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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kerJ May 26. 2022

우리 모두는 끔찍한 구석이 있다. (14화 스포주의)

나의 해방일지 속 끔찍한 사람들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에는 평범하지만 끔찍한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끔찍한 인물들은 바로 염미정의 회사 사람들이다. 계약직이지만 디자인 실력이 있는 염미정에게 내심 열등감을 가지고 견제하는 팀장은 직접적인 비난도 하지만 주로 끔찍한 간접적 비난으로 사람을 더 비참하고 불쾌하게 만든다. '허! 에휴~ 진짜.' 하고 한숨을 푹푹 쉬고 비웃음, 어이없어하는 추임새를 넣어가며 염미정의 피피티 이곳저곳을 빨간펜으로 죽죽 그어가는 소리는 내가 당사자인 것 마냥 피 말리게 끔찍하다. 밑도 끝도 정신도 없이 이어지는 수정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미정이는 더 가라앉는다.

물론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사람이지만 팀장은 차라리 누구나 뒤에서 욕하는 미친놈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데 염미정의 회사 동료들은 친구인 듯 굴면서도 잔인한 말과 행동을 해서 더 끔찍하다. 미정의 엄마가 심정지로 갑작스레 황망히 돌아가셨는데 그 앞에서 미정이네 집이 얼마나 먼지 지나치는 역을 세어보았다는 말,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와 차마 떨어질 수 없어 유골을 집에 모신 걸 보고 그건 불법이 아니냐 무섭지 않냐는 말 등, 미정의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는 이 끔찍하다 못해 잔인한 말들로 사람을 더 외롭고 슬프게 만든다.



끔찍하다의 사전적 정의 중 '정도가 지나쳐 놀랍다'의 의미로 이 단어를 쓴다면 염씨네 삼 남매 역시 끔찍한 건 매한가지다. 첫째인 염기정은 자신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지, 얼마나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지를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지의 여부를 신경 쓰지 않고 끝도 없이 늘어놓는다. 내가 그처럼 매일 같이 그녀의 푸념과 하소연을 듣는 친구라면 어느 날 조용히 계좌번호를 부르고 '일방적인 징징거림 듣는 비용'을 청구하고 싶을 정도다.

둘째인 염창희는 남의 집인 구씨네에 주인도 없는 때에 들어가 그의 방에 가득한 소주병들을 치운다. 주인도 없는 빈 집에 그냥 들어갈 때부터 찜찜했는데 거기에다 요청하지도 않은 방청소라니 그 장면에서는 내가 다 불쾌해서 눈쌀이 찌푸려졌다. 게다가 구씨 입장에서는 여전히 친하지 않은 불청객에 가까운데 우당탕 들어와서 화장실을 쓰고 심지어 화장실에 있는 고급 차키를 발견하고 자기 워너비 차라며 몰게 해달라 졸라대서 빌려줬는데 그걸 기스내기까지... 구씨 입장에서는 참으로 끔찍한 여친 오빠일 수 밖에.   

막내인 염미정은 사랑이 너무도 고파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아닌 구씨에게 사랑도 아닌 '추앙'을 요구한다. 그것도 '어차피 너 할일 없잖아. 할일 만들어줄게.' 라며 상대를 위한다는 이유까지 들먹여가며. 기대거나 바랄 수 없는 그녀의 가족, 친구들을 생각해보면 그녀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구씨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느닷없고 도가 지나칠 요구였을지 생각해보면 끔찍한 부분이 있다.




나라고 끔찍한 구석이 없을리 없다. 특히 아이를 키우면서는 내가 끔찍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꽤 많이 늘어났다. 하다 못해 애들이 아침에 떼를 부릴 때 "아침부터 왜 이렇게 떼를 쓰고 그래?" 라는 말을 뱉어놓고 스스로 방금 참 별로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이라는 시간과 아이가 하고 싶은 말 대신 부리는 '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단어인데 오로지 내 심기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붙여서 아이를 '성가신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쌍둥이라는 이유를 들어 끔찍한 말을 하기도 한다. "쟤는 이거 잘 먹는데?"라든지 "쟤는 벌써 신발 신었는데?" 라는 말들이 그렇다. 둘 이상 낳아본 사람들은 알 것 이다. 같은 뱃속에서 나왔을 뿐 아예 다른 존재라는 것을. 같은 시간, 같은 뱃속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전혀 다른 존재를 한 데 엮고, 심지어 비교해서 말하는 건 그들의 입장에선 상당히 끔찍한 일이다. 이런 끔찍한 말과 행동을 순전히 내 편의에 의해서 하는 걸 알아차릴 때 새삼 미안해진다. 차라리 아이들이 얼른 커서 나한테 "엄마 방금 그거 너무 끔찍한 말이야!" 라고 소리쳐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해줬으면 좋겠을 때도 있다.

사실 나의 해방일지 속 인물들도, 나도, 유달리 나쁘고 못돼서 끔찍한 구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끔찍해질 수 있다. 상대방의 마음과 입장보다 내 마음과 입장이 중요해질 때 보통 그렇다. 끔찍한 순간들을 없앨 수는 없지만 줄일 수는 있다. 줄이려는 그 노력이 세상을 조금씩 더 살만하게 만든다고 나는 믿는다. 오늘 하루, 아이들에게 끔찍한 말을 한 마디라도 덜 해보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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