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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민 ASM Sep 06. 2020

11. 우리집 (2019)

우리집은 정말 왜 그럴까

감독. 윤가은

출연. 김나연, 김시아, 주예림, 안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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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의 윤가은 감독이 만든 맑고 깨끗한 영화. 윤가은 감독은 단편 영화 때부터 아이들을 주제로 하는 작품들을 굉장히 잘 다뤘다. 전작을 인상깊게 봐서 그런지 이번 작품도 굉장히 기대했는데 그만큼 괜찮았던 작품인 것 같다. 


세 명의 아이들이 그림책을 만드는 듯 그려나가는 동화같은 이야기. 포스터에서 볼 수 있듯이 가족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영화를 보며 계속 생각났던 단어는 '식구' 이다. 사전에는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사전적 의미로만 생각해 본다면 주인공 하나의 부모님과 오빠는 '가족' 이라는 피상적인 공동체에는 속하지만 본질적이고 부속적인 '식구' 라는 또 다른 공동체에는 속하지 않는, 아이러니하고 불완전한 관계에 머무른다.


또한 이들이 살아가는 '집' 이라는 표면적인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밥을 함께 하는 '우리' 라는 관계에 이르지 못하는 남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매번 회사일로 바쁜 부모님과 사춘기로 자신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오빠. 그 사이에서 섬처럼 떠도는 하나는 어떻게든 가족의 화합을 위해 노력한다. 특히 가족들과 식사하려고 요리를 자주했던 하나였지만 남은건 싸늘한 밥그릇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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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럴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하나의 어머니도 하나에게 왜 부엌일을 하냐며 하지말라는 말을 여러 번 한다. 여기서 유미와 유진 자매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식자재를 사러 마트에 갔다가 우연히 자매를 만난 하나는 둘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또 다른 구성원이 만들어지는 하나의 비유적인 장면이라고 해석된다. 부모님이 멀리 출장가셔서 둘이 있는 시간이 많은 자매에게 하나 언니는 자신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이자 어른 같은 존재이다. 서로 어울리며 자기 가족의 사정에 대해 한탄하지만 한편으로는 상자로 자신들만의 집을 만들며 새로운 공동체를 다져나간다. 또한 배고픈 유미와 유진을 위해 하나는 끼니를 만들어 함께 먹는데 이 과정에서 자매를 생각하는 하나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는 아니지만 그 보다 진솔할 수 있는 '식구' 의 공동체가 형성된 것이다.


셋의 관계는 여행을 떠나며 갈등이 생기지만 특유의 아이다운 전개로 슬기롭게 해결한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화면에서 주는 여운이 굉장하다. 불완전한 상황에서 서로의 부재를 메꾸어 주는 아이들의 행동은 어떻게 보면 어른보다도 어른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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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윤가은 감독을 한국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어른의 시선이 아닌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려고 하는 시도들이 예쁘다. 실제 작품들을 보면 어른과 아이가 같이 나오는 씬들에서 아이를 내려다보는 구도가 없다. 영화계에서 이만큼이나 시선을 낮추어 관객과 소통하려는 영화도 드문데 괜찮은 작품성까지 지닌 감독의 역량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이유로 단편영화 <나만 없는 집> 이 마음에 들었다) 놀이터같은 색감의 미술도 인상적이다.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못했던 (단편영화같던) 대사와 플롯들이 있었던 점 정도. 감독도, 아이들도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된다.


#우리집 #윤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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