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1월 29일 금요일
몇 개월간의 누적금액이 아니다. 순수하게 이번 달에 들어온 수입만 천 만원을 넘어 천 이백만원 남짓 들어왔다. 평소에는 들어오는 돈에 너무 매이게 될까봐 내가 줄 수 있는 가치에 집중하기 위해 소비만 기록하고 수입은 정해진 날에만 체크하는데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다.
와.. 이대로면 나 진짜 올 해 안에 월 천 찍겠는데?
라고 내심 생각할 정도로 수입이 상승세를 타고 있었던 건 맞지만, 정말로 월 천을 넘겼다는 걸 확인한 오늘의 나는 약간 얼떨떨하다. 그러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인증샷을 찍는다. 그리고 남편 회사 근처 백화점에 가서 남편에게 통장 인증샷과 함께 카톡을 보냈다.
여보, 나 백화점 4층이야. 지금 여기로 나와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백화점 남성패션이 있는 4층으로 올라오는 남편이 보인다. "갑자기 여긴 무슨 일이에요? 그 통장 인증은 누구꺼예요?" "누구긴 누구예요. 내 통장이지! 얼른 여기서 마음에 드는 옷 하나 골라봐요~ 앞으로 나 더 많이, 잘 벌꺼야. 근데 오늘이 상징적인 날이라서 쏘는 거예요. 내일부턴 다시 우리 원래 쓰던대로 쓸거야. 그냥, 오늘 가장 먼저 자기한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서. 고마워요~ 자기 덕분이야." 오늘이 흔치 않은 기회라는 말에 남편은 그제야 매의 눈으로 매장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그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많이 나를 지켜봐주고 응원해주고 때론 날카로운 피드백도 해 주며 기다려온 남편에게 가장 먼저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 나답게 생색을 조금 섞어 전했다.
사실 월 천이라는 표면적인 숫자로 드러나기 전에 내 삶에서는 이미 여러가지 신호가 분명해지고 있었다.
1. 비난에 너무도 예민해서 상대의 실제 의도와 상관 없이 공격으로 느껴지는 자극에 수시로 휘청이며 공격적인 방어모드로 변했다가 후회했던 내가 이제는 대놓고 악의적인 악플이나 적극적인 공격, 훼방에도 꽤 의연해졌다. 오! 악플이라니 이거 성공의 상징 아니야? 이런 사람은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일단 여유 있게 차단 하며 생각해놓고 스스로에게 깜짝 놀라기도 했다. 다만 대처는 이성적으로, 단호하게 하고 있다.
2. 전반적으로 기분 좋은 상태로 살게 되었다. 이 전의 나는 전반적으로 '지친 상태'일 때가 많았다. 불안에, 조바심에, 과도한 계획에 시달리고 지쳐 에너지가 없는 상태로 예민하게 버티다 기절하듯 잠들어버리곤 했지만 이제는 대체로 여유 있는 상태에 있다 보니 아무 일이 없는데 사람들이 "무슨 기분 좋은 일 있으세요?"라고 묻는 일이 많아졌다. 실제로 무슨 대단한 일은 없어도 작은 일에 기분 좋고 행복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감사하려고 굳이 찾고 애쓰지 않아도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자연스러운 감사가 끊임 없이 이어지는 하루가 되었다.
3. 아이들과 남편 포함 주위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봐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이들의 감정 표현, 특히 화와 짜증이 나에겐 너무 크고 공격적인 자극으로 다가오고, 남편의 푸념도 나에 대한 비난과 불만족으로 받아들여 불필요하게 커지는 싸움이 되곤 했던 날들이 까마득하다. 그 때부터 이런 나였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걸 알기에 또 감사하다.
4. 공간, 물건, 돈, 시간, 관계, 마음... 이 모든 것에 대한 관리가 전보다 훨씬 수월해졌다. 20대를 부모님이 해 주신 좋은 자취집에 살면서도 딱히 감흥 없이 취향껏 꾸며본 적은 커녕 우리집에 놀러온 친구가 "이 아파트 단지는 고급진데 너희집만 되게 가난해보여. 너무 더러워서..."라고 할 정도였다(굉장히 솔직했던 친구^^). 공간도 마음과 연결된다는 걸 그 때는 몰랐다. 결혼 하고도 약 10년을 공간에 대해 적당히 무관심하게 지냈다. 청소도 위생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했고, 물건들도 잘 버리지 못했다. 많이 사지도 않는데 잘 버리질 않으니 물건들이 늘어나고 정리는 잘 되지 않아 정리가 중요한 남편은 주기적으로 화를 냈다. 그랬던 나인데 이제는 내가 더 정리에 신경을 쓴다. 내 공간은 심플하지만 내 취향과 의미들로 가득 차 있어서 들어가 앉아 있기만 해도 절로 행복해진다. 나로서 정말 원하는 것, 필요한 것, 우선순위인 것들이 분명하고 명확해지니 모든 관리가 단순해졌다. 같은 원리가 돈, 시간, 관계, 마음에 적용되니 이 전에는 왜 이게 그렇게 힘들고 쫓기며 동동거리게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쉬워졌다.
5. 매일 마음껏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게 되었다. 때로는 그게 나의 가족이기도 하지만 모르는 사람인 경우도 많아졌다. 아끼는 친구에게도 축하의 선물을 보낼 때 자꾸 가격을 보게 되었던 내가 이제는 그 사람에게 장기적으로 정말 도움이 될 수 있는 적절하고 필요한 형태를 고민할 뿐, 금액을 걱정하진 않게 되었다. 이게 지금의 나로서 제일 행복한 변화다. 한 때 월 천을 벌고 싶었던 가장 간절한 이유이기도 했다. 동시에 앞으로 내가 돈을 더 많이 벌고픈 이유이자 강력한 동기이기도 하다.
그냥 이 모든 변화가 어느 날 자연스럽게 월 천 이상이라는 숫자로 나타난 날일 뿐이지만,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남편을 시작으로 감사 표현 릴레이를 시작하는 오늘이 또 감사하다.
*이 글은 24년 11월 29일 금요일의 제 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