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책방] 매우 혼자인 사람들의 일하기

by 연두의 무한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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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래야만 한다.’

베토벤이 마지막으로 쓴 현악 4 중주곡 마지막 악장에 쓰여 있는 문구인데,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알 길이 없어 더욱 신비스럽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래야만 한다’라는 이 문구를 보는 순간 위로가 되었다. 명령형, 의무형에 가까운 뉘앙스지만, 이 말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지켜야 할 최소한의 마음, 예의를 보여준다는 생각 때문일까.. 물론 베토벤 선생은 그런 의미로 쓰지 않았을 수 있다.


세상이 각박하고, 어두울 때. 나 혼자 방황하는 것 같고, 번번이 실패하는 것 같을 때에도 우리는 우리를 서로 지켜주고 붙들어줄 뭔가가 필요하다. 음악가와 청중 사이를 예로 든다면, 내가 힘든 순간에도 끝까지 내 곁에 존재하며 내 손을 잡아줄 음악이 있을 거라는 믿음. 그리고 모두가 다 떠나고 외면하더라도 누군가는 남아 내 음악을 들을 거라는 믿음. 보이지 않는 그 믿음들이 모여서 위로의 띠를 단단히 만들어낸다. 그래서 우리는 나 자신은 물론이고 누군가에게 ‘그래야만 한다’ 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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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매우 혼자인 사람들의 일하기>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1인 창작자들의 분투기를 모은 책이다. 해당 구절은 피아니스트 김주영 씨가 쓴 대목인데, 그녀가 2020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연주회를 준비하며 느낀 글이다. 2020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인 이 해는 마침 코로나19가 발생하며 대부분의 연주자들이 악기를 접고 공연장을 떠나야만 했던 어두운 시절의 서막이었다. 들려줄 사람도 없이, 자신만의 공간에서 칩거하며 침묵의 연주를 감내야 하는 마음, 기껏 준비한 음악제가 제 빛을 보지 못할 위기에 처한 안타까움 등을 담았다.


생각해보면 베토벤이야말로 ‘매우 혼자 일하는 사람’ 아니었던가. 물리적으로도 그랬고 정신적으로도 그랬다. 귀가 들리지 않는 음악가, 라는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그의 운명은 대중은 물론 심지어 그 자신으로부터 떠나 일하는 사람이 되기를 요구했는지 모른다. 범부가 느끼기에는 가혹하다고 느끼는 그의 숙명을 베토벤 선생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나 역시 혼자 일하는 사람이다. 물리적으로 그렇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누군가와는 분명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일들은 서로 촘촘한 그물망처럼, 도미노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협업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내가 만드는 프로그램, 콘텐츠들은 불특정 다수와 느슨하게 연결되어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그 믿음이 있었기에 베토벤 선생은 그 가혹한 운명 앞에서도 펜을 놓지 않고 ‘그래야만 한다’고 쓸 수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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