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이자 한창 연애가 중요하던 시절부터 상담을 배우고 시작했다. 청소년상담사 자격이 있기도 했지만 사실 20대 중반의 나이에는 상담할 수 있는 대상이 주로 나보다 어린 대학생과 청소년이었다. 그렇게 지역 내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본격적으로 청소년상담을 시작했다. 이론적으로도 배웠지만 실제로 상담에 오는 청소년들이 보이는 표면적인 증상, 문제는 대부분 '부모와의 관계' 더 정확히 말하면 '부모의 양육태도'와 관련이 있었다. 얼핏 이건 아이의 기질 때문 아닌가 싶은 문제도 결국 들어가보면 부모의 지분이 적지 않았다.
그런 경험들이 무슨 공식처럼 계속 쌓이고 특히 상담하는 아이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이 쌓이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마음의 화살이 부모를 향했다. 사실 상담에 오는 부모는 그나마 양호했다. 아이가 문제라고 데리고 왔더라도 본인이 직접 나와 얘기할만큼은 의지와 마음이 있는 분이셨으니까. 상담에 오지 않는 부모는 그나마의 여지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삶도 마음도 여유가 없는 분들이었다.
한 번은 이목구비가 참 반듯하고 외모가 준수한 친구가 상담에 왔다. 외모를 굳이 언급한 이유는 그런 얼굴에 생기가 없다 못해 어두컴컴한 그늘이 잔뜩 드리워져 실제로 까맣게 보일 지경이라 이목구비가 잘생긴 건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큰 죄를 지은 얼굴로 내 앞에 앉았다. 실제로 아이는 물건을 슬쩍 하는 일명 도벽행동을 몇 번 했다. 도벽이 그렇듯 정말 필요했거나 가지고 싶어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겨우 얘기하던 아이와의 첫 상담을 마치고 어머님과 만났다. 지치고 피로해보이는 어머님은 공부도 곧잘 해오고 말도 잘 듣던 아들에게 적잖이 충격 받고 실망하신 상태였다. 무엇보다 아들이 뭐가 부족해서 훔치는 행동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첫 상담인만큼 어떤 해결책을 드리기보다 어머님이 보시는 아들에 대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어머님에 대해 차근히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거의 10년 전 일이라 상세한 내용은 기억 나지 않지만 어머님은 상당히 높고 엄격한 기준을 가진 분이셨던 것만은 분명히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단단한 벽과 같은 기준 앞에서 아이가 얼마나 많은 좌절과 무력감을 경험했을지 혼자 짐작했던 것도..
다행히 어머님은 나와의 대화를 통해 본인에 대해서, 본인이 놓치고 있었던 부분들에 대해 알아가셨다. 그간 본인 역시도 자신의 높은 기준에 갇혀 살아오셨기 때문에 사실 보려고만 하면 아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본인이 더 많이 경험한 분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 케이스는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정도로 잘 종결되었다. 그 잘생긴 이목구비의 얼굴이 마지막 회기쯤에는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같은 기관에 있던 선생님들도 그 친구가 올 때쯤이면 '그 잘생긴 친구'냐며 잠깐씩 화장실 가시는 척 나와보실 정도였다ㅋㅋㅋ
부모가 된 지금의 나는... 청소년 상담을 할 때 더 이상 마냥 부모탓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마음껏 화살을 부모에게 돌리기 힘들어졌다. 한 아이를 몸 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건강히 키워내기 위해선 얼마나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 그 과정이 얼마나 매일을 치열하게 노력해야 하는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길을 걸어야만 하는게 부모의 책임인 것은 맞다. 아이의 선택이 아닌 부모의 선택으로 태어난 아이니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완성된 부모가 아니라 아이와 같이 자라기 위해 우리는 애써야 한다.
다만.. '죄 없는 사람만 이 자에게 돌을 던져라!'를 듣고는 조용히 돌아서서 내 길에 집중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나 역시도 이 치열한 성장의 과정에서 그만두고 싶고, 적당히 하고 싶고, 못난대로 살아버리고 싶은 유혹이 매일 매순간 굴뚝 같기에..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