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슈타인 가아더 <밤의 유서>
너무나 아득한 지금 이 순간을 위해
1.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은 영원하지 않다. 찰나이다. 해석 불가능한 수많은 순간들이 모여 이뤄졌을 뿐 영원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들이 모여 영원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시절, 어느 한 순간은 영원을 대신하기도 한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것은 기적이라는 글을 보고 너무 과장된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천문학적으로, 물리적으로도 보면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행운이다. 우주가 생기고, 지구가 만들어지고, 인류가 태어나고 그리고 셀 수도 없이 이루 말할 수도 없는 많은 자손의 자손이 태어나서 현재의 내가 있었다. 내가 이 지구에 나오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맞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해석 불가능한’ 순간들이 모였던 걸까. 내 머리로 이해하기엔 너무 아득하다. 내가 이 우주의 흐름에서 본다면 얼마나 하찮으면서도 감사한 존재인지.
순간순간이 빛이다. 찬란한 기적이다. 나는 매일 이걸 잊고 산다. 그냥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내 존재를 믿고, 존엄하다고 느끼되, 남보다 우월하다거나 뛰어나다는 자기기만에는 절대 빠지지 말자. 먼지처럼 작은 존재임을 늘 생각하며 겸손하고 감사하자.
우리는 누군가와 연결돼있다
2. 이 책은 <소피의 세계>의 작가,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설이다. 분량은 앉은자리에서 읽어낼 수 있을 만큼 가볍지만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다. 스토리 자체는 간결하다. 60이 넘은 나는
곧 자율신경을 상실하게 될 병에 걸렸다는 선고를 받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 위해 한 호숫가 옆에 있는 오두막에 온다.
그 오두막은 대학시절, 이제 막 서로에게 반한 아내와 그에게는 특별한 곳으로, 아주 강렬한 추억이 있다. 이제 막 연인이 될 준비를 하고 있던 그와 아내는 무작정 드라이브를 갔다가 호숫가에 있는 오두막을 발견한다. 엄연히 주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무엇엔가 끌리듯 그곳을 무단 침입해 음식을 먹고 사랑을 나누고, 게다가 한숨 잠을 잔 뒤 인기척을 느끼고 쫓기듯 나왔다. 정리정돈도 하지 않은 채. 10년 후, 두 사람은 결혼하고 그 오두막을 구입해서 별장처럼 사용한다. 그곳은 부부는 물론 아들과 손녀, 며느리까지 집안 식구들의 보물과 같은 장소가 된다.
하필 그곳에서 죽음을 맞으려고 ‘나’는 온 것이다. 식물인간이 된 채로,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간호를 받으며 구질구질하고 추하게 사는 것이 끔찍이 싫었던 나는 그곳에서 목숨을 끊기고 한다. 그리고 몸에 잔뜩 돌을 집어넣고 배를 타고 호숫가로 나아간다.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 이르렀다고 생각한 순간 배를 뒤집는다. 하지만 결론은? 나는 살아있게 된다. 누군가에 의해 구출된다. 인적 드문 야밤의 호수에서 누가 ‘나’를 살려주었을까.
온 세상은 이어져있으며 나는 누군가와 연결되어있다. 우주의 법칙이다. 물론 내 삶을 거두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우리는 함부로 그것을 선택해선 안 된다. 나와 연결되어있는 그 소중한 사람들의 슬픔을 생각하면 나는 힘겨워도 살아내야 한다. 이 기적과 같은 순간순간을 감사히 여기기 위해서다.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를 살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