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누구에게나 시간은 그런 존재다
1. 시간을 아끼라는 말은 자라면서 무수히 들어왔다.
Time is Tide.
지난달 강의를 들으러 갔던 도서관 강의실 벽시계에는 저런 문구가 쓰여있었다.
시간은 쏜 화살과 같아서 붙잡을 수 없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그런 존재다.
이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내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생은 천차만별 달라진다.
너무 많이 들어서 진부하기까지 한, 하지만 갈수록 그 말의 진리를 깨닫는 요즘이다
.
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은 현재 내가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라는 뜻이다. 아무리 가난하고 가진 게 없다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24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지니까. 만약 부자에게는 25시간이 주어지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5시간이 주어진다면 음… 어떻게 될까.
내가 가진 유일한 것은 시간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가진 유한한 것도 시간이다. 하루키는 하루하루를 충실히, 소중히 보내며 시간 속에 자신을 밀어 넣는 마음으로 글을 쓴 작가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는 표현이 가끔 등장하는데, 믿을 것은 시간과 노력밖에 없다는 뜻이다. 오늘도 나는 내 금쪽같은 시간들 앞에서 방황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단단한 내공으로 뭉친 책
2. 이 책은 하루키 자신이 소설가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적은 에세이다. 소설을 쓰는 수사법이나 문장력 기르기 같은 실용서라기보다 소설가가 되기 위한 기본적인 마음가짐, 태도, 습관 등을 쓴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꼭 소설가가 되려는 사람뿐 아니라 소설과 관계없는 사람이 읽어도 좋을만한 에세이다.
나는 하루키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 물론 소설도 좋아하지만 에세이에는 또 다른 느낌이 있다. 그의 에세이는 정직하고 담백하다. 가식적이고 피상적인 표현이나 문구는 찾아볼 수 없고, 실제로 인간 하루키가 내 앞에서 말을 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른 작가의 에세이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던 점이었다.
무엇보다 하루키의 에세이에는 삶을 대하는 하루키의 성실하고 쿨하고 담담한 모습이 담겨있다. 읽다 보면 용기가 났다. 뭔가 투지를 불러일으키는 류의 글은 아니다. 희망에 찬 위로도 없고 섣부른 낙관도 없다. 오히려 더 냉정하게 현실을 보게 만든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의 그런 글들이 내게 오히려 잔잔한 기쁨과 용기를 주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 자신을 삶의 희로애락에 너무 소비하지 말자는 생각도 하게 됐다. 30대에 읽었던 하루키의 에세이들은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사랑의 기쁨과 슬픔, 이별의 상실과 괴로움… 감정이라는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으면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소설가로서 오랜 세월 살아가면서 느낀 점을 담고 있는 만큼, 단단한 그의 내면이 잘 나타나 있다. 그 내면은 그야말로 그가 실제로 겪은 경험과 체험을 바탕으로 지충처럼 오랜 세월 축적되어온 것인데, 그런 성정이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에세이에는 다른 작가가 인용한 글귀나 전문적 지식의 통계나 결과 같은 것을 볼 수 없다. (하루키의 다른 에세이에서도 인용이나 레퍼런스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루키라는 고유한 한 인간이 체험한 일들과 느낀 점, 사유만으로도 밀고 나가기에 그의 글은 힘이 있다. 왜냐하면 정직하고 솔직하니까. 그래서 울림이 있다. 꼭 소설을 쓰려는 사람이 아니어도 읽어보면 좋을만한 에세이.
본인이 아무리 '잘 썼다' '완벽하다'라고 생각해도 거기에는 좀 더 좋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p160
하루는 어디까지 하루씩입니다. P.180
모든 일에는 '물때'라는 게 있고, 그 물때는 한번 상실되면 많은 경우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습니다. P.196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경우) 지겨울 만큼 질질 끄는 장기전입니다. p.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