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는 남편이 연차를 내고 모처럼 부부데이트를 했다. 차를 타고 근교로 나가서 계절마다 오고 싶은 파인 다이닝 맛집도 가고 산책도 했다. 좋은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을 데리러 갔는데 아들이 차에서 내려주려는 남편에게 싫다고 짜증을 내서 남편도 마음이 상해버렸다. 요즘따라 아이들이 나에게만 안기겠다 하고 나랑만 손잡고 가겠다고 해서 자주 난감해진다. 한 명에게 두 명이나 매달리니 나도 힘들지만 남편 기분이 상할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러다 또 이런 일이 생기니 중간에서 아이도 살피고 남편 눈치도 보느라 바빠졌다. 애들이 이맘때쯤 원래 이러는건지 어떻게 해야되는건지, 막막해져 맘카페에 sos를 쳤다. 머릿 속에 사이렌이 울리고 응급상황인 것처럼 머리가 복잡해졌다. 마음이 급하니 남편 마음도 제대로 공감해주기보다는 빨리 해결하고 싶어 얘기하다 남편의 마음을 더 상하게 만들었다. 결국 남편이 마음을 풀고 나와서 아이들과 놀다 하루가 마무리 되었지만, 부산해진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다음 날에는 아이들과 대공원 나들이를 했다. 단풍이 멋스럽게 든 풍경도 보고, 날씨도 좋고 아이들도 좋아했지만 한편으로는 자꾸만 피곤해졌다. 결국 집에 와서 나는 쓰러져 자고 남편이 아이들을 보게 되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먹일거리를 찾다 냉장고를 보던 중에 상해버린 음식을 발견했다. 음식을 버리게 되는 것에 대해 무척 예민한 남편은 이런 일 좀 없게 해달라며 한 소리 했는데, 그 말이 또 무겁게 와닿았다. 머리로는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마음으로는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게 하나도 없다는 말로 들렸다. 몸도 안좋고 여력도 없어서 아이들에게 대충 먹이고 내가 하고 있는 일도 잘하고 있는건지 의문이 드는 요즘이라 더욱 그랬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이야 이렇게 내 생각의 흐름이 정리가 되지만 그 순간에는 아니었다. 이해할 새도 없이 주욱 바닥으로 가라앉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아, 사는게 너무 지친다. 지겹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지'로 이어졌다. 또 다시 위험신호가 울린 것이다. 정신과 약을 임의로 끊어서인걸까, 내가 유독 약한 사람이어서인걸까, 나는 엄마도 아내도 맞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결혼과 출산을 한 게 문제인걸까. 밑도 끝도 영양가도 없는 생각들이 이어졌다.
'잘하고 있다'가 중요한 나에게는 쳐줄 만한 성과가 없는 나날들이 지칠 수 밖에 없다. 자잘한 성취감들로 버티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이게 다 뭘까' 하는 회의감이 파도처럼 덮쳐온다. 그렇게 주욱 가라앉는 시기에는 생각들도 극단적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남편의 말 한 마디도 내 마음대로 해석하게 된다. 작은 자극에도 마음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몸은 금새 피로해져 쓰러져 자고 싶은 생각만 든다. 가장 힘든 건 이런 내 상태를 내가 잘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쉬었으면서도 자꾸 피곤해하냐, 왜 감사하지 못하고 자꾸 불평만 하냐, 뭘했다고 자꾸 지치냐'는 식이다. 나에게 참으로 냉정하고 단호한 나. 단단한 벽같은 그 태도 앞에서 한층 시들해진 나는 주섬주섬 위로를 찾아 나선다.
최근에 인스타툰으로 유명한 작가의 개인 계정에서 '나는 여전히 육아가 힘들다.'라고 시작하는 글을 보았다. 육아가 힘들다는 그 한 마디에 나는 마음이 훅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치! 나만 그런거 아니잖아!' 하고 그 냉정하고 단호한 나에게 쏘아붙이고 싶었다. "육아가 지치고 사는게 지칠 때 어떻게 하세요?" 라는 내 질문에 "지난 주말이 그랬어요. 애도 남편도 다 짜증나고. 저는 작년에 정신병원에 가둬달라고 울고불고 하기까지 했어요." 라는 그녀의 대답도 내 속을 사이다처럼 뚫어주었다. 어디 입원해서라도 그냥 마음껏 쉬어보고 싶은게 나만이 아니구나. 나 정상이구나! 싶어서. 안심이 되고 나니 조금은 살만해졌다. 이런 나여도 괜찮다는 위로가 놓인 자리에는 여력이 생겼다. 그 여력으로 내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떠올려본다. 이를 테면 몇 달간 자기계발, 성공, 부동산책만 봐 온 나에게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집을 보게 해준다든지. 자꾸 피곤해하면 좀 자게 한다든지. 이렇게 또 조금씩 힘을 내어 살아가본다. 나도 누군가에게 '나도 그래'의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라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