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프로에 나와서 김나영씨가 했던 말이 있다. 육아는 매일매일 내가 별로인 사람인 걸 확인하게 한다고. 너무너무 공감하는 한 편, 연예인도 다르지 않구나 싶어 안도하기도 했다. 그녀의 말을 다른 말로 바꾸자면 '육아는 내 안의 어린아이를 마주하는 일이다'. 성인을 대할 때는 적당히 상대방 탓도 할 수 있지만 아이를 대하면서는 그럴 여지가 없다. 몸만 어른인 내가 아이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수준으로 대치하고 난 뒤에는 참담한 심정이 된다. 그럴 때 할 수 있는 최선은 온갖 구박으로부터 내 안의 아이를 지켜주는 것이다. 마치 내 아이를 대하듯이. 마음은 읽어주되 대안행동을 제시해주기. 말이 쉽지 한참을 자괴감의 늪에 빠져 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해보려는 몸부림이다.
아이가 얼마나 자랐는지를 실감하는 때는 과거 사진을 볼 때다. 매일 매일 지켜보면 크게 다를 바 없어보이지만 불과 몇 달 전에 찍은 사진영상만 봐도 아이는 몸도 마음도 훌쩍 자라있다. 나에게도 그걸 적용시켜주기로 했다. 매일 매일 똑같은 자리에서 몸부림 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몇 달 전의 나보다는 조금 더 나아간 자리에 있지 않을까. 아이들도 어느 날은 말을 잘 들어주고 어느 날은 영 안 통하듯이 나에게도 그런 오락가락이 있을 수 있는거니까. 최근에는 분명하게 달라진 내 마음에 좀 놀랐다. 모성애란 개념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나에겐 한참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나에겐 대부분 지치고 피곤하고 지루했기 때문이다. 귀엽다 이쁘다는 생각은 머리에서만 반짝 지나갈 뿐, 내 컨디션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주말, 시어머님 찬스로 친구를 만나서 혼자 나온 날이었다. 늦가을임에도 포근하고 날씨가 참 좋았다. 그걸 느끼는 순간, '아 애들 데리고 나와서 놀기 좋은 날씨네.' 하고 생각하는 내가 있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떠오른 그 생각에 스스로 깜짝 놀랐다. 홀가분하기만 했던 자유시간에 아이들을 떠올리다니! 그 마음을 느낀 뒤로는 점점 더 의식되기 시작했다. 평일 낮에 아기와 함께 다니는 양육자들을 보면서 안쓰러움과 대리 답답함을 주로 느끼던 내가 이제는 '나도 애들 데리고 여기 왔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오늘 버스를 타서도, 서점을 와서도 우리 애들과 또래인 아이들을 보고 같은 생각을 했다. 막상 실제로 데려오면 얼마나 피곤할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잠깐은 진심으로 함께 와봐도 좋았겠다 하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함께 있는 시간에 찐웃음을 짓게 되는 순간들이 늘었다. 아이들을 위해 웃어주는게 아니라 진짜 웃음이 나오는 순간들이. 전체를 놓고 보면 여전히 참아야 하고 버텨야 하는 순간들이 더 많을지 모르지만 새롭게 늘어가는 이런 순간들이 나에겐 참 소중하다. 할 수만 있다면 껌처럼 주욱 늘리고 싶지만 보채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언제 또 원점으로 돌아갈까 싶어 초조하지만 한 가지 변화가 또 있다. 바로 아이들의 짜증과 화를 바라보는 마음에 아주 조그만(거의 나만 알 수 있는)여력이 생겼다는 것. 아이들의 짜증, 울음, 화에 욱하게 된다는 걸 몰랐던 건 아니지만 안다고 쉽게 나아지진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정신과에 다닐 때 선생님께 얘기해보기도 했지만 그런 부분은 약으로 나아지는 건 아니라는 대답만 들었다(아 네... 내가 날로 먹으려 했구나.). 최근에도 딸의 짜증에 연타로 울컥했는데 아들까지 내 화에 눈치를 보는 걸 보고 자괴감 속에서 눈물바람으로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내 안에 사랑은 커녕 온갖 냉랭함과 미성숙함만 가득 찬 것 같아서 자꾸만 슬퍼졌다. 그러나 나는 엄마니까 눈물바람 속에서도 나아가야만 했다. 눈물 줄줄인 나를 계속 다독이고, 다음엔 어떻게 해볼지 생각하고, 조언과 위로를 듣고, 몸이라도 편하게 쉬어주었다. 아이의 짜증과 화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기에 곧장 화가 나는지 생각하고 그 무의식적 패턴을 깨려고 노력헀다. 물론 아직도 아이들의 짜증 앞에선 화가 난다. 일차로는 공격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제 다음 단계가 생겼다. 아이는 어떤 마음일까 한번은 더 생각해보는 것. 적어도 나를 공격하려는 의도는 아니라는 걸 떠올리는 것. 내가 애써 만든 그 단계가 아주 작지만 중요한 여력이 되어주었다.
정말 다행히도 나는 자라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내 안의 어린아이가 조금씩 자라고 있다. 많은 시간을 외면당하거나 혹독한 대우를 받으며 좀처럼 크기 어려웠던 아이다. 이제라도 이 아이를 보듬어 키워내지 않으면 내가 낳은 아이들도 제대로 키울 수 없다는 걸 매일 깨닫는다. 그래서 발등에 불 떨어진 마음으로 내 안의 아이에게 집중하려 애쓰는 요즘이다. 여전히 육아가 체질인 것 같은 사람들이 부럽다. 아이들과 함께하며 생기가 도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이 모든 마음은 육아가 체질이 아니어도 여전히 육아를 잘하고픈 내 바람에서 나온다. 하루하루 스코어를 매기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자라는 걸 지켜봐주는 육아를 해야지. 타고난 엄마는 못되지만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엄마는 되어주려 한다. 오늘 안되도 내일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보여주어야지. 당장 잘하고 싶은 마음을 토닥토닥 잠재우며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