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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의 무한책임 Mar 29. 2022

[한줄책방]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곧 '나'이다

정은 <커피와 담배> 



1. 이름 아침 일어났을 때 아무것도 없이 고슬고슬한 부엌 개수대, 뾰족뾰족 봉오리를 막 틔우는 목련, 하얀 이불포, 다림질을 방금 마친 옷감에서 전달되는 미지근한 열기, 일을 마저 마친 뒤 조금 늦게 퇴근하는 약간은 노곤한 몸, 거기에 더해진 홀가분하고 호젓한 기쁨, 저녁 늦게 들이마시는 박하향 공기, 저 멀리 높은 건물들 사이로 잔잔히 퍼져가는 파스텔 노을, 말라비틀어진 듯 하지만 용케 잘 붙어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담쟁이덩굴, 봄밤 분위기 근사한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 콜롬비아 과테말라 탄자니아 브라질 원두가 균등하게 1/4로 배분되어 미묘하고 묵직한 향기를 주는 커피. 맛있게 먹고 다 비운 한 그릇의 맨바닥, 주인의 살가운 인사, 덤으로 더 얹어서 포장해주는 남은 음식들, 주차하고 난 뒤 시동 껐을 때의 그 적막함과 안도감, 나의 방에서 새어 나오는 오렌지색 불빛…….      


오늘은 여기까지. 지금 당장 생각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합.      




담배를 위한 상상력      


2. 커피와 담배,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는 궁합. 커피는 즐기지만 담배는 하지 못한다. 담배를 좋아하지 않아도 이 책은 읽을 수 있다. 담배의 맛과 향을 문자로 읽어낸다는 것도 나름 즐거운 일이다. 무해한 흡연. 담배에 이렇듯 소소하고 정겨운 추억을 가지고 있는 작가는 얼마나 다정하고 은유적이며 비밀스러운 사람인가.      

담배가 백해무익이라고 하지만, ‘금연구역’, ‘흡연 시 벌금 부과’, 더는 에누리칠 것도 없다는 듯 커다란 빨간 고딕체로 엄격하게 써 붙인 경고 문구를 보면 마치 경매 딱지처럼 느껴진다. 흡연자는 아니지만, 흡연자를 마치 잠재적 범죄자를 대하는 듯 한 준엄한 경고에는 조금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금연구역이라는 글자가 사랑스럽고 샤랄라한 글씨체로 쓰여 있는 걸 본 적 있는지?)     


꽉 막힌 실내에서 누군가 피우는 담배는 고역이지만, 툭 터진 풍경 좋은 장소에서 향긋한 커피와 함께 의도치 않게 즐기는 간접흡연은 때로 향긋하고 신선하기까지 하다. 담배에게는 조금 관대한 공기라도 있는 건가. 그럴 때 담배연기는 추억이 되고, 하나의 기호가 될 수도 있다. 담배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내 말의 요지는, 담배를 니코틴 그 이상으로 확대해 상상해 볼 수 없는지에 대한 문제다.     


그럼에도 나는 옆집 어떤 아저씨인지 아가씨인지 모르는 누군가 피우는 담배연기가 내 방으로 스멀스멀 스며들 때면 괴롭다. 무슨 고민할 거리가 있어서 담배를 태우는 걸까.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창을 열지도 닫지도 못하고 그저 코를 움켜쥐고 서성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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