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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크 Apr 05. 2021

상처투성이

봄이 되면 사무실 앞 화단에 있는 살구나무 1호에서 환하게 살구꽃이 핀다. 부드러운 봄바람에 살구꽃 향기가 넘실대고 진한 체리핑크색의 살구꽃이 유난히 아름답다. 동시에 옆에 서 있던 산수유나무 2호도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며 맵시를 자랑한다. 나무 1호와 2호가 경쟁하듯 만개하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아름답게 핀 꽃을 감상하며 사진도 찍고 봄기운을 만끽한다. 어느덧 겨울이 가고 봄은 꽃과 함께 따라왔다. 사무실 안에는 아내와 함께 한 지 오래된 인도 고무나무가 있다. 대략 10년 전에 아내가 화분을 파는 트럭에서 구입했는데 당시에는 작은 화분에 불과했지만 고무나무는 여러 해 동안 꾸준히 자라고 분갈이도 하면서 이제 성인만큼 키가 크다.



고무나무는 실내의 오염물질을 제거해 공기를 정화하는데 탁월하다고 한다. 가끔씩 젖은 행주로 잎을 닦아줘야 되는데 이유는 잎에 먼지가 쌓이면 식물의 기공을 막고 공기정화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고무나무 화분의 흙을 손으로 만져서 수분이 느껴지지 않으면 물을 듬뿍 주면 된다. 고무나무는 빛을 좋아하는 식물이기 때문에 햇빛을 많이 보게 해 주고 되도록 직사광선은 피하는 게 좋다. 열대지방 식물로서 겨울철 실내온도가 추운 베란다보다는 거실에 두는 것을 권한다. 고무나무는 관리가 편하고 키우기 쉬워서 집들이 선물로 인기가 많고 초보자용으로 안성맞춤이다. 식물이건 사람이건 가만히 놔두어도 자기 주도적으로 성장을 하면 좋은데 결국 손이 간 만큼 온전해진다.



실내에서 키우는 식물은 공기를 깨끗하게 하고 천연 가습기 역할을 한다. 또한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 화려한 꽃을 보고 있으면 눈이 즐겁고 행복감에 취하며 건강한 초록 식물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그러나 자녀를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기 어렵듯 식물을 키우는 일은 순조롭지 않다. 식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노동, 시간, 자본이 많이 필요하다. 식물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하면 보통은 좋은 결과가 따라오지만 때로는 인내와 전문 지식이 부족해서 식물을 살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꾸준히 관심을 두는 것이 그 어떤 요소보다 제일 중요하다. 방치를 하는 순간 반려식물과의 이별은 시작된다. 너무 귀해서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하찮고 볼품없어도 소중한 반려를 대하듯 하면 그만큼 보배롭게 되는 것이다.




아내는 어릴 때부터 식물을 많이 접하고 자연 친화적인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식물에 대한 지식도 많고 애정도 깊다. 아내는 바람이 많이 부는 바다보다는 녹음이 짙은 산을 더 좋아하고 여행을 가도 일부러 시간을 내서 자연 휴양림을 방문한다. 울창한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좋은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지친 심신을 달래고 삶의 균형감을 다시 회복한다. 평소 아내는 자신의 식물의 상태를 자주 체크한다. 물이 많아서 잎의 테두리가 갈색으로 변했는지, 뿌리가 썩었는지 확인하고 반대로 물이 부족해서 식물의 잎이 쪼그라들었는지 관찰한다. 또한 영양분이 부족한지, 병충해에 노출이 되었는지 주의 깊게 살핀다. 날씨가 좋을 때는 화분의 위치를 직접 옮겨서 햇빛에 노출시키고 여건이 안되면 LED 조명 밑에 놓아둬서 태양의 역할을 대체하게 한다. 무엇보다 아내는 통풍에 신경을 쓰는데 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면 적절한 습도가 유지가 되고 식물의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반면 나는 상대적으로 식물을 키우고 사랑을 주는 데에 관심이 덜 하다. 그러다 보니 사무실 안에 있는 화분이나 야외 화단에 있는 식물들을 가꾸고 챙기는 것은 항상 아내의 몫이다. 대신 나는 아내의 직접적인 요청이 있을 때마다 흔쾌히 화분 물받이를 씻거나 교체하고 화단에 무성한 잡초를 뽑는다. 또한 야외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해서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호스를 사용한 후 정리하는 일을 혼자 담당한다. 아내와 달리 나는 식물과 밀접한 관계에 있지도 않고 식물에 박식하지 않다. 그러나 식물이 주는 큰 혜택을 알기 때문에 나는 단지 나의 작은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작년 늦가을 토요일 어느 날, 아내가 차일피일 미루던 일을 말도 없이 혼자 처리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아내는 사무실에 일이 있어 가던 중 신호 대기에 걸렸다. 때마침 횡단보도 맞은편에 있던 조경수 판매 농원이 눈에 들어왔고 아내는 계획에 없던 방문을 하게 되었다. 아내는 지난여름부터 코너 작은 화단에 울타리용 나무를 심고 싶어 했다. 무성했던 잡초를 내가 싹 다 뽑은 이후로 코너 화단은 텅 비어 황량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평소 사무실 화단의 주변을 청소하는 것은 나의 담당이었는데 늦가을이라 낙엽도 계속 떨어지고 바람까지 불어 화단 주위는 자주 청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쓰레기와 낙엽으로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화단의 이러한 상태가 내내 마음에 걸렸던 아내가 이참에 나무도 심고 화단도 말끔히 정리하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긴 시간 고민할 것 없이 아내는 코너 작은 화단의 울타리용 나무로 황금측백나무를 선택했다. 구입 후 지체 없이 트럭에 묘목들을 모두 싣고 식재해주시는 분과 함께 바로 사무실로 이동했다. 구멍을 파서 묘목의 뿌리를 똑바로 세우고 흙을 채운 후 땅을 밟아주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나무를 심는 일은 금세 끝났다. 코너 화단이 작기도 했지만 숙련자의 솜씨가 빨랐다. 작업해주시는 분이 추가적으로 살구나무와 산수유나무도 단정히 전지를 해주셨다. 마지막으로 주변을 정리하고 쌓아놓은 쓰레기와 낙엽들까지 다 치우고 나니 코너 화단은 황금측백나무 사이로 아담한 정취를 풍겼다.



황금색의 화려한 잎과 그윽한 향기를 지닌 황금측백나무는 울타리 주변에 심는 나무로 많이 알려져 있다. 주로 봄이나 가을에 식재하며 산성 토양에서도 잘 견디고 자라는 속도가 제법 빠르다. 또한 밑동부터 여러 개의 작은 줄기가 나와 수직으로 올라가서 동근 모양을 형성한다. 처음 식재할 때 물을 듬뿍 주고 이후 흙이 마르지 않는 이상 자주 줄 필요가 없다. 아내는 황금측백나무 잎사귀가 가운데에 밀집되어 있어 물을 주고 나면 풍성한 머리 부분을 살살 어루만져 나무를 기분 좋게 해 주라고 알려준다. 또한 나에게 아기를 다루듯 안개분사로 조심해서 살살 물을 주라고 거듭 부탁한다. 물을 머금은 나무의 냄새와 향긋한 흙냄새가 콧속 깊이 파고들면 잠시나마 자연과 동화됨을 느낀다. 아내의 식물 사랑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꽃이나 나무를 키워보라! 당신의 삶이 더욱 아름답게 바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무언가를 키운다는 것은 정성과 노력이 그만큼 많이 들어간다. 분명 힘들고 어려운 과정도 있지만 정성이 들어가면 자기도 모르게 애착이 생기고 숨어있던 열정이 되살아난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과 만족감을 한번 맛보면 몸이 귀찮아도 반자동으로 다시 움직인다. 황무지도 땀을 흘리면 옥토로 바뀌고 농부들의 땀과 노력은 쌀 한 톨에도 스며든다. 정성이 참으로 가상하면 식물도 감동한다.



과연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악기를 배우면서 다른 사람을 도우면 될까? 아니면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때로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면 되는 것일까? 밤낮으로 일만 하면서 평생을 살 수 없고 반면에 일을 안 하면 심심해서 못 산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 유기적 관계를 맺고 살수 밖에 없다. 따라서 혼자 있으면 외롭고 같이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무엇이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가'를 질문하기보다는 '무엇이 내 삶을 풍성하게 하는데 방해를 하는가'를 고심해 볼 필요가 있다. 오해, 편견, 거절, 이기심 등 온갖 방해 요소들은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이러한 요소들을 하나씩 배제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A4 용지 한 장에 양면 인쇄를 해본 적이 있는가? 종이가 얇을수록 인쇄의 속도는 빠르나 앞장과 뒷장의 글씨가 선명하게 비추고 종이가 늘어진다. 이로 인해 예민한 사람들은 보관의 편의성을 위해 좀 더 두꺼운 용지를 사용한다. 하지만 한쪽면만 집중해서 읽다 보면 어느새 양면으로 인쇄가 된 것을 까먹을 때가 있다. 고통 뒤에 즐거움이 있고 아름다운 해당화가 가시를 가진 것처럼 삶의 모든 여정에는 좋고 나쁨의 양면성이 존재한다. 우리 인생의 날씨가 안과 밖의 구별이 어려운 뫼비우스 띠처럼 오락가락할 때도 많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60g짜리 A4용지 한 장의 무게가 아닌 100g짜리로 두툼하게 만들어 보자. 마음의 두께가 두꺼우면 상처에 덜 민감하고 회복도 더 빠르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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