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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크 Apr 09. 2021

무한한 창의력

가위로 대파를 잘라 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일부 서양인들에게 창의적인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다. 젓가락질을 하면서 회를 먹는 서양인이 한국인에게 이색적으로 보이듯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위로 대파를 자르는 모습은 그들에게 획기적이며 번뜩여 보인다. 우리는 평소 야채를 다듬고 온갖 음식 재료들을 자를 때 가위를 칼만큼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일부 서양인들은 이런 방법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아 그들의 눈에는 마치 우리가 에디슨 같은 발명가처럼 보일 수 있다. 만약 그들이 아이디어 상품 중 하나인 여러 개의 칼날을 가진 가위를 봤다면 판타스틱을 외치며 환호성을 질렀을 것이다.



이러한 창의력은 책을 많이 읽으면 생길까? 아니면 사고의 유연성을 가지고 모든 것에 질문하기를 반복하면 터득할까? 창의력은 사전 지식이나 편견 없이 어떤 문제를 보고 새롭고 다르게 이해하며 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서를 찾는 능력을 말한다. 보편적인 인간의 속성이며 특별한 능력은 아니고 단순히 좋은 아이디어를 지칭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모든 기업이 창의력을 갖춘 최고급 인재를 원하는데 이러한 창의력은 왜 필요한 것일까? 어떤 문제에 대해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해결방법이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은 그 문제에 모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순은 창과 방패를 말하며 어떤 사실의 앞뒤가 이치상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 초나라의 상인이 창과 방패를 팔면서 창은 어떠한 방패도 뚫을 수 있고 방패는 어떠한 창도 막을 수 있다는 말에서 그 뜻이 유래하였다. 이처럼 어떤 문제에 모순이 존재해서 그 누구도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새로운 시각과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초등학교를 입학 후 아들의 첫 방과 후 수업은 원어민 영어 과목이었다. 당시 경쟁률이 높아서 안 될 줄 알았는데 운 좋게 추첨에 당첨이 되어 수강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인기 있는 과목은 선착순이 아니라 추첨제였고 원했던 과목이 추첨에서 떨어지면 아들의 하루 스케줄이 꼬이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었다. 이후 아들은 상급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독서논술, 카이로봇, 생명 실험과학, 탁구 등 다양한 수업을 인원 미달과 추첨의 방법을 통해 들었다. 그러나 아들은 그렇게 많은 방과 후 수업 과목들 중에 단 한 번도 컴퓨터 수업을 수강한 적이 없다. 어릴 때부터 평소에 게임을 하지 않아서 컴퓨터를 놀잇감이 아닌 학습의 도구로 인식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은 컴퓨터에 그다지 호기심이 많지 않았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컴퓨터 교육을 배워본 적이 없어서 아들은 저학년 때까지 문서작성과 엑셀은 고사하고 한글자판, 기본적인 키보드와 마우스 사용법도 잘 몰랐다. 굳이 내가 아들을 앉혀 놓고 가르치지 않은 이유는 추수 때가 되면 이삭이 샛노래지듯 나는 아들이 자연스럽게 현대 문명의 이기와 친해지기를 바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들에게 자신만의 온라인 수업용 신형 노트북이 생기면서 아들의 상황이 변했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계속 듣다 보니 노트북의 사용시간이 현저히 늘어났고 그전까지 컴퓨터를 다루는 것에 익숙지 않았던 아들은 노트북 사용 방법을 경험적으로 빠르게 터득하였다. 아빠의 컴퓨터가 아니라 자신만의 노트북을 가지게 되니 더 이상 아빠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자신의 노트북을 가지고 놀았다. 한글과 영문자판 타자연습도 하고 3D 그림판에 들어가 마우스로 그림도 그렸다. 숙제와 시험을 위해 워드프로세서로 문서를 작성하고 편집하다 보니 기본적인 컴퓨터 활용능력이 향상되었고 파워포인트 만드는 법에 관한 무료 강좌를 독학해서 괜찮은 프레젠테이션 발표 자료도 만들었다. 또한 시간이 날 때마다 무료 동영상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동영상을 자르고 붙이고 음악을 넣는 작업을 하더니 이제는 제법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할 줄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아들은 창작의 기쁨을 맛보게 되면서 자신의 작품에 애착을 갖기 시작하였고 다른 사람들이 만든 작품에도 점차 관심을 보였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창작품을 공유하고 싶다는 바람을 강하게 느끼던 중에 학교 선생님이 만든 학습 소통 플랫폼 '패들렛'을 통하여 자신이 찍은 사진을 올리고 짧은 글쓰기도 나누고 동영상, 댓글 등을 공유하며 정보를 나누고 싶던 욕구를 조금씩 해소해 나갔다. 그러다가 아들은 자연스럽게 학교 수업시간에 배웠던 코딩 학습 프로그램인 '스크래치' 홈페이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코딩을 해보겠다는 마음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만든 애니메이션을 보고 게임을 하려고 들어갔던 것 같다. 그렇게 여러 가지 게임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재미도 느끼고 빠져들게 되면서 회원 가입도 하고 고유계정을 만들게 되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스크래치 홈페이지에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의 창작품을 계속 보다 보니 아들은 자신만의 이야기와 게임을 직접 스크래치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스크래치는 미국 MIT가 특별히 8세부터 16세까지의 청소년을 위하여 제작한 교육용 비주얼 프로그래밍 도구다. 어린아이들을 위해서는 스크래치 주니어 버전이 따로 있다. 화면을 보면서 초보 스크래처가 블록을 맞추듯이 하나하나 연결하면 코딩이 완성되는 방식이다. 구현되는 기능은 적으나 C언어, 자바, 파이썬 같은 텍스트 프로그래밍 언어에 비해 어렵지 않고 초보자가 시작하기 좋다. 모니터 화면을 보면서 책과 동영상 강의에 나오는 예제를 따라 하기만 해도 바로 똑같은 결과물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편하다. 마치 컴퓨터에 있는 그림판 프로그램을 실행해서 사람과 강아지를 그린 후에 마우스를 움직이면 강아지가 사람을 쫓아다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생각보다 재미있고 화면상에서 몇 번의 마우스 클릭만으로도 소소한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같은 창작품을 만들고 공유할 수 있다. 이렇게 스크래치를 가지고 놀다 보면 어느 순간 코딩의 개념을 저절로 이해하게 된다.



나는 갑자기 코딩에 흥미가 생긴 아들의 모습에 반신반의했다. 새 책을 사줄까 하다가 잠깐 보다 말까 봐 선뜻 구입하지 못하고 구립도서관에서 스크래치 관련 책을 여러 권 빌려다 주었다. 아들은 공부를 한다기보다 학습용 만화책을 읽듯이 갖고 논다는 개념으로 접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책에 나오는 예제를 차근차근 따라 하고 궁금한 것은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며 때로는 다른 사람을 팔로우하고 좋아요를 누르면서 사람들 간의 교류도 서슴없이 즐겼다. 아들은 이따금 구현하고 싶은 기능이 코딩으로 안 풀릴 때면 의자에 퍼질러 앉은 채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자신의 팔로워가 단 한 사람이라도 늘어나면 바로 기운을 차렸다. 어느 날 자신이 만든 프로젝트가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스크래치 홈페이지 '탐험하기' 메뉴 상단에 뜨면서 팔로워가 급격히 늘어나고 이메일이 평소보다 몇 배나 더 온 적이 있다. 아들은 몹시 기뻐했고 팔로워가 몇 만 명이 된 것보다 증가한 숫자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만족해했다. 이후 빈번하게 댓글을 작성하고 이메일 박스에 메일이 몇 개 왔는지를 날마다 확인하는 것이 아들의 새로운 취미생활이 되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몇 년 전부터 교육업계에 인공지능과 코딩 교육의 열풍이 불어닥쳤다. 창의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을 기를 수 있다는 말에 코딩 교육은 어느새 교육과정의 필수항목이 되어버렸다. 글로벌 시대에 세계 공용어인 영어 학습이 필수였듯이 미래 디지털 시대에 모든 산업이 기계화가 되기 때문에 기계와 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컴퓨터 언어를 배우는 것은 필연적이다. 분명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인간이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지 않아도 코딩 작업을 도와주는 AI 소프트웨어나 시스템이 개발되어 사용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영어 번역기가 출시되었어도 여전히 영어는 국경 없는 시대에 필요한 것처럼 코딩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코딩이란 컴퓨터 언어로써 인간이 기계에게 명령을 내리기 위한 일련의 작업 과정을 말한다. 코딩 교육은 이러한 컴퓨터 언어를 학습하고 기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코딩의 메커니즘을 배우는 것이다. 모든 공부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쉽고 재미있지만 뒤로 갈수록 어려워지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생긴다. 그러나 자주 접하고 고심하다 보면 처음에 우려했던 것보다 능숙하게 코딩을 할 수 있다. 또한 어릴 때부터 코딩을 배우면 사고의 범위가 넓어지고 문제에 대한 다양한 접근방법을 경험할 수 있다. 코딩을 직접 해봐야 컴퓨터적 논리력과 수리력이 좋아진다.



스크래치는 '리믹스' 하는 것을 장려한다. 리믹스는 원작자의 프로젝트를 복사하여 수정할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원작자에게 감사하는 말을 하기만 하면 정당한 리믹스로 간주되고 복사본을 가지고 무엇을 하든지 상관없다. 이렇게 창의성이 추가된 프로젝트는 리믹스의 과정을 끊임없이 겪으며 널리 스크래치 커뮤니티 안에서 퍼지고 자유롭게 공유된다. 참여 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창작물을 공유하지 않으면 꿈, 상상력, 감정은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고 다시 변형되어 재탄생될 수 없다.



갖은양념을 뒤섞어 적절히 버무려도 맛있고 새로운 맛이 창출되듯이 창의력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 안에서 더욱 그 빛을 발한다. 조직생활은 구성원 간에 신뢰, 투명한 소통 및 효율적인 협업이 굉장히 중요하며 모든 업무는 공유를 바탕으로 시작하고 협업을 통하여 시급한 정보가 분별된다. 문제 해결을 위한 창의력이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필요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조직의 성장을 위한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하게 된다. 결국 공동체 안에서 공유가 확산될수록 창의력은 거의 무한대에 가까워진다.



인간은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창작물을 끊임없이 타인과 교류하면서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항상 주어진 환경 속에서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인간의 창의력은 계속 성장하였다. 인간은 타인의 시선을 불편해하면서도 한편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늘 궁금해하였다. 이러한 다방면적 교류가 없었다면 그 어떤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가끔 혼자 멀거니 앉아 딴생각에 빠지고 이렇게 글쓰기를 통해 나의 일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 타인과 공감하는 것을 애타게 갈망하다가 갑자기 몸이 아픈 사람처럼 바로 외면해 버리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나의 여생을 위해서는 그다지 창의력이 필요 없다. 다만 나의 곁에 활력이 넘치는 사람을 두고 싶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작은 힘이 되는 그런 존재가 더욱 필요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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