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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kerJ May 04. 2022

심리상담사도 정신과에 갑니다 1

첫번째 정신과 방문기




처음으로 정신과에 간 날은 남편과 심하게 다투고 나서 자살충동을 강하게 느끼고 난 다음 날이었다.

아이들의 신생아 시절에도 힘들고 절망스러워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정말로 뛰어내릴까봐 무서웠던 날은 처음이었다.

돌아보면 그 동안에도 진작 병원에 갔어야 했지만 그럴 여력도 없다는 핑계로

어쩐지 내키지 않아 그냥 주저 앉아 우는 걸 택했다.


상담사로서는 내담자가 너무 힘들면 병원에 가는 걸 권유해놓고 정작 내가 힘들 때는 병원에 가는 걸 망설이다니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동시에 병원 가기 전에 드는 망설임과 거부감에 대해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스스로가 무서웠던 밤이 지나고 다음 날 119에 전화하듯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집에서 가장 가깝고 리뷰가 나쁘지 않아 더 알아볼 것도 없이 결정한 것이었는데 동네에서 인기가 많은 곳이었는지 워낙은 예약이 다 차있어서 한 달 후에나 예약이 가능한데 마침 당일에 취소된 건이 있어 예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그래도 내가 살아야됐나보다 싶은 순간이었다.




원에 가서는 몇 가지 체크리스트를 했다. 나에게도 익숙한 문항들이었다.

우울과 불안에 관련된 문항들. 내담자에게 심리검사를 실시하게 해놓고 체크한 결과를 살펴볼 때 봤던 내용들이었다. 막상 내가 그 대상자가 되어 체크하려고 하니 여러마음이 들었다. 체크하며 아 내 상태가 확실히 안좋구나 하고 확실해지니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혼자서 내 상태를 자꾸만 부정하고 내 노력의 부족을 탓하는 시간들이 사실 더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막상 결심하고 병원에 오니 심란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기도 했다.

나로서는 너무도 막막한데 뭐라도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매번 권유만 했던 약들을 내가 직접 먹으면서 어떤지 알게 되면 내담자에게 좀 더 자신있게, 구체적으로 안내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 와중에도 상담자인 내가 있다는게 우습기도 했다. 마음관리가 안되어 정신과에 찾아온 상담자라니. 머리로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당당하게 말하기도 어려웠다. 내 노력이나 능력의 여부와는 무관하다는 것도 알았고 누구나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스스로가 감당이 안될 때가 있다는 것도 알았는데 머리로만 아는 것은 때로 참 무력했다.


다행히 정신과 선생님은 참 친절하고 세심했다. 이래서 이 병원이 인기가 많은가보다 싶었다. 그는 내가 병원에 오게 된 이유에 귀기울여주었으며, 공감해주었고, 안타까워 해주었다.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어도 큰 눈으로 충분하게 마음을 전달했으며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억양으로 조근조근 나긋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약의 효능과 정보에 대해서도 알기 쉽게 설명해주어서 병원에 들어서면서부터 품었던 기대가 조금 더 커질 수 있었다.  


병원에서 나오고 나서는 우습게도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조금 많이 부러워졌다. 공감과 위로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실질적인 약 처방을 해줄 수 있다는게 나보다 힘있게 느껴져서였을까. 나는 때로 약보다 더 효과 있는 '함께함'을 위해 내 온 마음을 집중해야 하는데 그걸 진단과 처방으로 가름할 수 있다는 게 보다 편해보여서였을까. 무튼 나도 (안한 것보다 못한 것에 가깝지만) 심리상담사 말고 정신과 의사할껄..이라는 괜한 아쉬움을 안고 그의 전문성에 기대어보기로 했다.


아쉬웠던 점은 예약이 많이 밀려있어 한 달에 한번씩만 진료를 볼 수 있다는 거였는데, 내가 알기로 대부분 중장기적으로 먹어야 효과가 있는 정신과 약은 초반에 일주일에 한번씩은 만나 약을 조절하는 조정기간을 거쳐야 한다고 알고 있어서 여쭤보니 내가 처방받은 약은 내성이나 후유증이 거의 없는 약이라 괜찮지만 혹시라도 약을 복용하고나서 어딘가 이상이 생기면 점심시간에라도 봐줄테니 연락하고 오라고 했다.





약을 먹어서 괜찮아졌느냐고 물어본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빨리 나아지기 위해서 몸부림쳤기 때문에 그 당시에 약을 먹으면서 개인상담도 받고 부부상담도 해서 약만으로 나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약의 존재' 자체는 힘이 되었다는거다. 뭐라도 붙잡고 있는게 중요했던 나에게 약은 내가 뭐라도 나아질거라는 하나의 밧줄이 되어주었고 힘들어하는 나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결심이기도 했다.


정신과 치료기는 이제 시작이다. 중간에 나는 이사도 가고 새로운 병원과 의사선생님을 만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내 치료기가 누군가에게도 용기를 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서 나부터 용기내서 시작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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