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희소성을 가진 제품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같은 품질의 제품인데도 한정으로 판매하는 제품이 더 좋을 거라는 선입견에 사로 잡힌다. 그래서 시장의 판매자들은 이와 같은 원리를 전략적으로 이용하여 희소성을 최대한 부각한다. 그들은 한정된 수량만 판매하는 마케팅 정책에 고급화를 접목하여 소비자의 과시욕구를 자극한다. 희소성은 인간의 물질적 욕구에 비하여 그 충족 수단이 질적ㆍ양적으로 제한되어 있거나 부족한 상태를 말한다. 쉽게 말해 어떤 서비스나 물건을 가지고 싶어도 구하기 어려운 것을 말한다. 그러나 흔하면 더 이상 귀하지 않다. 물이나 공기처럼 우리 주변에 흔한 것은 덜 중요하게 인식되며 유명 축구 선수의 사인을 힘들이지 않고 구할 수 있는 시점부터 사인의 가치는 현저히 떨어진다. 반대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보석이라도 그것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보석은 희소성이 없다.
몇 년 전 일인데도 어느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만약 당신이 ‘에반’하면 연상되는 단어가 ‘터닝 메카드’라면 ‘변신 로봇 장난감 품절 대란’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이 장난감은 갑작스러운 쏠림현상 때문에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했고 이로 인해 대형마트와 온오프라인 판매점은 품귀현상을 피하지 못했다. ‘블루 에반’은 아예 웃돈을 주어도 구하기 어려웠다. 변신 로봇 장난감은 TV를 통해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특히 6세에서 12세 남자아이들의 소유 욕구를 자극해 경쟁심리를 부추겼다. 친구들이 다 가지고 있다고 울며 보채는 아이들 때문에 부모들은 골치가 아팠으며 항상 소량으로 판매점에 제품이 입고가 되는 바람에 장난감 전문점과 대형마트에 전화를 돌리는 것이 당시 부모들의 일상이었다.
그때 나 역시 아들이 터닝메카드와 사랑에 빠져 대형마트를 전전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아들이 변신 로봇 장난감을 보며 환호하고 열광하는 모습에 덩달아 나 또한 이성을 잃었다. 긴급으로 몇 시에 제품이 풀린다는 정보가 입수되면 구입 번호표를 받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섰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장면이 있다. 어느 날 나는 여느 때처럼 대형마트에서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변신 로봇 장난감을 잔뜩 담은 쇼핑 카트가 들들 거리며 굴러오는 그 순간 나를 포함해 기다리던 모든 사람들이 일시에 환호성을 질렀다. 유명가수를 열광하는 십 대 청소년들처럼 우리는 단체로 눈이 멀었다.
아들은 리액션 천재다. 나의 말이나 행동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 아들의 반응이 재미있어 나는 가끔 아들에게 엉뚱한 장난을 치며 논다. 하루는 터닝메카드를 어렵게 구해 그냥 주기 뭐해서 아내와 작전을 짰다. 보통 누군가가 작전에 투입되면 나머지 한 명은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촬영한다. 영상으로 남기면 두고두고 볼 수 있어 아주 좋다. 아들에게 소원 기도를 하면 하늘에서 왠지 변신 로봇 장난감이 떨어질 것 같다고 얘기를 해주었다. 나는 아들에게 방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한번 도전해보라고 권했다. 아들은 미심쩍어하면서도 변신 장난감이 너무 가지고 싶어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아들 : "터닝메카드가 가지고 싶어요. 배틀 놀이를 할 때 아빠도 필요하고요 엄마도 필요합니다. 하늘에서 터닝메카드가 떨어지게 해 주세요! 제발요! 음, 왜 안 떨어지지?"
나 : "잠깐 천장에 붙었나? 아, 눈을 감고 빌어야지. 목소리도 크게 하고! 다시 한번 해봐!"
아들은 다시 한번 소원을 빌었다. 그렇게 총 3번을 빌었다. 아들의 소원 빌기가 끝나려고 하는 찰나에 나는 조용히 아들 옆에 가서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새로운 터닝메카드를 조심히 놓아두었다. 두리번거리던 아들이 변신 로봇 장난감을 발견하고는 눈이 휘둥그렇게 되었다. 아들은 꿈속에서 깨어나기 위한 것 마냥 자신의 볼을 연신 두 손으로 두드렸다. 입 꼬리는 점점 올라가고 목소리는 하이톤이 되었다. 아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쳤고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이제 변신 장난감은 먼지에 덮인 채 거실 서랍장 속에서 방치되어 굴러다닌다. 일부 변신 장난감은 고장이 났다. 중고로 되팔까 고민도 해봤지만 아들과 우리 가족의 추억이 듬뿍 담겨있기에 소중히 간직하기로 하였다. 아들이 커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때 터닝메카드를 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지구에 매장되어 있는 천연자원은 유한하고 인간과 기계는 수명이 짧다. 시간과 돈은 무한대로 쓸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유한함을 인식하고 배워야 한다.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돈의 개념과 역할, 소중함을 아이들에게 일깨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초등학교에 입학해 용돈을 받는 시기가 되면 아이에게 용돈 교육은 필수이다. 부모가 함부로 아이에게 돈을 맡기는 것은 무책임하다. 부모는 자녀가 충동적으로 돈을 쓰는 것을 제어하고 계획적으로 지출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한 용돈의 일부분을 즐겁게 저축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도와줘야 된다. 용돈을 처음 시작할 때는 백 원, 오백 원, 천 원짜리를 골고루 주는 것이 좋다. 아이의 생활패턴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지만 보통은 또래 아이들이 받는 것만큼 주면 된다. 카드처럼 사용내역이 남는 경우가 아닌 현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니 용돈 기입장을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많은 사람들은 돈을 모으고 소비하는 계획보다 오히려 여행 계획을 더 철저히 짠다. 어릴 때부터 돈을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나중에 수입이 많아졌을 경우에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 돈이 많으면 사람을 망치고 근심과 걱정이 많아진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적절히 막을 수 있다. 나는 항상 아들에게 쓸데없는 곳에 헛돈을 쓰지 말라고 강조해 왔다. 자칫 돈을 낭비하면 필요할 때 쓸 돈이 없어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요즘 돈과 시간을 시나브로 허비하면서 아들에게 반면교사가 되었다. 기와 한 장 아끼다가 대들보 썩히는 경우가 허다한데 나는 영리하게 소비한다고 애를 쓰다 결국 웃돈을 더 쓴 꼴이 되어 버렸다.
상품평이 좋아서 구입한 유선 헤드셋은 마이크만 정상 작동하고 한쪽 소리가 어느 순간부터 들리지 않으며, 막상 필요할 것 같아 디지털 주방저울을 샀는데 주방에 놓을 자리가 부족해 구석 차지다. 또한 가성비 좋은 영양제를 해외 직구로 사놓고 먹지도 않아 유통기한을 넘겨버리고, 너무 저렴하게 장만한 전기모기채는 구입한 지 한 달 만에 불량품 신세다. 외출한다고 집안의 조명과 와이파이 공유기 등 전원을 다 끄고 나갔다 왔는데 정작 안방 화장실 환풍기는 몇 시간 동안 켜져 있고, 통행료 아낀 다고 길을 우회를 했다가 교통 정체 구간에 걸려 기름값만 더 날렸다. 또한 6개월 선불로 결제해서 할인받은 헬스장은 드문드문 가서 트레이너가 바뀐 것도 모르고, 호기롭게 다이어트 좀 해본다고 자전거 스피닝 수업을 받았다가 하루 만에 허리가 아파서 자체 잠정 중단했다.
그래도 괜스레 마음이 '헛헛하면 쓰는 돈'이 헛돈이라고 하지 않나? 오늘도 나와 우리 가족은 일명 소확행이라고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한다.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된 유료 뮤직 플랫폼에서 아들이 고른 시끄러운 음악을 끝까지 함께 듣고, 아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디저트를 배달 애플리케이션에서 흔쾌히 배달비를 내고 주문한다. 또한 기다리면 무료로 볼 수 있는 웹툰에 지칠 때쯤 눈치 안 보고 나를 위해 유료 결제를 하기도 한다. 적은 돈이 나의 허전한 마음을 쓰다듬어 줄 때가 아주 많다. 오늘따라 유난히 변신 장난감이 가지고 싶다던 아들의 그때 그 모습이 많이 그립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 있는 아들에게 오늘만이라도 아낌없이 헛돈을 가치 있게 쓰는 것으로 대리 만족을 해야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