락해 주는 떡볶이/아이스크림, 심장을 쿵 울리는 문장이나 음악 등등.
자그마한 아보하들이 나뭇잎처럼 무성하게 매달려 큰 행복나무가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큰 행복나무가 나를 기다리는 게 아닐 게다. 오늘도 나는 아직 자라고 있는 행복나무에 아보하 나뭇잎 한 장 더 매달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