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하다보면 다음 순간이 막막해질 때가 있다. 어제도 그랬다. 밖에 나가서 아이들의 기운을 빼둬야 밤에 잘 자기 때문에 오후 저녁 산책을 나왔는데 아이들이 뛰노는걸 보다가 집에 들어가서 애들을 씻기고 먹이고 재울 생각을 하니 갑자기 아득해졌다. 보통 내 체력이 남은 일정에 비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이런 기분이 들곤 한다. 나는 이미 지쳤는데 남아 있는 일정이 많으니 부담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미리 다음 일정을 생각하기보다 내가 지나온 날들을 떠올린다. 이렇게 지쳐있는 상태로도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재우는 것까지 결국 다 해냈던 수많은 날들을 떠올려본다. 하루하루만 보면 버거운 육아의 날들이 모여 누워만 있던 아기들이 기어다니고, 서서 걷고 뛰게 만들었다. 못할 것 같던 날들도 나는 잘 버텨왔다는 것, 오늘도 그 빛나는 성장의 날들 중 하나가 될 거라는 생각이 조금은 더 힘나게 만들어준다.
육아뿐 아니라 살면서도 그런 순간이 온다. 그저 어젯밤에 눈을 감고 자다 일어나 오늘이 된 것 뿐인데, 갑자기 낯선 어느 곳으로 와버린 것처럼 막막한 아침이 있다.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렇게 돈만 까먹으며 글이나 쓰면 뭐가 되긴 하는걸까, 뭐라도 더 영양가 있는 글을 써야 하는 거 아닐까, 글이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걸 해야되는 것 아닐까... 어지러운 생각들이 더덕더덕 쌓여서 급기야 숨쉬는 것까지 답답하게 느껴질 때 즈음 뒤를 돌아본다. 내가 써 온 글 하나를 하나의 나무로 상상한다. 나무들 하나하나를 보면 어딘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하나 이상 있다. 어떤 나무는 잎이 너무 빈약하다. 어떤 나무는 밑동에 비해 가지가 너무 많고 또 어떤 나무는 밑동 자체가 너무 가냘퍼서 서 있는 것 자체가 위태로워 보인다. 물론 그 중에 꽤 뿌리를 잘 내린 나무들도 있다. 그러나 그 나무들조차 내가 잘 만들어낸게 아니라 나무를 심은 곳이 운 좋게도 비옥해서 잘 자라게 된 걸로 느껴져 어딘가 석연찮아진다. 이번에는 높은 곳에 올라서서 나무들을 내려다 본다. 갑자기 나무들의 단점이 사라지고 하나의 숲이 보인다. 나무들이 한 데 어우러져 어디가 빈약한지 어디가 풍성한지는 잘 보이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다. 그저 이 모든게 하나의 푸른 숲을 이룬게 중요하다. 이 숲을 내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뿌듯해진다.
내가 살아온 날들도 이렇게 볼 수 있다면 마음이 조금 놓일 것 같다. 오늘 하루가 좀 마음에 들지 않고, 양에 차지 않고 뭘 해야 좋을지 갈피가 잡히지 않을 때 내가 나무 하나에 아등바등 매달려있는 걸 발견하고 잠시 내려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완전하지 않은 하루들이 모여 나름의 숲을 이루어낸 것을 볼 수 있는 곳에 올라 마음껏 안심하고 내려오고 싶다. 이대로도 괜찮구나. 뚜벅뚜벅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것 자체가 나에겐 이미 최선이구나. 가득 찼던 조바심이 비워지면 그 곳엔 새롭게 살아갈 힘이 차오른다. 그 힘을 가지고 오늘도 글을 쓰고, 육아를 하고, 하루를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